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통 뒤집어 쓴 '평화' 가면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8] 和

등록 2013.08.05 20:16수정 2013.09.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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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이 익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양으로 맛과 소리의 조화를 나타낸다. ⓒ 김대오


요철(凹凸)문자처럼 생긴 활자 인쇄 공연을 위해 896명의 군인들은 6m의 나무통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통 안에서 단 1초 만에 6m를 기어오르는 힘든 훈련을 소화한 끝에 마침내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화(和·hé)'자 공연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낼 수 있었다.

공연 마지막에 나무통 속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공개되자 디지털 그래픽인줄 알았던 문자공연이 그들의 피땀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평화'였지만 중화민족주의로 무장된 화평굴기(和平崛起·hépíngjuéqǐ,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나무통 가면을 쓴 위장된 평화의 이미지만 세계인들에게 강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공연의 영향 때문인지 '화(和)'자는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2010년 중국을 대표하는 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G2로 성장한 중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중화패권주의나 중국위협론 등으로 대두되자 중국은 유난히 평화와 화합의 이미지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벼 화(禾·hé)는 익어 고개를 숙인 곡식의 모양인데 남방에서는 벼, 북방에서는 조일 가능성이 높다. 흔히 벼, 곡식의 수확, 중요한 재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 화목할 '화(和)'는 벼가 입에 있으니 싸우지 않고 화목하다는 평화의 의미를 나타낸다.

고대에 '화(和)'는 '오미(五味)'와 '팔음(八音)'의 조화를 뜻하는 글자였다고 한다. 벼(禾)는 맛을 대표하고 입(口)은 불어서 내는 악기의 소리를 상징하여 그 맛과 소리의 조화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군자는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리면서도 자신만의 견해를 가질 줄 알아 화이부동(和而不同·hé'érbùtóng)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이(利)를 따져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tóng'érbùhé)라고 했던 공자의 말도 조화로움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배고픔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으나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배 아픔의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셈이다. 선부론(先富論)에서 공부론(共富論)으로, 발전에서 분배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도 조화로운 사회(和諧·héxié) 건설을 국가의 주요 시책으로 설정했으나, 큰 성과 없이 시진핑(習近平)에게 그 무거운 짐을 넘겨준 상태다. 화해(和諧)는 쌀(禾)을 함께 먹는(口) 공동체이고, 해(諧)는 모든(皆)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言) 민주주의의 결합이라고 하는데 과연 중국이 그 조화를 어떻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뤄갈지 주목된다.
#중국문화 #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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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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