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작은 결혼식', 내가 오해했다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②] 결혼식장 구하기

등록 2013.04.02 14:54수정 2013.04.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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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는 길. '곰씨'의 폰으로 "기사 잘 봤다"면서 문자가 왔다.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응? 어떻게 벌써 봤지?'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포털사이트 메인에 내 기사(☞관련기사 : "남들과 똑같은 결혼식 다 싫어해, 그래도 어쩌겠어")가 걸려있었다.

곰씨와 나는 도서관 앞에 자리를 잡고 댓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웬일로 긍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려있다. '아직 '댓글 좀비'들이 활동할 시간이 안 된 건가.' 대부분 '소박한 결혼' 취지에 공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는 지금의 나처럼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꿈꿨던 이들의 경험담도 있었다.

"화이팅~!! 저두 뭔가 남다르게 해보려다... 포기했어요. 청첩장도 식장도... 어른들 체면에 맞춰 고르다보니... 우리 부모님 설득하랴, 남친 설득해서 남친 부모님 설득하랴... 시끄러워질 거 같아서 그냥 다 어른들 하자는 대로 했어요... 어차피 우린 식같은 건 의미 없었으니까... 효도라 생각했죠... 해보니..결국은 손님의 대부분은 제가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손님들이더군요... 신랑신부 당사자를 위한 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거 맞더라구요."

"이 기사 내용처럼 남들 다하는 그런 결혼식을 하려고 하는데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더라... 그런 거에 치이다보니 나중에는 나 역시 귀찮고 힘들어서 편할려고 남들 하는 것처럼 따라하게 되더라구요. 그넘의 주변시선이고 형식이 뭔지....지금 생각해도 참 한심하고 후회스럽다."

하루에 한 쌍만 결혼...대관료는 6만 원

 국립중앙도서관 전경.
국립중앙도서관 전경. 홍현진

아, 토요일 아침부터 웬 도서관이냐고? 주말에 도서관 데이트하러...는 아니고, 이날은 조금 다른 목적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지난 번 기사에서 곰씨와 내가 꿈꾸는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결혼 비즈니스'에서 벗어난, 간소하고 특별한 결혼식. 그러려면 먼저 결혼식장을 알아봐야했다. 일단 하루에도 몇 건의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일반 웨딩홀은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곳은 부담스러웠다. 흠, 그럼 어디가 좋을까. 


폭풍 검색을 하다 '공공기관 결혼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평일에는 공공기관으로 쓰던 공간을 주말에는 결혼식을 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것. 서울시청, 구청, 구민회관, 복지관, 문화회관 등에서 이러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단다.

처음 공공기관 결혼식 이야기를 꺼내자 곰씨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세팅 같은 거 다 하려면 오히려 돈 더 드는 거 아냐? 인원도 제한 있고. 피로연은 어떻게 해?"

그러던 중 우연히 국립중앙도서관 결혼식 기사를 보게 되었다. 평일에는 국제회의장으로 쓰던 곳을 주말에는 작은 결혼식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한단다. 피로연은 국제회의장 옆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할 수 있다. 식당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업체가 뷔페를 제공한다고. 1인당 부가세 포함해서 2만원~2만 8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여기에 음료 포함하면 1인당 3만 원 정도다).

신부대기실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신부대기실도 있고, 폐백도 할지는 모르겠지만 폐백실도 있다. 꽃길 같은 것도 세팅해준단다. 기본적으로 웬만한 건 다 갖춰있는 셈. 본식장 규모는 200석. 최대 25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사용료는 5만 9090원.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이 함께하는 결혼식

국립중앙도서관 이야기를 꺼내자 곰씨는 "어, 작년에 시험 끝나고 거기에 수험서 많이 기증했는데"라며 반가워했다. "한 번 가보지 뭐." 금요일, 나는 휴가, 곰씨는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4~5군데 예약 걸어놓고 취소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직접 찾아와야 한단다. 신청은 평일에만 할 수 있다.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내려 국립도서관에 가는 길. 우리는 도서관 주변 경관을 보면서 어린아이마냥 "오, 좋은데"를 연발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바로 옆이라 부산에서 오기도 좋을 것 같다(내 고향은 부산이다).

