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돈'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까닭은...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26] <여름 아침>

등록 2013.04.30 16:46수정 2013.04.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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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統覺)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
차차 시골 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내려온다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위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내려가는데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 아침에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
단 한 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1956)


수영은 일에 대한 나름의 확고하면서도 독특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는 1965년에 <토끼>라는 제목의 산문을 씁니다. 이 작품은, 병에 걸린 닭들이 토끼 우리에 들어가 있으면 병이 깨끗이 낫는다는 노모의 권고에 따라 수영 부부가 토끼를 키우면서 겪은 일과 소회를 적은 짤막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마지막 대목에는 일에 대한 수영의 관점을 알게 해 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한번 보시지요.


"그에 비하면 토끼는 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토끼도 (닭에 못지않게) 기르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얼마가 남느냐보다 얼마나 힘이 드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아내는 아직도 나의 이 '역경주의(力耕主義)'를 그리 신뢰를 두고 있지는 않고 있는 모양이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51쪽)

수영에게는 일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얼마가 남느냐보다 얼마나 힘이 드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지요.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일 자체에 몰두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 중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일벌레가 많습니다.

바로 수영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다른 산문인 <장마 풍경>이라는 글에서 "사람은 바빠야 한다"는 철학을 범속한 철학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느니보다 도둑질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속언(俗言)을 인용하면서, "하여간 바쁘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지요.

"그러나 이왕이면 나만 바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바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나만 바쁘다는 것은 이런 세상에서는 미안한 일이 되고, 어떤 때에는 수치스러운 일도 되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모두 다 바쁘다는 것은 사랑을 낳는다." (<김수영 전집 2> '산문' 48쪽)

못 말리는 '바쁨주의'라고나 해야 할까요. 하여튼 일에 대한 수영의 생각에는 정말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이 시와 같은 해에 쓰인 <사무실>이라는 작품에서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 어떻게 하리 / 어떻게 하리"(<사무실> 3연) 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수영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지요. 수영은 다른 사람이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게"(<사무실> 1연 2행) 일하는 것에 남다른 눈길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최하림 시인은 수영이 원고료를 받으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당시 문인들의 일반적인 관습을 무시하고 술을 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를, 수영이 선린상고 출신으로 돈에 대한 근대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다른 문사들과 달리 수영에게는 글 쓰는 일이 정신적인 작업이 아니라 현실적인 직업이었다는 사실 등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실제로 수영은 친구들이나 젊은 후배 문인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주 찾아오면 원고를 쓸 수 없고, 그러면 돈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일의 결과보다 일을 얼마나 힘들게 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당대 문인들과 달리 돈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모순된 태도라고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고자 했던 수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바쁘게 돌아가는 양계장 일이, 그리고 시골이나 다름없었던 서강 언덕에서의 노동하는 삶이, 그동안 수영의 내면에 있던 일에 대한 열정을 터져 나오게 한 것과 흡사했습니다. "생산적인 존재가 아니라 소비하는 사람"(수영의 남동생 수성이 회고한 말로, <김수영 평전> 252쪽에 나옵니다)이었다는 수영이 일에 뜨겁게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으니까요.

이 시에는 바로 그런 건강한 노동의 삶을 향한 수영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수영이 "가족과 같다"(1연 1행)고 비유하는 "여름아침의 시골"(1연 1행)은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6연 2행)고 싶어하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는 풍경입니다. 수영의 말을 빌리면, 그 풍경은 "일을 하다가 잠깐 쉬는 동안에 보는 풍경,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풍경"(<김수영 전집 2> '산문', 47쪽)인 셈이지요.

수영은 일하면서 보는 풍경이자, 풍경 속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 꾸밈없이 행하는 노동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는(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 / 밭고랑"(2연 7, 8행)이라는 구절에서 그런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지요. 수영이 "사람들이며 /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5연)고 청한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겠지요.

언젠가 수영의 모친은, 이 세상에 수영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김현경 여사의 회고록 <김수영의 연인>(2013, 책읽는 오두막)을 보면 수영이 공책에 메모해 놓은 하루의 일과 계획표가 자료 사진의 하나로 실려 있습니다. 그 메모에는 "글쓰기 아침 네 시간", "책 읽기 아침과 오후 도합 네 시간", "밥 벌기 오후 혹은 밤 네 시간" 등의 하루 일과가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오후나 밤에 하는 "밥 벌기"는 아마 생계를 위해 했던 번역 일이겠지요.

이 메모만 놓고 보면, 수영은 하루에 12시간 동안이나 집필과 독서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쓰기만 해도 8시간이나 되니 상당한 집필 노동을 한 셈이지요. 이즈음 일에 대한 수영의 긍정적인 시각이나 삶을 위한 열정은, 위에서 잠깐 소개한 <사무실> 외에, 역시 이 시와 같은 해에 쓰인 <여름뜰>, <눈>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강 언덕바지에서의 평범한 일상이, 수영에게 광복 후의 혼란과 한국 전쟁 등으로 피폐해진 심신을 건강하게 바꿔 준 일등공신이 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여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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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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