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다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23] <연기(煙氣)>

등록 2013.04.24 09:50수정 2013.04.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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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해발 이천육백 척의 고지에서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바닷바람이 무섭다고
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
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 된 연기

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
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
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


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선수(選手)
백화가 만발한 언덕 저편에
부처의 심사(心思) 같은 굴뚝이 허옇고
그 위에서 내뿜는 연기는
얼핏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 꽃밭 넘어서
짓궂게 짓궂게 없어져보려는
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1955)

1955년 경, 수영 부부가 재결합한 후 처음 정착한 곳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성북동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세든 집은 백낙승(白樂承)의 별장이었습니다. 백낙승은 팝 아티스트 백남준의 부친으로,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 기업인 '태창 재벌'을 세운 경성의 거부였지요.

그런 거부의 별장답게, 수영이 세를 들어간 그 집은 북한산의 산음(山陰)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수영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깃들인 곳이기도 했습니다. 수영이 어의동 소학교 6학년 때 뇌막염에 걸려 아버지와 함께 요양을 왔던 곳이 바로 그 일대였지요. 이런저런 인연으로 수영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동네였던 셈입니다.

수영 일가의 삶터가 된 서울 마포 구석의 서강 언덕배기


수영 부부가 세를 들어간 집에는 별장을 지키는 관리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리를 잘 못 듣는 노인이라 하루종일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지냈습니다. 소음을 싫어했던 수영으로서는 그 소리를 참기 힘들었지요. 수영은 소리에 무척이나 민감했습니다. 수영의 아내 김현경의 회고에 따르면, 수영이 시를 쓸 때는 온 식구가 고양이처럼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수영 부부는 귀머거리 영감의 라디오 소리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새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리를 잡은 곳이, 이후 수영 일가의 삶터가 되는 서울 마포 구석의 서강(西江) 언덕배기였습니다. 주소는 서울 마포구 구수동 41번지였지요. 수영 부부의 집은 500여 평 대지에 건평 26평의 규모였습니다. 잡초가 우거진 풀숲이 주변에 펼쳐져 있어 모기가 들끓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영 부부는 그 일대의 한적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습니다.


이사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현경은 시내에 나갔다가 덕수궁 뒤편에 있는 배재학교 근처에서 서양식 돌벽돌 건물을 허물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그때 마침 인부들은 그 돌벽돌들을 버릴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경의 눈에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그 벽돌들의 빛깔과 모양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곧 이 돌벽돌들을 차로 실어 날라 서강 언덕에 있는 집으로 옮깁니다. 그러고는 돌벽돌을 이용해 멋지게 굴뚝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후에도 수영 부부는 집을 좀더 손봅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허술하기 그지없던 집이 제법 그럴듯한 양옥집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온전한 삶터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아내 현경에게 '얼치기 양옥'이라며 핀잔을 주곤 하던 수영도 만족해했습니다.

연기가 되고 싶어하는 수영의 모습을 상상하다

이 시는 아마도 이때쯤 지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화가 만발한 언덕"(3연 3행)이 배경의 하나로 등장하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연기'가 나오는 곳이 마침 "부처의 심사(心思) 같은"(3연 4행) 하얀 '굴뚝'에서 나오기 때문이지요. 덕수궁 뒤편에서 날라 온 돌벽돌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공들여 쌓은 '굴뚝'이니 "부처의 심사" 같은 비유가 나올 수 있었을 테지요.

그렇다면 이때의 '연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첫 번째 단서는 이 작품 전체의 첫 문장인 "연기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1연 1행)입니다. 그렇다면 '연기'는 그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하는 대상의 상징물이라는 말일까요. 하지만 "바닷바람이 무섭다고 / 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 / 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 /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연기"(1연 3~6행)와 같은 구절이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 딱히 그런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닌 성싶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4연 1행)이라는 진술이 의미심장합니다. '연기'는 결국에는 소멸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냥 없어지지 않고 '짓궂게' 없어지는(4연 3~5행 참조) '연기'를 이야기합니다. 그 '짓궂게' 없어지는 곳이 마침 '꽃밭'입니다. 그곳은 곧 "부처의 심사 같은 굴뚝"이 있는, "백화가 만발한 언덕"이지요. 사라짐을 말하면서도 '꽃밭'을 그리고 "부처의 심사"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런 점에서 이 시에서 '연기'는 곧 수영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이 무렵 수영은 전후의 피폐한 현실을 가까스로 이겨내면서 서서히 소박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겪은 뼈저린 경험은 시시때때로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니 그럴수록 수영은 내일의 희망을 그려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래, 여전히 현실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 그렇게 해서 내가 없어지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았겠는지요. '연기'를 "현실의 선수"(3연 2행)로 빗댄 까닭도 여기에 있었을 겁니다.

서강의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 아내 현경과 함께 돌벽돌을 차근차근 쌓아올려 굴뚝을 세우는 수영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렇게 세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스스로 연기가 되고 싶어하는 수영의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꾸며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가난한 현실 속의 수영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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