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셉수트 장례신전의 원경이다. 붉은 사암산 아래 있는 신전의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곳에서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진 반짝이는 오벨리스크가 보였던 모양이다.
박찬운
드디어 하트셉수트 장례신전에 도착했다. 이미 이 글 이곳저곳에서 이 파라오 이야기는 나왔다. 이집트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파라오다. 자기 배다른 자식인 투트모시스 3세의 섭정역으로 20년간 통치하고 스스로 파라오가 된 여성이다. 사후 그는 아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녀를 격하시키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모양이다. 스탈린도 사후에 그의 후계자로부터 처참하게 격하됐는데... 자고로 권력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권력을 잡으면 내려올 줄을 모른다. 급전직하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인 모양이다.
이곳은 외국 사람들에게 고대 유적지보다는 테러 장소로도 유명하다. 1997년 11월 17일 이슬람 무장단체가 여행객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한 곳이다. 그날 경찰관을 포함해 63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 관광은 한동안 어려웠다. 무서운데 누군들 가고 싶겠는가. 그 여파로 지금까지 이집트는 어딜 가도 보안 검색이 심각하다. 호텔을 들어가도, 관광명소 어딜 가도, 반드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집트 여행을 하기에 앞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봤다. 마침 BBC 다큐멘터리를 보니 <고대건축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신전을 소개했다. 붉은 사암의 병풍 아래 3층의 기둥이 퍽이나 인상적인 신전이었다. 이 신전은 멀리서 봐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 보면 층마다 앞에 조그만 테라스가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것이 안 보이고 단순히 3층 건물이다. 착시현상 때문이다.
1층과 2층 벽면에는 각종 이야기가 부조(오벨리스크의 주랑)로 새겨져 있다. 특히 1층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부조는 카르나크를 단장한 여 파라오의 업적과 관련이 있는데 오벨리스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화강석을 구하기 위해 아스완으로 떠난 장인들의 여행 이야기가 실려 있다. 3층 회랑에 올라가면 하트셉수트의 입상이 오시리스의 형상으로 도열돼 있다. 이중관을 쓰고 가짜 수염을 달아 위엄을 한껏 발산하고 있지만 여성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멤논의 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