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일가와 권력 실세들1977년 봄, 육사에 입교한 '박지만 생도' 면회를 간 박정희 대통령 일가와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 육사 교장 등 당대의 권력 실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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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필름으로 찍은 이 한 장의 사진. 사진 속에는 모두 여덟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일가 4명과 당시 박정희 정권을 떠받치고 있던 핵심 4명이 그들입니다. 이들 8명 모두 한 시대의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 같아 보이지만 이 사진에서 만큼은 아닙니다. 그의 아들 박지만이 바로 주인공이랄 수 있습니다. 사진은 1977년 봄, 육사에 입교한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의 면회를 가서 찍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박지만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박지만은 흔히 '58년 개띠'로 불리는 1958년생입니다. 1953년 11월 별을 단 지 4년여 만인 그해(1958년) 3월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한 박정희는 5사단장을 거쳐 강원도 인제 7사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단장 관사에 기거하고 있던 육영수 여사는 두 달 뒤 5월 서울 신당동에 대지 100평, 건평 30평짜리 일본식 단층집을 구입해서 거처를 서울로 옮겼습니다.
이른바 박 대통령의 '신당동 사저'가 바로 이 집입니다. 당시 이 집에는 박 대통령이 전처(김호남)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딸 박재옥도 함께 거주하였는데, 재옥은 그해 10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박 사단장의 전속부관 한병기 중위와 결혼했습니다.
당시 군부 내에서 박정희 7사단장을 유난히 아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송요찬이 그해 6월 17일 1군사령관(중장)으로 승진하면서 박 사단장을 1군사령부 참모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듬해(1959년) 송요찬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자 이번에는 그해 7월 1일자로 박정희를 6관구사령관에 임명했습니다.
6관구사령부는 서울 일원의 부대를 지휘하면서 수도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부대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도경비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데 6관구사령관은 상당히 정치적인 자리였다고 합니다. 박지만은 1958년 12월 15일생이니 박정희가 1군사령부 참모장 시절에 태어난 셈입니다.
박지만은 1974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해부터 '고교 무시험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부산, 대구 등은 그 이듬해부터 적용됐는데 박지만보다 1년 후배인 필자 역시 무시험으로 고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이를 두고 박지만을 위해 교교 무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1977년 중앙고교를 졸업한 박지만은 그해 봄 부친의 뒤를 이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습니다. 지난 2004년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는 '자랑스러운 육사인'을 선정해 최초 수상자로 김점곤(1기) 평화연구원장, 박정희(2기) 전 대통령, 장우주(3기) 한미경영원 이사장 등 3명을 선정했는데 박지만은 부친을 대신해 상을 받았습니다.
태릉 소재 육사로 '박지만 생도' 면회를 갔던 박 대통령 일가의 복장은 두꺼운 코트 차림입니다. 아직은 봄이 이른 계절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앞줄 왼쪽부터 차녀 박근혜, 3녀 박근영(후에 '박서영' → '박근영'으로 개명함), 박 대통령, 박지만, 그리고 맨 오른쪽은 당시 육사 교장으로 있던 정승화 장군(당시 육군 중장)입니다.
뒷줄은 왼쪽부터 전두환 청와대 경호실 차장보(당시 육군 준장),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 등입니다. 박 대통령 일가와 청와대 경호실장, 비서실장, 그리고 육사 교장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당대의 권력 실세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셈입니다.
사진 촬영 시점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이들 8명 가운데 3명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1979년 '10·26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현장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을 맞고 비명횡사 했으며, 정승화 교장은 2002년 6월 12일 73세로 사망했습니다.
생존자 5명 역시 대부분 순탄치 않은 삶을 보냈습니다. 우선 박정희 대통령의 세 자녀 모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전두환 차장보는 박정희 사후 그 이듬해 '12·12쿠데타'로 집권했으나 집권 당시의 비리 등으로 감방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기껏해야 김정렴 비서실장 한 사람 정도가 큰 탈 없이 천수를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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