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의 젊은 카스트로, 수영의 희망이 되다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58] <사랑>

등록 2013.10.15 18:01수정 2013.10.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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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1961)

이 시의 '너'는 누구인가. 나는 이곳의 '너'를 '혁명', 혹은 '민중'으로 읽는다. 이는 바로 전작인 <눈>에서 수영이 "저항시는 방해"라고 말한 것의 연장선이다. '너'는 수영이 '방해'이기도 한 '저항시' 대신 선택하는 것, 달리 말하면 '저항시'가 진정으로 가 닿으려는 목표물이나 기준점이다.

나는 이즈음부터 수영이 시를 '쓰지' 않고 온몸으로 '살았다'고 본다. 1968년 4월, 수영은 펜클럽 주최로 부산에서 열린 문학 세미나에 발표 주제자로 초청된다. 수영은 백철, 모윤숙, 이헌구 등과 동행했다. 평소 수영이 존경하던 소설가 안수길도 함께했다.

이 행사에서 수영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몸'으로 말고 나가는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온몸의 시학', '온몸으로서의 사상'이다.

평전을 쓴 시인 최하림은 이 '온몸'의 철학이 4·19 이후 김수영의 내면에서 커온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하림은 수영의 '온몸으로서의 사상'을 오랫동안 숙성된 '숙변'이었다고 비유한다. 자유와 혁명과 민중의 해방을 갈구하던 그의 혁명시들이 그 생생한 증거다.


<눈>과 <사랑>은 모두 혁명과 민중에 대한 수영의 새로운 인식을 잘 보여준다. <눈>은 그것을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눈>에 등장하는 '저항시'와 '시인'과 '민중'이라는 말들은 거시적이다. 반면 <사랑>은 서정적이다. '너'라는 대명사는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뜨거운 '사랑'은 눈앞의 '너'를 대상으로 하므로 인간적이고 친밀하다.

그런데 그 '너'가 '불안하다'(2연 4행). "번개처럼 / 번개처럼 / 금이 간 너의 얼굴은"(3연 1~3행) 위태롭기만 하다. 그것은 실패한 혁명, 좌절한 민중의 형상이다. 준엄한 역사가 어설픈 혁명에 내리는 형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결코 죽지 않는다.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2연 2, 3행) 나는 '너'는 끈질기다. 바람 앞에 약하게 흔들리면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그래서 혁명은 영원하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 사랑"(1연 1, 2행)처럼 불멸한다.

김수영은 4․19 직후 <민족일보>의 청탁으로 해방 공간에서 친하게 지낸 김병욱에게 공개 편지를 쓴다. 김수영의 대표 시 <거대한 뿌리>에도 나오는, "두 발을 뒤로 꼬고 / 언제나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 노동을 한 강자(强者)"(<거대한 뿌리> 1연 6~9행)인 바로 그 김병욱이다.

그는 해방 후에 월북한 시인이었다. 수영은 그에게 혁명과 통일, 시에 대한 생각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한 어조로 펼쳐 보인다. 편지 일부를 보자.

그러나 형, 내가 형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자체부터가 벌써 어쩌면 현실에 뒤떨어진 증거인지도 모르겠소. 지금 이쪽의 젊은 학생들은 바로 시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들이 실천하는 시가, 우리가 논의하는 시보다도 암만해도 먼서 앞서갈 것 같소. 그렇지만 나는 요즈음처럼 뒤따라가는 영광을 느껴본 일도 또 없을 것이오. 나는 쿠바를 부러워하지 않소. 비록 4월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직도 쿠바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쿠바에는 카스트로가 한 사람 있지만 이남에는 2천만에 가까운 더 젊은 강력한 카스트로가 있기 때문이오. (<김수영 평전> 289쪽)

4월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 수영은 강렬한 눈으로 미래를 응시한다. "2천만에 가까운 더 젊은 강력한 카스트로", 이른바 민중이라고 부르는 역사의 주인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혁명의 아포리즘을 품고 있다. 혁명은 사랑이다. 혁명은 삶을 지탱해주는 지렛대다. 혁명은 영원하다. 수영은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거대한 뿌리> 3연 10, 11행)고 말했다. 이 시에서 수영은, (시를 실천하는) "2천만에 가까운 더 젊은 강력한 카스트로"가 있는 한 혁명은 영원하고 민중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랑>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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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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