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안덕면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어쨌든 나는 '법적으로' 제주도민이 됐다.
조남희
볼라벤이 서귀포를 강타했을 때, 나는 피난 아닌 피난을 가야만 했다. 낯선 집에서 홀로 무시무시한 태풍을 맞는 건, '육지 것'인 내게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내가 피난 간 곳은 올해 여름까지 문턱이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고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곰씨비씨'였다.
태풍의 공포는 무시무시한 비바람 소리와 함께 지붕이 일부 깨져나가면서 시작되었다. 천정과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빗물 탓에 집 일부 바닥은 흥건했다. 창문에 <영남일보>, <코리아헤럴드>, <서귀포신문> 등등 대선 관련 지면의 박근혜와 김문수의 찢어진 얼굴 사진을 이어붙이며 비명 속에 퀭한 밤을 보냈다.
태풍 산바도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인 가을날씨가 시작될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제주도는 길마다 억새가 가득할 것이고, 나는 여행자로 혼자 제주땅을 밟았던 2009년 가을의 풍경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을 거다.
직장생활 5년 차쯤 되었던 당시,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훌쩍 혼자 떠났던 제주도여행. 지금처럼 동네마다 몇 개씩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기 전이었다. 올레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일주하는 여행자도 많았지만, 나는 초보운전인 주제에 겁도 없이 렌터카를 빌려서 제주를 종횡무진 달렸다.
점심은 제주시에서 한라산소주에 멍게와 소라를 먹고 저녁은 서귀포 모슬포의 횟집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은 것이, 지금은 대평리에서 한시간을 운전해서 약 40km 떨어진 제주시까지 한 번 나간다는 게 '큰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타고 잠실에 있는 집과 용산의 회사로 출퇴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다.
그 후로 서울이 답답하게 느껴지면, 아니 틈만 나면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어댔고, 횟수를 거듭하면서부터 여행의 패턴은 고정돼 갔다. 금요일에 갔다가 일요일에 오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갔다. 그리고 어느새 대평리가 편해지니 마을에서 한 발자국도 뜨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