총무과로 찾아가 예식장 담당자(문의 : 02-590-0534)를 만났다. '아무리 저렴해도 공공기관은 좀...'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공기관 결혼식장이 찬밥신세라는 기사를 봤는데, 이곳은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올해 들어 벌써 60번째 예약자란다. 7, 8월과 추석 시즌을 제외하고 토요일 예약은 이미 11월까지 꽉 차있고, 일요일은 10월 말이 되어서야 빈자리가 있었다.

더운 여름에 결혼식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빠르면 6월, 늦으면 9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가보다. 일단 10월 20일로 예약을 했다. 인터넷으로 예식장 예약 현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평일에는 회의장으로, 주말에는 작은 결혼식을 위한 예식장으로 사용한다.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 평일에는 회의장으로, 주말에는 작은 결혼식을 위한 예식장으로 사용한다. 홍현진

담당직원의 설명을 듣고, 국제회의장과 구내식당을 둘러봤다. 일반 결혼식장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도 없지만, 너무 화려하지 않은 결혼식을 원하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쌍만 결혼식을 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장은 최대 3시간, 피로연은 최대 2시간 동안 할 수 있단다. 물론 그렇게 오랫동안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시간에 쫓길 염려는 없을 것 같다.

결혼식 진행 방식도 우리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결혼식 진행음악이 있으면 음원을 보내주면 된다"는 이야기에 곰씨와 나는 동시에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를 떠올렸다. 얼마 전 곰씨와 함께 봤던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나오는 곡인데, 이 곡도 영화 <멜랑콜리아>만큼이나 반전이 있다.

남자 주인공인 브래들리 쿠퍼는 이 노래만 들으면 이성을 상실해버린다. 자신의 결혼식 주제곡이었던 'My Cherie Amour'를 틀어놓고 아내가 집 욕실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 뭐, 그래도 스티비 원더니까. 'Isn't she lovely'도 넣으면 좋겠다.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도 빠질 수 없다. 곰씨와 나는 2004년, 대학 1학년 때 야학에서 만났다. 둘 다 재수를 했고,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야학에서 우리는 '이모님', '이모부님'들을 대상으로 검정고시 수업을 했다. 곰씨와 나는 국사수업을 맡았고,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다. 그러다가 곰씨가 노래방에서 빌리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를 부르는 걸 듣게 됐다. 그 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던 기억이 난다.

"200명? 오지 말라는 소리지?

 'My cherie Amour'를 들으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이 남자.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한 장면.
'My cherie Amour'를 들으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이 남자.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한 장면.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그로부터 일주일 후, 뷔페 시식을 하려고 국립중앙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1편 기사가 나온 바로 그 날이다. 결혼식은 오후 1시. 국립중앙도서관 주변을 돌면서 "10월에 여기에서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사진 찍으면 되겠다", "그날 날씨 좋아야 할텐데" 이야기하며 곰씨와 나는 또 다시 들떴다. 낮 12시 30분부터 시식을 시작했다. 미리 밥을 먹으러 온 하객들도 있었다. 음식은 메뉴가 많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괜찮았다.

어? 그런데 결혼식 시작 시간인 오후 1시가 돼도 하객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결혼식 하나 볼까'하며 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이 시작됐는데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식장에 살짝 들어가 봤다. 주례사가 시작되자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사람, 옆 사람과 수다를 떠는 사람. 역시나 어수선한 분위기다. 일반 결혼식과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양가 100명씩, 하객 200명을 생각했던 것도 적은 인원이 모이면 그만큼 집중도 있게, 모두가 즐기는 결혼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결혼식을 진행하느냐'였다.

그 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200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명? 오지 말라는 소리지? 난 안 갈게"라고 웃으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생각해봐. 우리 회사만 해도 직원이 100명인데. 누구는 오라 그러고, 누구는 오지 말라 그럴 수는 없잖아."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선배는 진지하게 충고했다.

우리 집은 부모님과 친척들이 부산에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기 어렵겠지만 서울이 고향인 곰씨네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작은 결혼식' 때문에 섭섭하고 서운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곰씨는 "작은 결혼식이 특별한 결혼식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겠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민은 깊어졌다. 내가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그냥 남들처럼 일반 결혼식장에서 해야 하나. 이미 나가버린 1편 기사는 어떡하지. 다음 날, 곰씨와 함께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고 나와서 밥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결혼식 #결혼 #소박한 결혼 #공공기관 결혼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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