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시신은 오른쪽 눈이 없다?

[세계문명기행II : 페르시아 문명기행⑥] '파사르가데'와 '야즈드'에 가다

등록 2012.11.02 15:39수정 2012.11.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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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대왕이 숨 쉬는 파사르가데

파사르가데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이스파한으로 가는 간선도로를 타고 약 50킬로미터를 가면 볼 수 있다. 원래 이곳은 아케메네스를 건국한 키루스 대왕이 만든 수도이다. 이곳은 페르세폴리스만큼 잘 발굴되거나 보존되지 않은 상태로 광대한 면적에 몇 개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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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의 궁성터. ⓒ 박찬운


우리 탐사단은 시간 관계상 그중에서 그래도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두 곳을 관람하였다. 키루스 대왕의 왕궁과 키루스 대왕의 묘다. 키루스의 왕궁은 그 보존 상태가 페르세폴리스에 비해 현격히 조악하다. 중앙에 20미터는 족히 넘을 대형 석주가 우뚝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나 화려함을 짐작할 뿐이다.

이곳에서 우리 탐사단은 아주 흥미로운 부조 하나를 발견하였다. 궁터 중앙에 자리 잡은 돌문 양쪽에 그려진 네발 달린 반인반수의 동물인데 그 앞발에 거대한 물고기 문양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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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에서 발견한 반인반수의 동물, 그 앞 발에 물고기 문양이 보인다. ⓒ 박찬운


쌍어문을 찾고 있는 김병모 교수의 탄성이 들렸다. 드디어 고대 페르시아에도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졌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은 것이다. 문외한으로서는 그 문양이 김 교수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물고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이 나타난 것은 분명하니, 이것이 김 교수 필생의 고고학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기념물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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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르가데 근처 평원의 키루스 대왕묘. ⓒ 위키피디아


다음은 키루스 대왕의 묘로 알려진 곳으로 이동하였다. 넓은 평원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석묘는 우선 돌로 5층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돌 전각을 만들어 놓았다. 현재 보수작업이 진행되지만 전체적으로는 2500여 년 전의 묘치고는 아주 보존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보자마자 어디선가 봄직한 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모습은 내가 얼마 전 가 보았던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의 초기 사원의 핵심부와 어쩐지 유사하다. 앙코르 유적 중의 바콩사원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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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유적지 중 바콩 사원, 바콩 사원의 중앙탑 부분을 몇 분의 1로 축소하면 키루스 대왕의 묘와 비슷하지 않는가. ⓒ 박찬운


바콩사원의 크기는 키루스 대왕의 묘와는 비교가 안 되게 크지만 그 원형만은 분명히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콩사원은 9세기에 조성된 힌두사원이고 전체적인 모습은 불이 타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불과 연관이 많은 조로아스터교와 힌두교는 어떤 관련이 있을 법도 하다.

비록 1400여 년의 시차가 있는 두 묘지만 분묘 양식의 유사성으로 보아 분명 이 두 문명 간에는 무엇인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다. 부디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나의 의문이 풀어지길 고대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야즈드를 찾아

야즈드는 시라즈에서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이란 고원의 중앙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우리 탐사단은 파사르가데를 마지막으로 해서 시라즈 지역의 유적지를 탐사를 마치고 사막의 별들을 보며 350여 킬로미터를 달려 자정이 넘어 야즈드에 도착하였다.

야즈드는 역사적으로 확연히 밝혀지지 않은 도시다. 사산조에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그 확실한 흔적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곳이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로코폴로는 13세기에 이곳을 지나면서 "아주 아름답고 번성한 상업의 중심 도시"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주요한 방문 이유는 이곳이 이란의 어디에서보다 조로아스터교의 역사적 흔적을 알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조로아스터교도가 15만 명 정도 있는데 이곳에만 1만5천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가장 많은 곳은 인도의 뭄바이 근처로 약 10여만 명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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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탑. 왼쪽은 남자를, 오른쪽은 여자를 장례 지낸 탑이다. ⓒ 박찬운


탐사단의 첫 번째 방문지는 도시 남쪽 외곽에 위치한 '침묵의 탑'(타크메), 이곳은 조로아스터교의 조장문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황량한 벌판에 두 개의 자그마한 붉은 모래 산이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원통형의 흙벽돌탑이 세워져 있다. 이른 아침이라 이곳을 들어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어 실망이 컸는데 우리를 안내한 타라비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관리인을 데리고 와서 잠긴 문을 따 주어 탐사단은 이 침묵의 탑 근처에 갈 수 있었다.

침묵의 탑에 이르는 길목에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의 유적이 있는데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침묵의 탑은 왼쪽의 높은 쪽이 남자의 시신을, 오른쪽이 여자를 장례하는 곳이었다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일단 장례를 한 다음 시체가 이곳 탑에 운구되면 조로아스터교의 사제가 시신 옆에 앉아 시신의 어느 쪽 눈이 까마귀에 의해 뽑히는가를 관찰하였다고 한다. 만일 오른쪽 눈이 먼저 뽑히면 복을 받았다는 것이고 왼쪽이 먼저 뽑히면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지만 조로아스터교의 조장문화에서 새라고 하는 것은 영물임이 틀림없다. 아마도 새는 인간의 영혼을 천상으로 모셔가는 영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유한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사상이 강하다. 그래서 더러운 육체를 신성한 땅에 묻지 않고 조장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선행을 강조한다.

여기에서는 선신(아후라마즈다)과 악신(아리만)의 싸움에서 결국 선신이 이긴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선행을 강조한다. 선행을 하면 죽은 다음 심판을 받아 복락을 누리지만 악행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사상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사상이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는 불교의 팔정도와 유사한 삼정도(바른 생각, 바른 행동, 바른말)를 강조한다.

이런 내용을 보건대 조로아스터교가 기원전 6~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후에 탄생한 불교나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기독교의 부활론, 최후심판론 등과 불교의 인과응보론이 모두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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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저/장희창 역) 책 겉그림. ⓒ 민음사

말이 나왔으니 철학자 니체에 관해 이야기 좀 해보자. 조로아스터교가 인류 최대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철학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게 된 모티브가 된 모양이다.

니체에게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의 독일어음)는 진리와 지혜를 상징한다. 십 년간 고향을 떠나 산에 들어간 차라투스트라는 고독 속에 정진을 거듭하여 드디어 아침의 태양을 맞이하며 세상에 나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니체는 지혜의 상징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초인을 역설한다. 도대체 읽어도 읽어도 알쏭달쏭한 말이다. 하지만 야즈드에서 조로아스터를 만나다 보면 어쩜 니체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릴지도 모른다. 니체에겐 차라투스트라도 초인이고, 그를 닮은 자신도 초인이다. 그리고 초인과 짐승 사이에 우리들 인간이 있다. 니체는 초인이 되어 짐승보다는 나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준엄한 훈계를 한다.
#세계문명기행 #페르시아 문명 #파사르가데 #야즈드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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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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