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서 내려지는 '사형선고'... 배낭족들은 '좌절'

[어느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14] 바라나시 정션역의 짜이 타임

등록 2013.10.10 12:01수정 2013.10.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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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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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강의 새벽 ⓒ Dustin Burnett


길에서 두어 달을 지내다 보면, 시간은 시감각이 아닌 공감각을 바탕으로 지각된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월요일을 기점으로 매우 피곤한 날, 피곤함에 적응되는 날, 그리고 기분이 들뜨는 금, 토, 일로 뚜렷이 구분된다.


하지만 길에서의 생활에는 월요일과 화요일의 경계가 없다. 주말과 주중의 경계도 없다. 이번 주의 월요일이 피곤했다고 해서 월요일은 일반적으로 피곤한 날이라는 요일의 규칙성도, 반복성도 없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며 며칠인지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월요일을 맞이하는 심신의 긴장감이라든지, 금요일 저녁을 맞이하는 편안함도 없다.

매일매일은 그저,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뿌연 안갯속을 걸어나가는 듯한 묘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되어 블랙코미디와 같은 우습고 슬픈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마무리된다. 시간이란 더 이상 요일과 날짜로 계산되는 숫자의 추상이 아니다. 시간은 바라나시에서 지낸 며칠째, 아그라로 떠나는 날 등 공간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무언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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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풍경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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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식당의 인도음식 ⓒ Dustin Burnett


며칠인지 잘 모르는 오늘은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이다. 일주일 동안 눈에 익은 강가와 골목길의 풍경에 아쉬움이 서린다. 오래 전 자주 듣던 듣던 음악이 그렇듯, 가끔 기억 속에 떠오를 먼 나라의 풍경이겠지.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새벽은 갠지스 강을 따라 나룻배를 타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일주일 내내 "보트 써(Boat, sir?)" 하며 우리를 따라다니던 보트맨들의 염원을 한 번은 들어줘야 할 것 같다. 더러운 물이어도 강은 강이다. 더러워도 성스럽다. 오늘도 바라나시의 사람들은 새벽의 멀건 해를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다. 가족의 시신을 태워 떠나보낸다.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그들의 윤회가 이번 생을 끝으로 마감되기를, 나도 속으로 작게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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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새벽과 보트맨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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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강 새벽의 풍경 ⓒ Dustin Burnett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뒤엉킨 배낭여행객들


무계획이 계획인 우리의 인도 여행에서 가장 큰 난점은 기차표였다. 툭하면 매진인 기차표는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앞에 대기자 몇 십 명 이상은 기다려야 티켓이 떨어졌다. 다음 행선지인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도 표가 남아있을 리 없었다. 여행 안내서에는 기차표가 모두 마감되었을 시 최후의 수단으로 시도해보라며 외국인 쿼터표(외국인들을 위해 티켓의 일부를 할당해 놓는 제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는 표가 없으면 며칠 더 지내지 하는 심정으로 바라나시 정션역의 외국인 전용 기차표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20여 명의 배낭여행객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뒤엉켜있었다. 10평 남짓 사무실의 벽면을 네모 모양으로 채워 앉은 동서양의 외국인들, 중간에 내던져 놓은 커다란 배낭들. 그 중심에 90년대식 시커먼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때가 잔뜩 낀 키보드를 쳐대는 육중한 인도 아저씨.

"넥스트!"

여행자들은 차례로 한 사람씩 아저씨에게 불려 나갔다. 모르는 수학문제를 풀러 칠판 앞으로 나간 초등학생처럼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아저씨에게 불려 간 여행자들은, 시커먼 모니터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앉아 취조를 당했다. '타타타탁!' 타자 소리를 내며 여행자들의 실낱같은 희망의 잔여 좌석을 조회하는 아저씨. 자신이 원하는 기차의 번호나 시간을 제대로 알아보고 가지 않은 여행자라면, 손가락 마디마디 커다란 보석 반지를 촘촘히 낀 아저씨의 손가락으로 무시무시한 삿대질을 받으며 퇴장해야 했다.

아무리 구식이라지만 분명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일인데, 한 명의 표를 처리하는 데만 족히 20분의 시간이 걸렸다. 1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하지만 기다린다고 해서 표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여행자가 의뢰한 기차표를 한참 조회해 보던 아저씨가 10여 분 후 우렁찬 목소리로 "노 티켓!" 하고 매몰차게 선언할 때면, 그 앞에 앉아있던 가여운 여행자는 항의라도 할까 입만 뻐끔뻐끔 거리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돌아서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동료 여행자들을 보며, 우리는 사형선고냐 자유냐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디서나 같은 질량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였다면 기차역으로 오는 길에 핸드폰 하나로 쉽게 예약했을 기차표를, 이곳에서는 기차역까지 행차하여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표를 구할 수 있을까 말까다.

