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진정 온 국민의 대통령인가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43] <조그마한 세상의 지혜>

등록 2013.07.16 13:31수정 2013.07.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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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설운 일이다

그것은 내일이 되면 포탄이 되어서
휘황하게 날아가야 할 지혜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솟는 가슴속에서 발사되는
포탄은 어두운 하늘을 날아간다
빛이 없는 둥근 하늘에서는
검은 포탄의 꾸부러진 곡성(哭聲)이
정신의 주변보다 더 간지러웁고
계곡을 스쳐서 돌아가는
악마의 안막(眼膜) 같은
강물을 향하여
그가 어떠한 은근한 인사를 하였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작열할 지점을 향하여
지극히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는
포탄이
행복의 파편과 영광(榮光)과 열도(熱度)로써
목적을 이루게 되기 전에

승패의 차이를 계산할 줄 아는
포탄의 이성이여

"너의 자결(自決)과 같은 맹렬한 자유가
여기 있다"
(1959)

선생님, 이 시의 마지막 연을 응시합니다. 이 글에 실린 모든 힘이 응축되는 "너의 자결과 같은 맹렬한 자유가 / 여기 있다"(5연)를, 저는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그 마지막 대목을 펜으로 적을 때, '자유'가 얼마나 크고 간절하게 선생님께 다가가고 있었을지, 그런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숨이 막힌 채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너의 자결", 곧 죽음만이 "맹렬한 자유"로 표현된 참 자유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상상만으로 숨이 막히는 그런 세상을 저는 세세하게 그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리지 않겠습니다. 그 상상만으로도 제가 그 세상에 포박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실상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제가 어찌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왜 그토록 자유를 열망하셨습니까. 1959년이 도대체 어떤 해였기에, 선생님께서는 화자로 하여금 "조그마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 설운 일이"(1연)라며 탄식하게 했을까요. "조그마한 세상의 지혜"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분명 일면의 진실을 갖고 있을 텐데 말이지요.

시를 좀 더 읽어보니 그 해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를 말해주는 지혜가 아닌 듯합니다. "내일이 되면 포탄이 되어서 / 휘황하게 날아가"(2연)는 '지혜'는 쉽게 변하는 세속적인 현실을 말해 줄 뿐입니다. 당연히 그것이 살아가는 곳은,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가는 곳은 "어두운 하늘"(3연 2행)입니다. 그곳은 "빛이 없"(3연 3행)고, "정신의 주변보다 더 간지러웁고 / 계곡을 스쳐서 돌아가는 / 악마의 안막 같은 강물"(3연 5~8행)이 흐르는 곳이지요.


그토록 어두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작열하여 사라지는 순간 "행복의 파편"(3연 14행)을 느끼는 것, 곧 '자결'과 같은 죽음을 통해서만 "맹렬한 자유",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역설에 기대는 것이었겠지요. 선생님께서 훗날 <푸른 하늘을>(1960년 6월 15일)에서 쓰신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2연 7, 8행(라는 시구의 뜻도 여기에 있지 않을런지요.

자유를 향한 그런 간절함과 절실함 때문이겠지요. 선생님, 저는 1950년대 내내 선생님을 괴롭힌 그 수많은 '설움'과 '비애'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짜 설움이나 비애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토록 수많은 설움과 비애의 순간을 거쳐왔기에 선생님께서는 진짜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절망의 바닥에서 방황해본 이들이야말로 희망의 진짜 파수꾼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선생님, 물론 그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겠지요. 어쩌면 죽음밖에는 그 어떤 전망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이 가득한 세상이었을 겁니다. 대통령과 국회부의장이, 반공 활동의 최일선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관변 단체 대한반공청년단의 총재와 부총재를 맡은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 세상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도 차마 두 눈 뜨고 보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더군요. 교실 환경 미화를 위해 이승만과 이기붕의 사진을 걸게 하고, 그 심사 결과로 교사 근무 성적을 평가하게 하기도 했다니, 교사인 저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학생들에게 이승만을 찬양하는 글짓기를 시킨 일들도 일상적인 풍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녕 상식과 양심을 가진 이들이 살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세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선생님,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극렬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잃었을 때 닥쳐올 처벌을 두려워한 것일까요. 그들은 그렇게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통해서라도 권력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대다수 사람들은 침묵하고,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가고 있었으니 그렇게 여길 법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후 자신들의 권력을 채 1년도 지탱하지 못했지요. 저는 4·19에서 그들이 그들 자신의 무능과 비리와 반상식 때문에 무너졌다고 믿습니다.

권력자들의 속성이 원래 그러한가 봅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세상 사람들은 무지렁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겠지요. 그들은, 눈앞에 있는 밥 한 그릇을 놓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무지렁이들이야말로 권력 유지의 제일 조건이라고 여기지 않을런지요. 저는 그들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들의 배경에 이런 보이지 않는 사실들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 정보 기관의 대통령 선거 개입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진정으로' 시끄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상황이 참으로 괴이하게 돌아갑니다. 그 선거로 자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권을 움켜쥔 여당이 뜬금없이 전직 대통령의 정상 회담 회의 내용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국기 문란 사건의 주인공인 문제의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그 모두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합니다.

온 나라 정국이 이러한데도 문제의 당사자들 중의 핵심 인물인 대통령은 침묵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끔 내던지는 말도 정국을 수습하는 것이라기보다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들 뿐입니다. 국정원의 불법을 문제 삼자 국정원에게 직접 '셀프 개혁'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자신의 부친이나 권력의 정통성을 문제 삼는 발언들에 강경하게 대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과연 이 나라 모든 국민의 대통령인지 심히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작년 대선에서 그의 '적수'였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얻은 표가 1468만표입니다. 그런데 작년 대선 정국에서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 공작을 통해 민주당 후보인 그를 '종북' 세력처럼 몰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를 찍은 1400만 명을 넘는 국민들도 '종북' 세력으로 보지 않을까요. 국정원을 향한 대통령의 침묵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이 곳의 상황을, '자결'(죽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맹렬한 자유"를 꿈꿀 수 없었던 그때 당시에 빗대는 것이 무리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가 숨을 헐떡거리고,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두 시기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가 문제의 전면에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당시 여러 시평에서 신동엽 시인을 극찬하셨지요. 그 신 시인의 작품 중 멋진 '대통령' 한 명이 나오는 <산문시 1>을 선생님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보지 못하신 시입니다. 1968년 6월, 선생님께서 불의의 교통 사고로 돌아가신 지 5개월만인 11월에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신동엽, <산문시(散文詩) 1> (≪월간문학≫, 1968년 11월 창간호)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세상의 지혜>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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