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 치링의 희망은 "한국 가는 것", 한국서 온 내 소원은...

[신선생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⑤] 차메에서 피상까지

등록 2013.05.22 11:25수정 2013.06.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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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달빛 사이로 보이는 설산 모습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을 확인시켜 줍니다. 교교한 달빛 아래 아스라이 빛나는 설산 모습은 저를 몽환적으로 만듭니다. 볼일도 잊고 한참이나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로지 앞에 흐르는 마르샹디강의 물 흐름소리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낮 시간과는 달리 한밤중의 물소리는 굉음을 내고 있습니다. 빙하 속에서 수 억 년 동안 잠자고 있던 강물은 남들이 잠든 한밤중에 세상을 여행하나 봅니다. 강물은 네팔 남부 테라이 평원을 지나 인도의 갠지스 강으로 여행합니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강물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저에게 멈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트레킹은 '먹고, 걷고, 자는 것'

이번 트레킹의 화두는 "단순하게"였습니다. 먹고, 걷고, 자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밤 히말라야에서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인연들이 꿈을 통해 저를 찾아 이곳까지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제 마음의 표현이겠지요. 세상을 잠시 잊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온 것인데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나 봅니다.

차메를 출발하였습니다. 마을 끝에 초르텐(Chorten, 불탑)이 트레커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초르텐은 티벳 불교의 불탑으로 마을의 안녕과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도 쏘롱라를 무사히 넘게 해 달라고 기원하며 초르텐을 지나 산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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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초르텐 모습 ⓒ 신한범


어제부터 일행이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오신 분, 회사 퇴직 기념으로 첫 히말라야 트레킹을 오신 분 그리고 나와 같은 직업에 근무하며 매년 히말라야를 찾는 분까지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히말라야에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제 '혼자 걷는 히말라야'가 아닌 '함께하는 히말라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은 잣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숲길 옆에는 강물 소리가 트레커의 피로를 잊게 합니다. 완만한 경사와 빼어난 경관 그리고 가끔씩 볼 수 있는 설산이 조화를 이루며 걷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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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힐링이 가능한 한적한 숲길 ⓒ 신한범


피상에서 시작한 숲길은 브라탕(2,850m)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브라탕은 사과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겨울철인지라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허술한 로지에서 사과를 팔고 있습니다. 몇 개를 사서 먹어보니 생긴 것과는 달리 단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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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브라탕 마을의 사과 ⓒ 신한범


브라탕에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자 거대한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이 보입니다. 가파른 절벽 가장자리에 실낱같은 길이 걸려 있습니다. 변변한 도구하나 없이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알 것 같습니다. 이곳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파운다 단다(Paungda Danda Rock Face)라는 거대한 바위산이 버티고 있습니다. 높이가 무려 1500m 이상 되는 바위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높이와 면적이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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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깎아 만든 도로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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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 높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바위산 모습 ⓒ 신한범


해발 3000m를 넘어서며

드디어 해발 3000m를 넘었습니다.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고소는 대개 해발 3000m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산병은 고소에 우리 신체가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지만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아직 요원합니다. 분명한 것은 산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찾는다는 것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물을 많이 마시며 천천히 걷는다면 즐겁고 안전한 트레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쿠레포카리(3060m)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포카리는 호수를 의미합니다. 넓은 평원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바위산은 여전히 거대한 몸짓으로 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점심을 주문하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일기를 씁니다. 오늘 목저지인 피상까지 거리가 멀지 않기에 최대한 휴식을 취해 봅니다. 

오후 3시경, 피상(3200m)에 도착하였습니다. 피상은 원래 피상 피크 아래 위치한 '위 피상'만이 있었지만 트레커들이 증가하면서 '아래 피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윗 피상에 위치한 곰파(불교 사원)로 향합니다. 고산 지대에서는 고소 적응을 위해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최고 고도보다 수면고다가 낮으면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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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 피상에 도착하여 ⓒ 신한범


네팔 속의 티베트

곰파는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 피상 마을을 지나 곰파로 향합니다. 곰파 입구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타시텔레'하면서 인사를 건네옵니다. '타시텔레'는 티베트 지역의 인사말입니다. 이곳은 티베트 사람이 거주하며 불교를 숭상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오른 곰파에는 룽다와 타루초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경내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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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모습 티베트 복장의 할아버지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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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파 모습 위 피상에 자리 잡은 곰파 ⓒ 신한범


건너편 안나푸르나Ⅱ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 있자니 눈물이 납니다.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눈물이 많아 졌습니다. 조그마한 감동에도 눈물샘이 참지를 못합니다. 히말라야가 저를 감성적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마니석과 마니차를 만나면 왼쪽으로 돌며 마니차를 돌립니다. 이런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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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2 곰파에서 본 안나푸르나2 모습 ⓒ 신한범


겨우 4일 걷고 있음에도 비대한 몸 곳곳에서 뭔가 심상찮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에는 물집이 잡혔고, 강한 햇빛에 피부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타구니 사이는 마찰로 헐어지면서 통증이 무척 쓰라립니다. 연고를 발라 보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이곳은 다녀올 병원도, 친절한 약사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포터 치링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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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링 포터 치링과 함께 ⓒ 신한범


저녁 난롯가에서 포터인 치링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번 트레킹이 몇 번째야?"
"첫 번째요."
"트레킹이 끝나면 무엇을 할 생각이야?"
"고향에 다녀 온 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요."
"왜?"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포터 치링의 희망은 '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온 저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라운딩 #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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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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