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학교 본관의 성탄절 전후 야경
정만진
박목월은 계성학교를 졸업했고, 잠시 모교에서 교사 생활도 했다. 박목월은 청소년기와 청년기 전반부를 보냈던 계성학교의 추억을 <계성학교>라는 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계성문학회는 2006년에 펴낸 <계성문학> 22호(개교 100주년 기념호)에 이 시를 '계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어 전 계성인이 읽고 감동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엔 얼룩소가 없다고?박목월 이야기라면 빠뜨리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동요 <송아지>와 관련되는 논란이다. 손대업이 작곡한 이 노래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노라' 호언할 이가 없을 만큼 애창되는 '국민 동요'이지만, 한때 뜻밖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우리나라 소는 누렁소인데 얼룩소 운운하였으니 잘못이라는 문제제기였다. 엄혹한 식민지 시대에 탈정치적인 <나그네>류의 음풍농월을 읊은 시인이다 보니 소까지도 민족적 정서를 왜곡한 채 얼룩소를 시에 등장시켰다는 힐난이었다. 그렇다면 정지용의 <향수>는 무엇인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향수>뿐만이 아니다. 거의 1500년 전인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의 '봉평비'도 얼룩소가 외국의 소가 아니라 우리나라 소라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국보 242호인 봉평비에는 "신라 6부는 얼룩소를 잡고 술을 빚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물론 한문 표기이므로 얼룩소는 '반우(斑牛)'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