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 명예회장)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이날 안 후보의 현충원 참배에서 유달리 눈길을 끈 것은 박태준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특히 박 전 총리 묘소에서 무릎을 꿇고 분향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의례 목적으로 현충원을 찾은 고위인사들이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지만 전직 국무총리 묘소를 참배한 경우는 별로 알려진 바 없습니다. 참고로 서울 현충원에는 박 전 총리 말고도 진의종, 백두진(이상 국가유공자 제1묘역), 정일권(제3장군묘역) 전 총리 등도 묻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 후보가 여러 전직 총리 가운데 유독 박태준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안 후보와 박 전 총리 두 사람 간의 '인연'을 들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2005년 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만 6년간 포스코의 사외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니 그 인연이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박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세운 주인공입니다. 포철은 박정희 시대 경제건설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중화학공업과 함께 양대 축이랄 수 있습니다. '철강왕'으로 불리는 박 전 총리의 삶을 두고도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그가 포스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5·16 후 박정희 인맥 가운데 드물게 산업계로 진출한 박 전 총리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 경제 제1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뒤늦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이듬해 민정당 전국구로 당선돼 국회 재무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88년에는 노태우에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는데 그 시절 그는 김종필(JP)와 함께 3공 정치인을 대표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 된 그는 YS와의 불화로 정계를 떠났으며 1992년 10월 포철 회장직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칩거생활을 한 그는 지난해 12월 84세로 타계해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묘역(제3유공자 6번)에 묻혔습니다.
박 전 총리가 타계했을 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를 찾은 안 후보는 "포스코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정말 큰 기여를 한 의미있는 기업으로, 그 초석을 닦은 분이 박 명예회장"이라며 박 전 회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이렇다 할 교분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안 후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포스코의 기업문화와 이같은 터전을 일군 '선배 기업인' 박 전 총리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특히 박 전 총리가 박정희 시대의 상징적 인물인데다 보수성향이어서 박 전 총리 묘소 참배는 다각적인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안 후보가 박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바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 선생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안 후보 캠프의 대표적 원로인사로 꼽히는 데 두 사람 모두 19일 안 후보의 대선출마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출마선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캠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고 묻자 안 후보는 "(앞으로) 같이 할 분들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조 선생 등을 지목했습니다. 또 출마선언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 동력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도 박 전 회장의 영향을 받은 경제관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 선생은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우리 근현대사를 아우른 대하소설 작가로, 작품 속에서는 물론 평소 언행으로도 진보를 표방해 왔습니다. 그런 조 선생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관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두고 "겉은 육영수, 속은 박정희"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반면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당선과 안철수 후보의 부상에 대해서는 "그들이 평생 삶을 통해 진정성, 헌신성, 실천성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부상은 국민의 선택이고 시대의 요구이자 역사의 부름"이라고 호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인 조 선생은 박태준 전 총리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조 선생의 대표작 <태백산맥><아리랑><한강>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실존인물을 가명으로 등장시키거나 아예 실명으로 박은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는 작가 사회에서도 드문 일입니다. 우선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김범우는 자신의 실제 외삼촌(박순동)이고, 법일 스님은 자신의 부친(조종현, 승려)이며, 또 '소년 빨치산' 조원제는 경제학자 박현채가 그 모델입니다. 또 <한강>에 등장하는 퇴직기자들은 권근술 전 <한겨레> 사장과 그의 동료들을 간접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이밖에도 <한강>에는 실명이 더러 등장하기도 하는데 전태일 열사,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 선생,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등이 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개인적 인연과 '조정래의 영향'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