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스물일곱에 대장부 소리 들으려면

[노래의 고향 46] 경북 영양 남이포

등록 2013.08.30 16:26수정 2013.08.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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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의 전설이 깃든 남이포. 남이포의 경치는 선바위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뛰어나다. ⓒ 정만진


남이는 1441년, 개국공신인 영의정부사 재(在)의 손자, 의산군 휘(暉)와 태종의 4녀인 정선공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7세이던 1457년(세조 3) 무과에 장원급제한 이래, 세조의 총애 속에 여러 무직을 역임하며 많은 공을 세운다. 이윽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록된다. 그 이후 여진족 족장 이만주(李滿住) 부자 척살 등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가 28세에 병조판서가 된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세조비 윤씨가 수렴청정하게 되면서 신숙주·정인지·한명회·최항·김질 등 이미 대신을 지낸 훈신(勳臣)들이 원상(院相)으로 임명된다. 예종은 즉위하기 2년 전부터 세자로서 세조의 명을 받아 대리하여 정무를 보아왔는데 신숙주 등은 이때부터 정무 처결에 참여해오다 원상이 됨으로써 예종 즉위 후의 국정을 주도한다.


훈신은 공훈을 세운 신하라는 뜻이다. 세조 때의 훈신이란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는 1453년(계유정난), 사육신을 죽이는 1456년에 공을 세운 이들이다. 예종 때의 원상들은 세조 때의 이 훈신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시애의 난 등에서 활약한 남이 등 새로운 공신들은 원상의 정적으로 떠오른다. 정치적 지위가 급격히 상승한 남이 등 신진 정치 세력이 원상 세력과 은연 중 대립한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종 즉위 후 두 세력은 노골적인 권력다툼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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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구룡폭포. 중국인들은 이를 장백폭포라 부른다. 남이 장군은 백두산에 올라 남아다운 기개를 노래로 읊었지만, 이는 역적 모의를 했다는 참소로 자료로 이용된다. ⓒ 정만진

결국 원상 세력이 사건을 일으킨다. 예종 즉위 직후 혜성이 나타난 날, 병조판서에서 밀려난 채 마침 궁궐에서 숙위를 하고 있던 남이가 "혜성의 출현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고 말하자, 남이를 배신하고 훈신 세력에 붙은 유자광(柳子光)이 남이 일파가 역모를 도모한다고 고발, 예종이 원상 세력에 합세하여 마침내 1468년 남이 등을 죽인다. 이를 '남이의 옥(獄)'이라 한다.

남아의 기백을 노래한 남이의 '호기가'

흔히 고시조를 분류할 때,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등을 회고가(懷古歌)라 한다. 박팽년의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등은 절의가(節義歌)라 한다. 윤선도의 '우는 것이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들락날락 / 말가한 깊은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 등은 강호가(江湖歌)라 하고, 정철의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등은 오륜가(五倫歌)라 한다.


그런가 하면 김종서의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 어떻다 인각화상을 누가 먼저 하리요' 같이, 남아의 기운찬 포부를 노래한 시조를 호기가(豪氣歌)라 한다. 남이가 호기가 한 수를 아니 남겼을 리 없다.

장검을 빼어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성진(腥塵)이 잠겼에라
언제나 남북풍진(南北風塵)을 헤쳐 볼까 하노라

큰 칼을 뽑아들고 백두산에 오르니 멀리 중국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땅은 전쟁의 먼지가 자욱했다. 게다가 남쪽으로는 왜구가 창궐했다. 언제 이 땅에서 전란을 몰아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안겨줄 것인가! 남이는 장군으로서 옹골찬 포부를 힘차게 노래했다.

