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강 매생이, 진짜 우리 고향사람이구만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56) #15. 동대문시장 ③

등록 2013.10.03 17:55수정 2013.10.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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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소달구지가 뒤섞여 아수라장이 된 피난행렬. 1.4 후퇴로 서울시민들이 피난봇짐을 싸들고 한꺼번에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1951. 1.). ⓒ NARA, 눈빛출판사


이 작품의 화자인 박상민은 2007년 2월 하순,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했다. 어느 날 한 인민군 포로가 미군 포로신문관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진을 찾고는 그 포로가 매우 어린데 놀랐다. 박상민은 그 순간 어린 시절 자기 고향 구미에 흘러온 인민군 포로 김준기 아저씨가 떠올랐다.

남 주인공 김준기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평북 영변군 용문중학생으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했다. 여 주인공 최순희는 서울 적십자간호학교 학생으로 인민군 서울 입성 후 의용군에 입대했다. 이들은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위생병 사수 조수로 만났다.


이들은 1950년 8월 하순부터 유엔군 총공세로 날마다 다부동 유학산 일대에 쏟아 붓는 미군 B-29 폭격기의 폭탄 세례를 견디지 못해 최순희는 조수 김준기에게 전선을 탈출하자고 꼬드겼다. 두 사람은 한밤중에 전선을 탈출하여 낙동강을 건넜다. 이들은 한 민간 집에서 숨어지내면서 서로 정을 통했다. 최순희는 탈출 중 헤어질 것을 대비하여 김준기에게 전쟁이 끝난 뒤 8월 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후 탈출 도중 김준기는 유엔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갔다. 그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휴전을 앞두고 남이냐 북이냐를 결정 순간을 앞두고 어머니이냐, 순희냐의 선택에 몹시 갈등을 느꼈다. 그는 포로송환을 묻는 기표소에서 먼저 떠오른 얼굴에 따라 'S'(South, 남)와 'N(North, 북)'을 택하기로 작정했다. 준기는 기표쇼에서 순희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마침내 'S' 쓰고 반공포로로 남녘에 남았다.

1953년 6월 18일 새벽 2시, 김준기는 포로수용소에서  천만 뜻밖에도 헌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수용소 철조망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준기는 그렇게 그리던 바깥세상에 나왔건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때 준기의 실망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도 준기는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최순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포로 석방 일주일 뒤 국군에 입대했다.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약속한 날 대한문에 갔으나 끝내 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준기는 강원도 화천의 한 국군부대 의무실에서 복무한 뒤 제대하고는 곧장 본격으로 순희를 찾아 나섰다.

그는 순희와 첫 정사를 나눈 구미 형곡동을 찾아갔으니그의  행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정착하여 가축병원 수의사 조수로 근무하다가 대전의 한 대학 부속가축병원으로 옮긴 뒤 결혼하여 딸까지 뒀지만 파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대전을 떠나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왔다.



동대문시장

한일극장 앞 빈터에서 늙수그레한 사내가 지게에 비스듬히 기댄 채 말했다.

"어디서 왔소?"
"대전에서 왔습네다."
"동대문시장 지게꾼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기래서 묻질 않수. 좀 알쾌 주시라요(가르쳐주세요)."

곁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유심히 쳐다보던 한 사내가 말했다.

"덜믄(젊은) 친구, 고향이 어데디(어디지)?"
"펭안북도 넹벤이디."
"넹벤 어데?"
"농산(용산)면 구당동(구장동)이야요."
"뭐, 구당동이라구. 내레 수구동이야."
"기럼 텅턴(청천)강 건너 나루터마을이구만요."
"님자, 우리 마을을 잘 아는구만."
"구당동에서 넹벤읍에 가려면 수구동을 디나가디요. 기때마다 텅턴강 나루터에서 매생이를 타시오(탔습니다)."

"야, 텅턴강 매생이를 아는 걸 보니까 진짜 우리 고향사람이구만. 그래 언제 내려왔디?"
"내레 육니오 때 내려와시오."
"기럼, 리승만 반공 포로 석방 때 남선에 주더앉았나?"
"기런 셈이디요."
"동대문시장바닥에는 기런 사람 많아.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더 반갑다는데 … 니북 펭안도 사람이라두 텅턴강 매생이를 아는 사람은 기리 만티 않아야. 덩말 반갑수다. 날 따라오라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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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넘어 남하하고 있다(1950. 12. 11.). ⓒ NARA, 눈빛출판사


지게꾼

준기는 사내를 따라갔다. 그는 광장시장 안을 한참 헤집고 가더니 광장시장 친목회 간판이 걸린 사무실로 갔다. 그는 사무실 안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중절모를 쓴 사내에게 굽실한 뒤 준기를 소개했다.

"회당님! 내레 고향 후배로 반공 포로 출신입네다. 오늘부터 지겟일을 하고 싶다는데…."
"당신 고향 후배 틀림없소?"
"기럼요, 텅턴강 매생이와 수구동을 아는 사람은 우리 고당 넹벤 사람뿐이야요."
"그럼, 님자가 보증한다는 말이지?"
"아, 기럼요."
"알았소. 그럼 입회서를 쓰게 하고, 입회비를 경리한테 즉시 입금시키시오."
"알겠습네다. 회당님!"

중절모 회장은 동대문시장 주먹계 우두머리로 보였다. 준기는 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당신 고향 선배 덕분에 아주 쉽게 일하는구먼."
"고맙습네다. 회장님!"
"남대문지게꾼도 순서가 있듯이, 동대문지게꾼도 마찬가지야. 여기는 여기대로 법이 있으니까 선배에게 물어 잘 지키시오."
"알가습네다."

준기는 입회원서를 쓴 뒤 입회비를 냈다. 그리고는 동향 사내로부터 동대문시장 지게꾼으로서 지켜야 할 자세한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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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시장 노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과일을 팔고 있다(문산, 1952. 10. 2.).. ⓒ NARA, 눈빛출판사


삼팔따라지

"내레 오수만이야."
"김준기입네다."
"요기서 우리 삼팔따라지끼리라도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디."
"아, 기럼요."

준기는 그날로 지게를 구한 뒤 일을 시작했다. 동향 사내의 알선으로 숙소는 창신동 산동네 합숙소에 잡았다. 동대문시장 지게꾼 생활은 일한만큼 돈을 벌었다. 생각보다 수입도 쏠쏠했다. 지게꾼 생활이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했다.

준기는 동대문시장 지게꾼 생활을 하면서 다부동전투 때 전우였거나 부산과 거제포로수용소 동료들을 꽤 여러 명 만났다. 그들 가운데는 그새 동대문시장 상인으로 정착하여 이미 점포를 운영하는 이도 있었고, 그때까지 시장바닥 노천에서 장사를 하는 이도 있었다.

인민군 3사단 전 마두영 상사도 동대문시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광장시장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다. 준기는 그의 포목가게 단골 지게꾼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산포로수용소에 입소하면서 헤어졌던 윤성오 상등병은 준기가 거처하는 창신동 합숙소 부근에서 만났다. 그는 그새 목사가 되어있었다.

어느 날 창신동 들머리에서 가방을 들고 가던 한 신사가 빈 지게를 지고 가는 준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달려왔다.

"살아있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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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속에 피난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강릉, 1951. 1. 8.). ⓒ NARA, 눈빛출판사


(*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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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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