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도 '더' 추운 곳과 '덜' 추운 곳이 있다

[시베리아 이별여행③]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착기

등록 2013.06.04 15:56수정 2013.07.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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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 네프스키 거리의 밤풍경 ⓒ 예주연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9시간 30분, 모스크바 공항에서 4시간의 대기 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1시간 30분의 비행. 장장 15시간을 실내에 갇혀있었던 탓인지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맛본 러시아의 겨울 밤공기는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짐을 찾은 뒤 나보다 조금 일찍 독일 베를린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날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던 S를 만났다.


시내로 가는 버스,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방법이 적힌 종이를 손에 꼭 쥐고 긴장해있는 우리에게 옆자리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목적지에서 내리면서 그녀는 우리가 혹시나 잘못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옆에 있던 다른 러시아인 승객에게 우리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여자가 내린 정류장에서 드레드머리(긴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거나 뭉쳐 늘어뜨린 머리)를 한 젊은 남자가 탑승했다. 그는 표를 끊으러 온 차장에게 돈은 내지 않은 채 뭐라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가난한 학생이니 몇 정류장만 가게 좀 봐달라'고 한 것 같았다. 차장은 허락했고 그는 미안한지 빈자리가 많은데도 굳이 내내 서있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자신에게로 쏠린 승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갑자기 주머니에서 요요를 꺼내 그것을 진지하게 들었다 놓기 시작했다.

나는 "풉" 하며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차가웠던 러시아의 선입견이 그 남자의 어수룩한 행동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력에 나는 빠져들었다.


처음 경험한 러시아의 밤거리

어느덧 버스가 도착했고,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에선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멜로디에 취해 연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네프스키 거리' 뒷골목에 자리한 숙소를 찾아 짐을 푼 S와 나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러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거리는 불을 밝힌 바와 클럽들로 환했다. 추운 날씨라 두꺼운 코트를 입었지만 그 속에 탑과 미니스커트를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차림새는 나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았다.

꽤 오랜 시간을 시내에서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머물던 숙소는 10명이 정원인 기숙사형태의 방이었기에 같은 방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나, 나의 배려가 민망하게도 들어와서 보니 방은 텅 비어있었다. 모든 침대 위에  옷가지들이 널브러진 것을 보니 주인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 말이다.

그 시각이 새벽 4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내가 없어도 파티에 흠뻑 젖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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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센트에 몰려있는 기차 승객들 ⓒ 예주연



덧붙이는 글 이 여행은 2012년 3월부터 한 달 동안 다녀왔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국제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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