야권이 헤맬 때, 박근혜는 앞으로 뚜벅뚜벅

[取중眞담] 어려웠던 세비반납 관철은 그의 작품

등록 2012.06.22 08:45수정 2012.06.2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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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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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선거는 퇴직금으로 했고, 이제 가진 게 달랑 집 한 채라 아내는 의원 첫 월급만 기다리고 있는데…."

'무노동 무임금', 새누리당 의원들이 세비반납 결의를 하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 둘째 날이었던 지난 9일 연찬회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초선 의원이 말했듯 의원 각자에게 세비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국회에 오기 전 대학 교수였던 한 초선의원에게 세비반납 얘길 꺼내자 대뜸 "우리 식구들은 뭐 먹고 살란 말이냐"고 푸념했다. 그는 "총선 때 하겠다고 한 거니까 하긴 해야 하는데,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총선구호는 좋았지만 좀 정교하게 다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원내대표단은 그날 세비 반납을 포함한 국회의원 6대 특권 포기를 의결하려 했지만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에 "연찬회에서 제시된 6대 쇄신안의 정신과 기본원칙을 존중하여 국회를 반드시 쇄신한다"는 선언적 결의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 했다.

김성태 의원 등의 "개원지연은 원내대표 등 지도부 책임이지, 왜 의원들에게 떠넘기느냐"는 반발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잠재된 저항에 세비반납 결의는 물 건너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한구 원내대표가 연일 결의 관철을 강조하고 나섰고, 결국 지난 19일 의원총회에서 결의가 이뤄져 150명 중 146명이 참여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어려웠던 세비 반납, 결국 관철된 건 '박근혜의 힘'

이날 의원총회장을 나선 한 초선의원은 "세비 반납을 내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불만도 없진 않지만 박근혜 위원장이 총선에서 약속한 거니 어쩔 수 없다. 눈 꼭 감고 반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고전하다 박근혜 의원(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현장유세 덕을 톡톡히 봤다고 자평하는 인물이다.


이 의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안 되는 분위기가 강했던 세비반납 결의가 결실을 본 건 박 의원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 박 의원은 지난 세비반납 결의를 위한 의원총회장에 들어서기 전 동참의사를 확실히 밝혔고, 회의장에 앉아 의원들의 발언과정을 지켜봤다. 또 김성태 의원의 반대토론 직후엔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서기도 했다. '세비반납 결의가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박 의원은 총선 직후 비례대표 의원들과 '약속지킴이 25'를 결성해 모임에 참석했고, 지난 한 달간 지역별로 초선의원들과 점심만남을 해왔다. 

박 의원과 만난 의원들은 하나같이 박 의원이 "총선공약 이행에 힘 써달라"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고 전한다. 박 의원이 이 정도로 공약실천을 강조하는 마당에 세비반납이 마뜩잖아도 '울며 겨자먹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회의원 6대 특권폐지 공약 중 가장 반발이 많았던 세비반납이 순조롭게 관철됐으니 의원연금 폐지 등 나머지 5개 사항을 관철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의원의 현안 챙기기는 이번 세비반납 결의에 그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다음 목표는 '박근혜 예산' 반영... "유신? 뚜벅뚜벅 걸어갈 것"

이후 박 의원의 초점은 '예산 챙기기'에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에서 내세운 '단계적 반값 등록금' '전 계층에 양육수당 지급' 등 교육·복지 공약 현실화에 필요한 재원을 2013년도 예산부터 반영시키는 것. 대선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자신의 공약 실천 사례를 내세워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를 극대화 한다는 전략이다.

예산안 작성 단계에선 당 정책위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예산안이 국회로 제출된 뒤엔 각 상임위 여야 논의과정에서 '박근혜 예산' 반영 여부가 여야 공방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 뻔하다. 총지휘는 이한구 원내대표가 맡겠지만, 박근혜 의원도 자신의 공약실천에 직결되는 사안에 마냥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현재 대선출마를 선언해 경선규칙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과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등이 유신통치에 대한 박 의원의 책임론을 꺼내들면서 정치쟁점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친박진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 당직자는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이명박 후보 측이 줄기차게 제기해왔던 문제다. 그때도 사과할 것 사과했고 나름 할 것은 다 했는데 여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안타깝다"면서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을 걸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른 친박계 당직자는 "그렇게 (유신 문제 제기) 할 것은 이미 다 예상했던 것"이라며 "박근혜 위원장은 지금 누가 뭐라고 공격하든지 공약 지키기가 최우선이고, 뚜벅뚜벅 관철해 나갈 걸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대표선수 뽑는 동안 박근혜의 연설문은 완성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의원이 언제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캠프를 어떻게 차릴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선주자 박근혜는 공약실천으로 이미 대선레이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권이 대표선수가 누가 될 거냐는 문제로, 안철수 원장의 자질 여부로 서로 지지고 볶는 사이 대선주자 박근혜는 대선 유세연설에 들어갈 문구를 다음과 같이 한 문장 한 문장 완성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대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는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총선에서 약속한 반값 등록금, 내년부터 ○○%를 낮추기 위해 예산에 ○조원을 이미 반영했습니다'

'30~40대가 힘겨워하는 아이들 양육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부터 지급할 양육수당 재원을 이미 예산안에 반영했습니다.'

'저 박근혜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입니다.'
#박근혜 #세비반납 #신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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