기차표가 없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안고 이 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스마트폰 사용자가 50%에 달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을 내세우는 반대편 세상에서는, '게으르고, 나태하고, 비효율적'이라 비난받을 죄이다. 하지만 난 이미 그곳을 떠난 인도 시간 사용자. 나는 여행자 위에 군림한 왕인 냥 오만하고 느긋한 표정으로 먼지가 켜켜이 쌓인 키보드를 두드리는 아저씨를 재미있다는 듯, 찬찬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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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에서 바라본 바라나시 풍경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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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새벽의 보트 ⓒ Dustin Burnett


더스틴 옆에는 숙소에서 본 적이 있는 영국 여자가 앉아있었다. 신경질적인 낯빛을 두르고 있는 여자였다. 인도 여행 2개월째인 여자는, 바라나시에 너무 오래 체류한 탓에 오늘 밤 당장 다질링으로 떠나러 왔다고 했다. 왕복 40루피에 흥정을 하고 사이클 릭샤를 대기 시켰다고 하길래, 우리 차례가 왔을 때 먼저 일을 보라고 양보해 주었다.

"오늘 밤 다질링으로 가는 기차 조회 부탁해요."

바라나시를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듯, 여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는 이마에 주름을 하나 더 잡더니 거뭇한 키보드를 타타탁 두드렸다. 키보드에 쌓인 먼지가 다시 한 번 흩날렸다.

"피니쉬! (Finish, 표 없소!)"

사형선고다. 여자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잠시 감정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다음!'하고 외치려는 아저씨의 입을 막았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는 걸까.

"정션역 말고 무굴역 있죠? 여기서 12km 떨어진 역. 거기에서 오늘 6시 30분에 기차가 있을 거라고 듣고 왔어요. 그 표 조회해주세요."

아저씨가 다시 표를 조회했다.
"노 티켓!"

여자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모니터를 확인했다.

"9시와 11시 사이 표를 조회하셨잖아요. 6시 반에 표가 있을 거라고 했다고요. 그 시간 표로 조회해 주세요."

답답해진 여자가 따지듯이 말했다. 그런데도 무슨 심산인지 아저씨는 자꾸 9시와 11시 사이의 표를 조회했다.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꼴을 보고 있는 우리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주전자를 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짜이 짜이 짜~이~!"

영국 여자는 성난 얼굴로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아저씨를 들들 볶아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짜이 보이에게 짜이를 한 잔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굵다란 보석 반지가 끼워진 통통한 검지를 여자의 얼굴 앞으로 올려세우더니 말했다.

"원 미닛."

그리고 흐르는 정적. 황당해 멈춰버린 여자의 얼굴 앞에는, 잠시 기다리라고 올린 아저씨의 뚱뚱한 검지가 거두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원 미닛을 요구한 아저씨는 그 1분간, 이 사무실 안의 혼동은 모두 잊었다는 듯, 특히 다질링으로 가는 표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한 곳만을 응시하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짜이 마시기에 전념했다. 짜이를 마시는 이 1분 만큼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짜이를 위해서, 짜이를 마시는 이 순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존재한다는 듯이.

나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은, 짜이를 마시는 행위에 초 집중을 한, 짜이라는 명상에 잠겨 현 세계를 초탈한 듯한 아저씨의 모습에 빨려들었다. 아저씨의 모습은 가히 성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의 짜이 타임을 위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뭐가 어떻게 되었든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에 대한 극한 존중. 자신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되었든, 이웃의 누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노동과 자본에 대한 극한 존중만 있는 세상에서 온 나에게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시간을 멈춰놓은 듯 뜨거운 짜이를 마시던 아저씨는, 짜이 드링킹 의식을 마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더러운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있소! 표!"

짜이를 마시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일 초라도 빨리 예매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표가, 뜨거운 짜이 한잔을 1분간 여유롭게 마시고 나자 짠하고 나타났다. 여자는 다행이라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표를 집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다질링으로 가는 표를 거머쥔 여자의 표정도, 짜이를 마시는 아저씨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하긴, 다질링으로 가는 표가 뭐 그리 중요한가. 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인데. 어쩌면, 지금 이 순간 1분간의 짜이 휴식보다 중요한 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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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새벽의 보트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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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새벽의 보트 ⓒ Dustin Burnett


뜨겁게 달궈진 짜이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일

인생을 끓는 물의 온도 변화와 같은 곡선으로 이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물이 끓는 지점인 100도가 되어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는, 평안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언젠가는 내 안의 성장도 멈추고 궁극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향해, 그때까지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인생은 끓는 물의 온도 변화 그래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곡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한없이 올라갔다가도 끝도 모르고 추락하고, 어제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의 그래프를 타기도 하는, 플롯도 없고 규칙도 없는 그런 곡선이다. 그런 곡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더 총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을 만끽하는 일이다. 비록 지금은 곡선의 밑바닥에 있을지라도, 끓는점에 도달해 뜨겁게 달궈진 짜이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일이다.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다음날 카주라호로 떠나는 티켓을 구했다. 역사 밖으로 나가니 짜이 타임을 즐기고 있는 릭샤꾼이 보인다. 우리는 릭샤꾼이 짜이를 다 마실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릭샤를 불러 잡고 바라나시로 다시 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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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강 새벽의 풍경 ⓒ Dustin Burnett


#짜이 #인도 #바라나시 #인도 기차 #바라나시 정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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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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