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대신 돼지 줄게"... 이 사장님, 참 나쁜 이유

다르게 '취급'당하는 이주노동자... 컴퓨터·세탁기 주겠다고도

등록 2013.03.21 09:25수정 2013.03.21 09:5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괴짜들에게 붙여지는 이름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자 등등. 이들은 규칙이나 현상 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그들이 미치광이로 보이겠지만, 우리의 눈에 그들은 천재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미친 사람들만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다르게 생각하세요."


'다르게 생각하라.' 스티브 잡스가 1997년 12년 만에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임시 CEO로 복귀했을 때 시작한 캠페인 내용이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가 나간 뒤 12개월 동안 애플의 주식은 세 배로 뛰었다. 이 캠페인은 잡스가 애플사에서 다시 최고 경영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는 역할을 했고,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는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캠페인의 모델이 됐던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에디슨·마틴 루터 킹 목사·무하마드 알리·인상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테드 터너·존 레논 등 누구나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르게 생각해서 남들과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다르게 생각할 때, 이들은 '다르게 취급당하기도' 했다. '차별'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다. 천재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차별, 다르게 취급 당함을 이들은 극복했다.

반면, 이 땅에는 다르게 취급당함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 있다. 이주노동자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다르게 취급당하는 이주노동자는 차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의 어이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여기 있다.

컴퓨터·세탁기 사준다는 사장님이 나쁜 이유

사장이 알리에게 보낸 문자 컴퓨터도 사주고, 세탁기도 사준다는 사장의 말... 밀린 급여 지급이 우선이다. ⓒ 고기복

"알리야, 컴퓨터 사줄 거야. 세탁기도. 알았지?"


이 사장님, 참 '좋은 분'이다. 컴퓨터도 사주고, 세탁기도 사준다니. 그런데 알리는 "사장님, 나빠요"라고 말한다.

사장이 자꾸 "돈 없어, 돈 없어" 하면서 석 달 넘게 월급을 주지 않자, 알리는 사장에게 "사장님 카드 있어요, 카드로 컴퓨터 살 수 있어요, 세탁기 살 수 있어요, 나 컴퓨터 고장 났어, 세탁기 고장 났어... 왜 돈(월급) 안 줘요?"라며 지급하려고 했다면 왜 지급 못 했겠느냐고 따지듯 말했다. 그 뒤부터 사장이 "컴퓨터도 사 주고, 세탁기도 사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한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이란인 알리는 1998년 관광비자로 입국했다가 본국에서의 종교적 핍박을 이유로 난민신청 중인 사람이다. 알리는 난민심사 중,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얻어 2011년 10월부터 강북구 미아동에 있는 한 봉제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난민신청자가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일반적인 수순이다. 그런데 알리는 회사를 그만두기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석 달 보름 치의 급여(540만 원)을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임금 지급이 밀린 적이 있었는데, 알리는 외부에 있는 한국인·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그럴 때마다 사장은 마지못해 한국인·단체를 통해 임금을 전했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둔 뒤 알리가 사장에게 미지급 임금 540만 원을 달라고 하면, 사장은 매번 조금만 기다리면 주겠다는 약속만 했단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알리는 그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그만둔 뒤에도 내국인 노동자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았다. 왜냐면 1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기까지 같이 일하면서 급여를 못 받았던 한국인 동료들은 밀린 급여를 전부 받았기 때문이다. 알리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통화에서 알게 된 사실은 사장이 알리가 난민신청자라는 것을 알고, 밀린 급여를 요구하면 출입국에 전화를 걸어 알리가 출근하지 않으니 잡아가라고 하겠다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일과 관련해 나는 지난 15일 봉제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사장은 "회사 영업이 잘 되지 않아 급여를 주지 못했는데 조만간 지급하겠다"고 둘러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사장이 이러 저렇게 말을 하더라고 알리에게 전달하는 동안, 그 사장은 알리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내용은 이랬다.

"알리야, 컴퓨터 사줄 거야. 세탁기도. 알았지?"