그러나 훈구 세력은 이 노래를 두고 임금과 조정을 비난했다고 몰았다. 태평성대를 암흑시대로 읊조렸고, 천하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드러냈다고 모함했다. 당연히 그의 한시(漢詩)도 중상모략의 대상이 되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훗날 누가 그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반대 세력은 이 시에서 살짝 글자 하나를 바꾸어 예종에게 참소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得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훗날 누가 그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적을 몰아내어 나라에 평화가 안착하도록 하겠다는 애국애족의 노래는 순식간에 나라를 얻어 왕이 되겠노라는 야심을 드러낸, 임금에 대한 선전포고의 글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남이 등에 의구심을 가지고 원상 세력을 더 가까이했던 예종은 이 시를 받아들고 분노했다. 남이는 역적으로 몰려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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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유원지에서 바라보는 선바위 쪽 풍경 ⓒ 정만진


경상북도 영양군에 가면 남이의 전설이 전해지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있다. 그 이름 남이포(南怡浦). 하늘을 찌르는 선바위와 절벽 양쪽을 휘감아 흐르는 동강과 반변천의 경치가 돋보이게 아름다운 곳이다. 게다가 절벽 바위 중간쯤에 한 사내의 초상이 칼로 그려진 듯 새겨져 있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이 지역 사람들은 입암면 연당리 선바위(立岩) 맞은편 20m 절벽 중간쯤에 아로새겨진 남자의 얼굴상을 남이 장군으로 믿는다. 세조 때 남이 장군이 이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룡(阿龍)·자룡(子龍) 형제를 죽이면서 칼로 아로새겼다는 것이다. 아룡과 자룡은 용의 자식들로 전해지는 인물이니, 그 이름만으로도 벌써 반란을 일으킬 만했다는 짐작이 간다. 용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임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용포, 용상, 용안 등이 그 증거로 쓰이는 어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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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받은 선바위 ⓒ 정만진

남이와 두 수괴 사이에 대장전(大將戰)이 벌어진다. 불꽃을 일으키며 칼이 부딪히던 도중, 문득 아룡과 자룡이 공중으로 몸을 솟구친다. 남이 장군도 하늘로 날아올랐고, 격전은 허공에서 치열하계 계속된다. 신검(神劍)들의 결투가 한참 진행되었지만 승부는 가려지지 않고,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모두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본다. 이윽고 칼 부딪히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아룡과 자룡의 목이 땅으로 떨어져내린다. 뒤이어 남이 장군이 검무를 추면서 땅으로 하강했다. 장군은 내려오면서 칼끝으로 20m 높이 절벽 지점에 자신의 모습을 새겼다.

그 후 장군은 이곳 지형이 다시 도적이 일어날 형세라 하여 칼로 산맥을 잘라 두 동강 내었다. 마지막 칼날이 스친 곳에는 촛대 같은 선바위가 생겨났고, 반변천과 동천이 만나 두물머리를 이루는 계포(溪浦)의 물길도 둘로 갈라졌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계포를 남이포라 바꾸어 불렀다.

남이포 절벽은 빙하기 이후 생겨난 하식애의 하나

물론 남이포 일대의 절벽과 선바위는 빙하기 때 땅이 뒤집힌 이후, 기나긴 세월 동안 물길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다. 공룡이 살던 시대의 지금 경북 일대는 온통 호수였는데, 빙하기 때 뒤집히면서 땅 속의 엄청난 바위들이 지표로 솟아올랐고, 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르고 또 흘렀다.

이윽고 흙은 씻겨내려가고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절벽만 남았다. 물이 만들어낸 바위 절벽, 즉 하식애(河蝕崖)는 그렇게 생겨났다. 빙하기 때 지형의 틀 자체가 바뀐 우리나라에는 하식애가 곳곳에 무수하다. 대구 동구의 화암(華岩), 중구의 건들바우도 하식애의 일종이다. 세월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졌다.

그러나 남이포의 전설을 비과학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자연과학의 진실만 믿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과학의 진실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뀐다. 인간이 어찌 자연의 섭리를 모두 꿰뚫을 수 있을 것인가. 신화와 전설, 민담 속에 깃든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을 구원해주는 진짜 진리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이 장군과 같은 영웅이 나타나 힘없는 민초들을 구원해주기를 기다리는 인지상정, 남이포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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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의 건들바우. 이 역시 하식애의 하나이다. ⓒ 정만진


#남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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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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