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절필' 선언이 혼란스러운 까닭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42] <사령(死靈)>

등록 2013.07.15 14:25수정 2013.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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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1959)

선생님, 오늘은 1980년대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1980년대 내내 이 나라 대통령직은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1979년 12월 12일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잡았습니다. 이듬해 5월에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광주 시민 4000여명을 사상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흘린 피를 제물로 삼아 그는 이듬해 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무소불위의 제왕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언론은 온통 그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방송 뉴스는 거의 예외 없이 그에 관한 소식으로 첫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밤 9시를 알리는 시보가 끝나면서 나오는 뉴스 앵커의 첫 마디는 늘 "전두환 대통령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 뉴스를, '땡' 하고 시계 종이 울리고 나면 '전두환'의 '전'자가 곧장 흘러나온다고 해서 '땡전뉴스'라고 불렀습니다. 웃음만으로는 넘길 수 없는, 어두운 시대의 씁쓸한 초상입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의 시 <사령>을 읽으면서 문득 그 '땡전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가 나온 1959년이 어떤 시기였던가요. 독재자 이승만이 이기붕과 더불어 온 나라를 쥐락펴락 하던 때가 아니었습니까. 선생님께서도 극장에서 자주 보셨을 대한 뉴스가 거의 대부분 경무대, 곧 이승만에 관한 소식으로 시작하게 된 이유이지요. 

선생님, 당시의 대한뉴스 한 토막을 봅니다. 단기 4292년(1959년) 1월 5일자 대한뉴스 제195보 영상입니다. 그 첫머리는 이승만 내외와 그 양자인 이강석이 신년 하례객을 맞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이승만 내외가 하례객들로부터 큰절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그가 어떤 존재였으며,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대접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는 한 나라의 '아버지'인 '국부(國父)'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대통령이 '국부(國父)'로 대접 받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그 세상에 자유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가 있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자유'를,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 간간이 말하"(1연 1, 2행)는 것으로 말씀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겠지요.

세상에는 없고, 책 속에 감금된 채 박제된 죽은 자유. 그렇게 자유가 질식한 세상에서 화자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1연 4행)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조롱합니다. 이 세상은 자유가 죽어 버렸는데도, '자유'를 외치는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겠지요. 참혹하고 암담하기 때문이겠지요.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 이 욕된 교외"(4연 2, 3행)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암담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으셨겠지요. 힘 없는 보통 사람들이 '자유'를 외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하여 왜 세상이 온통 '고요함'(3연 참조)으로 가득차게 돼버렸는지를 말씀하고 싶으셨겠지요.

그런 상황은 그 전 해 성탄절 전야에 벌어진 '24 파동'(여당인 자유당이 무장 경찰들의 보호 아래 보안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 악법들을 날치기 통과시킨 사건)으로부터 촉발되었습니다. '24 파동'은 1959년 내내 정국 파행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시위가 원천 봉쇄되었기 때문이지요.

찌르릉! 신문사의 전화는 쉴 사이 없이 울려댄다. 수화기를 든 즉 "오늘 ×시에 × 장소에서 '삐라' 살포와 '데모'를 합니다." 즉시로 카메라맨과 취재기자는 지정된 장소 근처에 달려간다. … 과연! 별안간 '삐라'는 하늘 높이 뿌려지고 짤막한 '푸랑카드'를 두 손에 펼친 5, 6명의 데모 대원이 나타났다. … 경찰은 데모 그 자체보다 신문사의 거동을 살피기 시작했다. 특히 카메라맨의 거동을 철저히 감시하였다. 신문사의 주변에는 형사들이 배치되었고 허탕을 칠망정 사진기자의 뒤를 되도록 쫓아다녀야 했다. (<동아일보> 1959년 12월 15일자, '데모와 기자와 경찰'; 김진송(2006), <장미와 씨날코>, 푸른 역사. 110쪽에서 재인용함)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반공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당시에는 '재일교포 북송 반대'와 같은 관제 데모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하더군요. 5, 6명이 하는 데모마저도 두려워 이들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친 부도덕 권력의 민낯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훗날 선생님께서는 '창작 자유의 조건'이라는 글을 한 편 쓰셨지요. 저는 그 글에서 선생님께서 다음처럼 '과격하게' 말씀하신 까닭을 이제야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 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 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김수영 전집>(산문) 129쪽)

선생님, 시작(詩作) 경력이 30년이 넘는 한 중견 시인이 절필(絶筆) 선언을 한 일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시나 글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시를 통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을'들과 함께하고 싶어했던 뜻을 담아낸 사실만은 참 아름답게 여기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그의 글과 시를 통해 위로를 받고,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들이 대체로 이런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절필을 알리는 짧은 글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그 가치를 눈속임 하는 일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전부를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 그 자체다"라며 울컥한 심정을 토해 냈습니다. "30년 넘게 시를 써 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고 절필을 하게 된 배경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안도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시인의 절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불의가 횡행하는 참담한 시절에는 쓰지 않는 행위도 현실에 참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순간 '궤변'처럼 들려 왔습니다. 세상에 불의가 넘쳐난다면, 최소한 시를 통해서라도 그 불의에 맞서는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게 시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냐며 목울대를 울리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타락했다는 외침이 허황한 이상주의자들의 넋두리로나 다가오겠지요. 시인의 절필 따위가 안중에 들어올 리도 없겠고요.

그보다는 오히려 그의 절필을 조롱하는 이들의 냉소가 넘쳐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어떤 시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안 시인의 절필을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그의 심정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 시를 쓰신 1959년으로부터 반 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욕된 교외"라고 말씀하신 그 세상, 그리하여 많은 이가 선생님처럼 스스로 "나의 영은 죽어 있"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 지금 2013년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책과 냉소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 법이지요. 안 시인과 같은 식의 '침묵'을 통해서도 이 "욕된 교외"와 같은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을 엄벌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촛불과 함께 등장한 게 지난 달 21일이었습니다. 그간 그들이 켠 촛불은 약하게 이어졌지요. 그러다가, 지난 주말에 2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앞에 모였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 그토록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나의 영은 죽어 있"다고 자책할 줄 아는 이들의 양심, 그 양심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 평범한 이들의 확신이 아니었겠는지요. 선생님께서 '사령'을 통해 말씀하고 싶어하신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령(死靈)>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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