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달아나고 없는 용장사터의 삼륜대좌불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보는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만진
용장골은 남산에서 가장 넓고 깊은 골짜기다. 그리고 용장사는 이 골짜기 최대의 사찰이었다. 그런 용장사가, 비록 무너져 자취를 잃었다고는 해도 탑 하나만 달랑 남겼을 리는 없다. 탑에서 10m 가량 아래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과 삼륜대좌 석불좌상이 바로 그들이다.
보물 913호인 마애여래좌상은 3층석탑의 하층 기단을 이루고 있는 거대 자연암석에 새겨져 있다. 멀리 고위봉을 응시하며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 불상은 8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입술을 얼마나 꼭 다물었는지 양쪽 볼이 쏙 들어갔다. 그만큼 사실적인 작풍의 불상으로, 부처님의 무릎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연꽃 무늬까지도 너무나 세밀하여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삼륜대좌불그런데 이 마애여래좌상 앞에는 그보다도 더 놀라운 불상이 있다. 웬만한 문화재 애호가나 역사여행 취미가라면, 실물은 비록 눈에 담지 못했더라도, 그 사진만은 어디선가 반드시 보았을 삼륜대좌불이다. 보물 187호로, 높이는 4.56m.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은 이름 그대로 바퀴[輪] 모양의 돌 셋[三]을 3층탑처럼 포개어 받침자리[臺座]로 삼고 있다. 2m가 조금 넘는 대좌 위에는 1.4m 높이의 불상이 앉아 있다.
이 불상은 사진으로 한 번 보고 나면 결코 잊히지 않는다. 사람의 뇌리와 감성을 지배하는 특이한 모습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까지 달아나고 없다. 이처럼 독특한 불상을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에 더욱 강렬한 충격을 떠안긴다.
하대석부터 시작하여 모두 4.56m 높이를 올려다보아도 목 위로 머리가 없으니, 어찌 불교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슴 깊이 울려오는 애잔한 느낌을 막을 수 있겠는가. 연꽃 무늬도 분명하고, 옷자락도 깔끔하여 보존 상태가 좋은 불상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인데, 누군가가 목을 날려버리다니!
날씨가 맑은 날 이곳에 오르면, 삼륜대좌불의 없어진 머리 위로는 하늘이 푸르게 흘러간다. 예로부터 푸른색은 어쩐지 슬픔을 나타내는 빛으로 여겨졌고, '푸른 슬픔' 같은 사비유(死比喩)도 흔히 쓰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어째서 고대 이래로 줄곧 사람들이 푸른빛과 슬픔을 그렇게 기어이 연결시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오늘 이곳 용장사터에 올라 목이 없어진 불상 너머로 푸른 하늘이 가득찬 정경을 보는 순간, 몸서리치게 다가오는 깨달음을 맛본다.
'아, 이래서 슬픔은 푸른 빛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