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지도자 최우(정보석 분).
MBC
남성 중심의 역사관, 지식인 중심의 역사관을 탈피할 경우, 우리는 드라마 <무신>에 등장하는 고려 무신정권이 100년 만에 붕괴한 이유를 좀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신정권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성의 역할이 의외로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1170년 쿠데타로 시작된 무신정권은 1270년 마지막 지도자 임유무의 피살과 함께 종식되었다. 이 100년간 무신정권은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최우·최항·최의·김준·임연·임유무라는 11명의 지도자를 배출했다.
무신정권이 붕괴한 최대 요인은 고려왕-몽골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 점만으로는 무신정권이 몰락한 원인을 완전히 규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래 무신정권은 고려왕과 몽골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역량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무신정권이 고려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상태에서 몽골과 장기전을 치렀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하다.
따라서 무신정권 붕괴의 원인을 좀더 명확히 설명하려면, 이 정권의 역량이 연합군의 역량보다 약해진 계기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계기를 규명하려면, 무신정권이 튼튼했던 시기에서 허약한 시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탐색해야 한다.
만약 이 대목에서 여성과 성의 정치적 역할을 배제할 경우, 우리는 여기서도 어딘가 어색하고 억지 같은 해석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성과 성의 역할을 긍정할 경우, 우리는 그 과도기에 있었던 사건 하나에 주목하게 되고 그 사건이 무신정권의 존망에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하게 될 것이다.
제1대 이의방으로부터 제6대 최우 때까지, 무신정권은 비교적 튼튼했다. 1170년부터 1249년까지의 79년간이 여기에 해당하므로, 집권기간의 79% 동안은 무신정권이 튼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7대 최항 때부터 무신정권은 현저히 약해졌다. 무신정권을 부정하고 왕실을 지지하는 세력이 최항의 집권을 무산시킬 뻔 했을 뿐만 아니라, 최항 집권 이후로는 왕정복고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지도부는 국내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항 때부터는 무신정권이 몽골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도 왕정복고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것은 최항 때부터 무신정권이 신뢰를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무신정권 지도자의 권력보유 기간에서도 나타난다. 최우 때까지, 무신정권 지도자들은 평균 13.2년간 권력을 보유했다. 반면, 최항 때부터는 그 기간이 평균 4.2년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