이 정도 되면 알리가 있던 봉제업체의 사장은 근로기준법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업주라고 해도 무방하다. 알리를 고용하면서 임금지급 기본 4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지킬 의사도 없으면서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단지 난민신청을 한 '만만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들, 임금 지급에도 원칙이란 게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43조. ⓒ 법제처


근로기준법 43조는 임금 지급에 대해 직접·전액·통화·정기일 지급이라는 4가지 기본 원칙을 정해 놓고 있다. 알리의 사장이 사줄 리도 만무하지만, 컴퓨터를 사주고, 세탁기도 사주겠다고 한 것은 통화 지급의 원칙에 어긋난다. 통화 지급이란 우리나라에서 '유통 가능한 화폐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회사 생산 품목도 아닌 컴퓨터나 세탁기를 사 주겠다며 급여를 주지 않은 것은 사장이 외국인인 알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를 보여준다.

통화 지급 원칙 이외에도 사측은 알리에 대해 임금 지급 기본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급여를 제때 준 적이 없으니 정기일 지급 원칙을 어겼고, 정해진 금액 전부를 한꺼번에 지급한 적이 없으니, 전액 지급 원칙 또한 어겼다. 또한 알리가 외부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만 마지못해 찔끔, 도움을 청한 외부인을 통해 급여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직접 지급원칙도 어겼다.

근로기준법 109조는 임금 지급 원칙 중 하나라도 어길 경우 3년 이내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을 한다는 사람 입장에서 임금 지급 기본 4원칙은 함부로 어길만한 게 아니다. 그런데 알리의 사장은 상대방이 난민신청자라는 이유로 대담하게 기본 원칙 전부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월급 대신 돼지를 준다고?

누군가 당신에게 임금으로 돼지를 준다면? ⓒ sxc


근로기준법이 임금지급 기본 원칙에서 통화 지급을 명시한 것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3년부터다. 19세기 자본주의 초기 영국 등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감액하거나 노동자를 자기 기업에 묶어두는 수단으로 기업 생산품을 급여의 일부로 지급하는 현물 급여를 널리 사용했다. 이러한 급여 지급 방식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수단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화 지급 원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알리 같은 경우는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마치 사줄 것처럼 컴퓨터·세탁기 운운하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실제 급여를 현물로 받은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나는 마장동 소재 정육점에서 일하던 중국 국적 이주노동자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마장동에는 우리나라 최대 축산물 도매시장이 있는데, 이곳의 몽골·중국 국적 이주노동자들은 정육점·도축장에서 일하다가 급여를 못 받을 경우 종종 급여를 대신해 도축된 돼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들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시기는 알리가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시기와 비슷했다.

시세에 따라 돼지를 급여로 받은 이주노동자는 돼지를 팔아 급여를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돼지를 오랫동안 보관할 처지도 못되기 때문에 주위 아는 가게에 헐값에 돼지를 넘기거나, 형편을 아는 이들에게 조금씩 파는 식으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한 달 급여로 돼지 두 마리를 받는다. 하지만, 마장동 정육점에 돼지 한 마리를 넘길 때는 안면이 있다고 해도 40만 원에서 45만 원선에서 거래하기 때문에 돼지를 팔 때마다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도 정육점 사장은 너무 당당했다고 한다. "돼지 팔면 돈이 되지 않느냐"면서.

요즘은 농어촌에서도 현물을 급여로 지급하지 않는다. 농촌에서 벼를 수확한 뒤 인건비로 쌀 몇 가마니 지고 가라고 하고, 시금치 밭에서 시금치를 수확하고 나서 시금치를 담은 박스 몇 개를 갖고 가져가라고 하면 일할 노동자가 있을까. 이는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 조건이 아니다.

임금을 통화로 지급하라는 것은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 원칙이 무너지면, 노동자는 기본적인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송금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통화 지급 원칙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제생활을 위해서 정기일 지급 원칙과 함께 꼭 지켜져야 할 임금 지급 원칙인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일을 하고 현물로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사업주가 한국인을 고용했다면 돈 대신 돼지로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발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을 다르게 취급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런 행동으로 옮겨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 대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의식이 급여를 현물로 지급하고도 큰소리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임금지급 기본원칙 #근로기준법 #차별 #난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2. 2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3. 3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4. 4 10년 만에 8개 발전소... 1115명이 돈도 안 받고 만든 기적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