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해상자위대원 방한을 계기로 한일군사교류 실태를 보도한 9일자 <아사히신문> 기사
아사히신문
9일 자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해상자위대간부학교 대원 약 40명이 6일부터 방위(군사) 교류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7일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일행 가운데 다카하시 교육부장은 "한일의 안전보장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개별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해야 할 교류는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충원 방문과 관련해서는 "같이 나라를 지키는 자들끼리 자연스런 마음의 발로"라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군 감시를 위해 서해에 일본군함을 파견하기 위해 한국과의 군사교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편, 이들은 다음날(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한국전쟁 참전자인 백선엽 장군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백 장군은 한국전쟁 때 일본인이 기뢰 제거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백 장군은 강연 말미에 일본어로 "한국과 일본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이다. 함께 동양평화를 위해 공헌하자"며 대원들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일본어에 능한 백 장군이 일본어로 강의를 한 것은 양해한다고 쳐도 '일의대수(一衣帶水)' 운운한 대목은 간과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한 마디로 백선엽의 '친일성'이 재확인된 셈이다.
'일의대수(一衣帶水)'란 중국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 말의 뜻은 '옷을 묶는 띠처럼 폭이 좁은 강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된다. 이 말은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진(陳) 나라를 치기 위해 양자강을 건너면서 "도탄에 빠진 진나라 백성들을 구하는데 일의대수(一衣帶水)가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마다하겠는가?"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文帝)는 양자강을 한낱 띠처럼 좁은 냇물에 비유한 것이다. 마치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한국과 일본이 그런 형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포에서 일본 나리타까지 비행기로 불과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니 한일 양국을 두고 '일의대수(一衣帶水)'라고 할 만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일제 침략자들이 조선통치 논리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왜 '일의대수'를 강조했을까일제 말기 총독부는 '내선일체'를 강요하면서 조선과 일본은 '동조동근(同祖同根)', 즉 뿌리가 같은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데다 조상까지 한 뿌리니 하나(一體)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총독부가 이런 논리를 개발하면 선전은 춘원 이광수 같은 친일파들이 앞장서서 도맡아 했다.
지리적 여건으로 한국과 일본은 운명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는 건 사실이다. 마치 한 동네 이웃집처럼 가깝다. 그러나 고대 이래 일본은 말로만 한국을 '인국(隣國)'으로 여겼을 뿐 늘 침략의 대상으로 대해 왔을 뿐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그랬고 일제강점 35년이 그랬다. 그리고 이같은 '말장난'은 해방 후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나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용어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소위 '친일파'로 불릴 만하다. 그런 사례 몇 가지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