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한겨레신문 제공
요즘 한 '노인'의 거취를 놓고 연일 언론에서 말들이 많다. 비단 언론만이 아니다. 민주당, 새누리당 할 것 없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신문들까지 나서서 그에게 물러나라고 사설에서까지 질타를 퍼붓고 있다. 주요 대선후보 3인을 제외하면 그 노인은 요즘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1928년생이니 그 노인의 나이는 올해 만 84세. 일선에서 물러나 손주들 재롱을 볼 나이도 한참 지난 연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며, 기세 또한 당해낼 자가 없어 보인다. 그 노인의 이름은 최필립(崔弼立)(그의 형제는 항렬이 '립(立)'이다). 현 직함은 '재단법인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며, 2005년부터 7년째 이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선후보만큼이나 이슈가 된 80대 노인 최필립17일 민주통합당은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국정조사 및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정부기관의 책임자나 실세 권력자도 아닌 사람을 두고 제1야당이 사퇴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기는 드문 일이다. 발단은 그가 지난 10월 8일 MBC 사측 간부(이진숙 홍보기획본부장 등)와 비밀회동을 갖고 정수장학회 소유의 MBC 지분(30%) 등을 매각키로 논의한 것에서 비롯했다.
앞서 <한겨레>는 지난 13일(토) 1면 머릿기사에서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 등 갖고 있는 언론사 주식 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최 이사장은 이날 비밀회동에서 정수장학회 소유의 언론사 주식에 대한 처분 및 활용 계획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 이사장은 이날 "경영권도 행사 못하는 MBC 주식은 갖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다"면서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30% 매각 대금을 활용해)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반값등록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장물'로 불리는 정수장학회 재산을 처분해 그 돈으로 부산·경남 지역 대학생들에게 선심을 쓰겠다는 얘기다.
대선이 코앞인 시점에서 이런 안을 내놨으니 이걸 순수하게 볼 사람은 별로 없다. 결국 야당과 언론단체가 들고 일어섰고 '정수장학회 건'은 결국 대선 정국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답답하기는 박근혜 후보 측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급기야 박 후보는 17일 "조만간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강변해오던 박 후보로서는 '일보 후퇴'인 셈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대선 국면 초반부터 박 후보에겐 '앓던 이'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왔다. 5·16쿠데타 직후 김지태씨 소유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탈취해 만든 '태생'도 그렇지만 박 후보는 이곳에서 10여년간 이사장을 지냈다. 특히 이사장 재임시절 정관을 고쳐 비상근을 '상근'으로 만든 후 고액의 급여를 받았고, 또 후원금도 받았다. 결국 정수장학회는 박 후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면서 대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지자 보수신문들은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와의 '관계'를 서둘러 정리하라고 '조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정수장학회 문제가 이번 대선을 계기로 국민 눈높이에서 해결돼야 한다"며 사실상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사퇴와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의 이런 주장은 평소 야당과 언론단체들이 해온 주장과 똑같은 것이다.
그래도 별 반응이 없자 급기야 <조선일보>도 이 대열에 가세하고 나섰다. <조선>은 6일 뒤인 17일자 사설에서 "최 이사장은 박 후보가 대선에 나서기로 한 순간 이미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라며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됐다'는 박 후보와 장학회 측 주장은 설 자리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하면서 박 후보가 최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올해 84세의 최필립 이사장은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꿈쩍도 않고 있다. 되레 그는 "임기를 채우겠다"며 작금의 '사퇴 요구'가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는 식이다. 보수신문은 물론 박 후보조차도 은근히 사퇴 압박을 넣고 있으니 '장학회 관리를 맡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물러나라는 것이냐'며 그로선 서운해 할만도 하다. 대체 그는 어떤 연유로 '박근혜 사람'이 됐을까? 그와 그의 집안의 가족사를 한번 훑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