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언트 거북(Giant Tortoise), 일명 갈라파고스 거북
김동주
프리즌 아일랜드의 모래사장을 지나 입장료를 내고 산책로에 들어서면 뭔가 익숙한 냄새가 풍긴다. 흔히들 시골 냄새라고 부르는 그 냄새.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보면 집채만 한 거북이가 엉금엉금 공원 안을 기어 다니는데 코끼리나 기린을 눈앞에서 보는 것과 이 거대한 파충류를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쭈글쭈글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뱀을 닮았고 꽃게마냥 구부러진 발들을 펴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은 백악기의 공룡을 연상시킨다. 원래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섬에서 서식하던 거북이들을 이주시켜 지금까지 자연 번식을 이루었다고 하니 완전한 야생은 아닌 셈인 이 자이언트 거북의 등에는 푸른 색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들의 나이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150~200년까지 산다고 하니 이날 내가 만난 거북이들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20대 청년기에 속하는 녀석들. 지금보다 더 커져서 괴수가 된다고 하니 지구는 참 넓다.
자이언트 거북과 만난 뒤 야생 돌고래와 수영"주드! 내가 방금 엄청난 얘기를 들었어. 돌고래랑 수영을 할 수 있데! 야생 돌고래!"
처음에 육지의 야생동물을 보고 다음에는 육지와 바다의 중간인 거북을 봤으니 이번에는 본격 바다의 야생을 맛 볼 차례인가. 낙원 생활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조시가 다급히 내 방문을 두드리며 던진 그 한 마디에 나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방을 뛰쳐나갔다. 이것이 바로 잔지바르의 매력이다. 한없이 쉴 수 있는 곳에서 절대 쉬고 싶지 않은.
▲ 색이 바뀐 듯한 하늘과 바다
김동주
잔지바르의 해변은 어디를 가도 그림이다. 그래서 잠시 목적을 잊기도 한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해변의 뱃사공과 가벼운 협상을 벌였다. 작은 배는 제법 위태위태해 보이고 준비해 둔 스노클 장비는 과연 방수가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뱃사공은 연신 "하쿠나 마타타"를 외친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작은 보트를 타고 더 이상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사공은 잠시 엔진을 끄고 좌우를 살핀다. 7년 전 호주에서 하비베이라는 곳에 고래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영화처럼 눈앞에서 연어마냥 펄떡 뛰는 고래를 보지 못했지만 얼핏얼핏 보이는 그 등만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던 그 시절의 기억이 잠시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만일을 대비해 스노클을 입에 물고 있으려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멀리서 한 무리의 돌고래 떼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혹시나 배와 충돌이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고래 떼가 가까워지자 사공은 Go! Go! Go!(고고고)를 외쳤댔고 우리는 즉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 야생돌고래와 수영을
김동주
따라가기는 커녕 눈으로 쫓을 새도 없이 녀석들은 내 옆으로, 그리고 아래로 휘리릭 지나간다. 오리발을 허둥대며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알았는지, 그대로 지나칠 줄 알았던 녀석들은 한 바퀴 보트 주위를 크게 돌며 인사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사공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바다는 그들에게 도로가 아니라 집이다.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괜한 방해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잔지바르에서만큼은 이 자연의 초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아… 그 마법 같은 순간이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잔지바르의 인도양 바다일주일을 머물렀던 잔지바르는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가 아주 또렷한 곳이지만 역시 그 최고의 매력은 사방으로 펼쳐진 인도양 바다다. 직접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인도양의 바다가 어떤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왜 몰디브와 세이셸,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 이르는 인도양 바다의 리조트들이 해외 유명인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잔지바르의 바다는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 잔지바르의 북쪽, 켄드와(Kendwa) 해변
김동주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잔지바르의 북쪽 끝에 있는 켄드와 비치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도양 바다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물에 넣으면 녹아 내릴 것만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와 물감으로 그려놓은 그라데이션과 조각 구름들까지. 바다가 파란색이라는 건 거짓말이다.
애초에 우리의 언어로는 그 색깔을 표현할 수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냉큼 달려가 한참을 허우적거렸고 조시는 해변을 따라 늘어선 썬 베드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펴 들었다. 그리고 파제(Paje) 해변에 도착했을 때 그 황홀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 파제(Paje) 해변을 상징하는 끝없이 이어진 백사장과 대형 연
김동주
어찌된 일인지 그곳에는 켄드와 해변에 가득했던 구름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모양도 제 각각인 큰 연들이 구름을 대신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바라본 건물들은 전혀 요란하지 않아 이 아름다운 자연에 잘 녹아들었다.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조시와 나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파제 해변에 이틀을 머물기로 했다.
▲ 모두가 친구가 되는 해변의 비치발리볼
김동주
바다도 바다지만, 파제는 잔지바르의 다른 해변보다 여행자들이 많아 언제나 활기차다. 물살을 가르며 연을 타고 노는 카이트 라이딩(Kite Riding)과 제트스키 등의 해양 레포츠 시설이 잘 갖춰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늘 새로운 놀거리를 찾는다.
해변에서 책을 읽는 데에 싫증이 났는지 조시가 어디선가 발리볼을 빌려왔고 둘이서 어색하게 공을 주고 받고 있으니 목적 없이 배회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덕분에 비치발리볼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총 10명이 모여 게임을 했다. 규칙이나 결과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 아름다운 인도양의 진주섬에서는 오히려 그런 체계가 거추장스러우니까. 즐거웠던 한때가 지나고 우리 모두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잠시 흩어졌다.
서서히 노을이 지는 하늘에선 여전히 수많은 연들이 자유로움을 뽐냈다. 궁금해서 가격을 살짝 물어보니 겨우 세시간에 100유로(한화로 14만원 정도). 세상에. 가게 문을 나서자 조시는 연신 투덜댄다. 자기도 유럽인이지만 아프리카에 정착한 유럽인들의 상술은 지나치다며.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우리는 그저 파도 소리에 들떠 물살을 가르고 바람 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무대가 갖춰지고 아프리카 특유의 흥겨운 레게 음악이 흘러나온다. DJ가 만드는 비트가 아닌 누군가가 들고온 오래된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에 취해 저마다 맥주를 손에 들고 몸을 흔드는 파제 해변의 밤은 온 백사장이 클럽이자 파티장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해변을 찾았다. 그리고 마치 옷을 갈아입은 듯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파제 해변에 다시 넋을 잃었다.
▲ 썰물일 때의 파제 해변은 마치 천국 같다
김동주
▲ 금세 그리움을 채우는 옥빛 바다
김동주
죽어서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던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비벼댔다. 무척 신비로워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던 그 풍경. 나는 그 풍경과 그 바다의 기운을 담으려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 현실감 없는 모래 위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마구 썼다. 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리움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할 수 없이 방으로 달려가 조시를 깨웠다.
"세상에, 주드. 이게 현실이야?"영문도 모른 채 자다 끌려 나온 그는 하늘과 맞닿은 듯한 바다를 보자 연신 "오 마이 갓(Oh my god)"을 외쳐댔다. 그리고 내가 써내려간 글자 옆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그도 누군가를 앓는 중이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다시 바다 위에 선명한 그라데이션이 생겼다. 그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우리 둘 곁을 어린 꼬마가 지나가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아직 물이 덜 찬 바다에서 무언가를 주워 큰 포대를 가득 채우고야 빠져나갔다.
▲ 마냥 순수한 꼬마들
김동주
어린 소녀는 조시의 선글라스를 뺏어 들고는 신난 표정을 지었다. 큰 웃음 사이로 유난히 하얀 이가 소녀를 신비스럽게 만든다. 뭐라도 주고 싶어진 나는 가방을 뒤져 먹을 걸 찾았고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큰 포대자루를 머리에 이고 멀어져 갔다.
자기 몸보다 더 큰 포대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큰 빚을 진 느낌이 들었다. 바다야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꼬마아이부터 어른까지 욕심 없이 살아온 그들이 있기에 잔지바르는 낙도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언제고 그 빚을 갚으러 잔지바르에 다시 와야 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전세계의 많은 바다를 방문했지만 아직도 나는 하얀 백사장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던 파제 해변에서의 한때를 잊지 못한다. 단언컨대 잔지바르의 파제 해변은 세상의 그 어떤 바다보다 더 아름다웠다.
간략 여행 정보 |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살람에서 배로 2~4시간 정도 걸리는 잔지바르는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프리카 여행지 중의 하나다. 일년 내내 더운 날씨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도양 바다와 열대 밀림, 희귀 야생동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잔지바르는 최근 TV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탄 마다가스카르의 축소판과 같다.
숙소와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은 배를 타고 내리는 곳인 스톤타운이며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중동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어 라마단 기간에 방문하면 해가 떠 있는 내내 굶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스톤타운 시내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아프리카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으며 세이셸이나 몰디브와 달리 전혀 발전되지 않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수많은 여행사들은 다양한 투어를 제공하지만 가격이 제각각이니 꼭 알아보고 신청할 것. 섬 내의 교통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승합차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쌀 수도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blog.naver.com/saladinx/30145589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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