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예쁜 인도 미녀도 날 이길 순 없지

[어느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22] 자이푸르 시티 팰리스

등록 2014.01.14 21:30수정 2014.01.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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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자이푸르의 암베르성. 카츠와하(Kachwaha)왕조의 수도였던 자이푸르의 원래 자리는 도시에서 11km 떨어진 암베르 성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물 때문에 수도를 옮겨야 했던 마하라자 사와이 자이 싱 2세는 자이푸르를 수도로 정하고 계획도시를 건설한다. ⓒ Dustin Burnett


질흙 컵에 담긴 신선한 라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담홍색의 네모난 상점 거리를 지나, 자이푸르 중앙에 자리한 시티 팰리스에 간다. 시티 팰리스. 말 그대로 이 도시의 궁전. 이 궁전에는 지금도 왕족의 자손들이 산다.


300루피라는 거금을 주고 들어왔지만, 왕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비천한 더스틴과 내가 기웃거릴 수 있는 곳은 박물관과 궁의 안뜰, 그리고 왕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거주 구역의 대문 정도다.

왕족의 거주구역인 찬드라 마할(Chandra Mahal)로 연결되는 피타마 이와스촉(Pitam Niwas Chowk). 궁의 안뜰이다. 300루피라는 거금을 주고 들어왔지만, 왕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비천한 더스틴과 내가 기웃거릴 수 있는 곳은 박물관과 궁의 안뜰, 그리고 왕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거주 구역의 대문 정도이다. ⓒ Dustin Burnett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수도였던 자이푸르의 원래 자리는 이 도시에서 11km 떨어진 암베르 성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부족한 물 때문에 수도를 옮겨야 했던 마하라자 사와이 자이 싱 2세는 자이푸르를 수도로 정하고 계획도시를 건설한다.

자이 싱 2세가 격자무늬로 가지런하게 짜놓은 도시. 이후 이 도시를 온통 핑크색으로 치장한 것은 마하라자 람의 '업적'이다. 수도를 자이푸르로 옮긴 자이 싱 2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우리가 거쳐온 아그라와 파테푸르시크리, 그리고 인도의 수도 델리를 거점으로 인도 대륙을 통치하던 무굴 제국의 힘이 점차 무력해진다. 그런 무굴제국을 대신해, 인도에 진출해 있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세워 인도와 중국의 무역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막강한 부를 거둬갔다. 하지만 인도 사회와 그 민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오만하고 게을렀다. 손이 여러 개 달린 신을 믿는 인도인들을 미개인 취급하고, 인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 계급을 무시했던 동인도회사의 처사는 인도 최초의 민족 항쟁인 세포이 항쟁을 야기한다.

자이푸르 시티팰리스의 왕의 접견실인 디와네카스. 입구에 보이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은 항아리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다. 1910년 마하라자 마호 싱 2세는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의 참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야 했다. 헌데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가면 카스트의 신성함을 잃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마하라자는, 8182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이 은 항아리에 성스러운 갠지스 강의 물을 담아 배에 올랐다. ⓒ Dustin Burnett


바로 이 시점. 자이푸르에서는 자이 싱 2세가 죽고 왕 자리를 차지하려는 주변 라지 푸트(당시 지배계급) 간의 다툼이 일어난다. 마하라자 람은 세포이 항쟁을 이끌던 인도 용병 대신 영국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이 다툼에 끼어들었던 브리티시 라즈(British Raj, 영국의 지배계급)의 편애를 받는다. 영국의 힘을 등에 업은 마하라자 람은, 곧이어 자이푸르를 통치하는 왕으로 등극한다.


달콤한 권력을 손에 쥐여준 영국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자이푸르가 핑크시티가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마하라자 람이 자이푸르를 통치하던 때, 영국의 왕자 웨일즈가 자이푸르를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전해온다. 이에 마하라자 람은 도시 전체를 핑크색으로 칠해 버린다. 영국과 왕자에 대한 환대를 표하기 위함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지는 권력

자이푸르에는 지금도 왕이 있다. 아니, 왕이라는 뜻의 '마하라자'라 불리는 세력이 있다. 현재는 이름뿐인 권력이다. 자이푸르 왕의 지위는 1949년 자이푸르 왕국이 인도로 통합되었을 당시 끝이 났다. 그 후 몇 년간 마하라자의 권력과 특권, 인도 정부에서 왕에게 주는 개인 경비 등의 혜택이 유지되었지만, 그 또한 1970년 인도의 법이 개정되고 모두 사라졌다.

피타마 이와스촉의 녹색문. 봄을 나타내는 녹색으로 칠해진 이 문은 파도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네사신을 상징한다. ⓒ Dustin Burnett


시티 팰리스의 박물관에는 왕실에서 쓰던 카펫이나 원고, 폴로(Polo, 말을 타고 스틱을 이용해 득점을 올리는 구기) 스틱을 들고 말위에 앉아 있는 라자스탄 왕자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총명함으로 어느 대학을 나와 우수한 성적을 거둔 왕자는 폴로 게임에도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누구누구가 준 고귀한 칼자루가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다. 왕족의 거주구역에는, 마하라자가 지금 집에 기거하고 있다는 표시로 깃발 하나가 펄럭이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지는 권력. 그걸 놓지 않으려는 모습은 쓸쓸하다. 변화한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 코를 높이 치켜세우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지난날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고 있는 모습. 나에겐 왠지, 조금 안쓰럽게 비친다.

왕족의 거주구역인 찬드라 마할(Chandra Mahal). 피타마 이와스촉(Pitam Niwas Chowk)의 공작새 문과 연결되어 있다. 찬드라마할의 꼭대기에는 왕족의 깃발이 있는데 마하라자가 궁에 있을 때만 올라간다. 방문객들은 찬드라 마할의 1층에 있는 박물관까지만 접근 가능하다. ⓒ Dustin Burnett


피타마 이와스촉의 공작새 문. 가을과 비슈누 신을 상징한다. 왕족의 거주구역인 찬드라 마할(Chandra Mahal)과 궁의 안뜰인 피타마 이와스촉(Pitam Niwas Chowk)을 연결하는 문이다. 피타마 이와스촉은 4계절과 힌두 신을 상징하는 4개의 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북동쪽에 있는 문은 공작새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을과 비슈누 신을 상징한다. 남서쪽에 있는 연꽃무늬의 문은 여름과 시바신을, 북서쪽에 있는 파도문양의 문은 봄과 가네사신을 나타낸다. 장미문양의 문은 겨울과 데비 여신을 상징한다. ⓒ Dustin Burnett


자이푸르의 이웃 도시, 조드푸르의 마지막 마하라자인 가즈 싱 또한 1971년 인도의 법이 개정되고 마하라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대하는 가즈 싱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조드푸르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메헤랑가르 요새. 요새의 입장료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파랗게 물든 블루 시티 조드푸르를 훤히 내려다보며 오디오 가이드에 담긴 가즈 싱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하라자에서 일반 시민이 된 가즈 싱의 솔직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4살 때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가즈 싱은 그 해에 바로 마하라자의 지위에 올랐다. 청년 시절 영국 대학에서 수학을 마치고 1970년 다시 조드푸르로 돌아왔지만, 그 다음 해인 1971년 인도의 법이 개정되고 마하라자의 지위를 상실했다. 

가즈 싱은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마하라자 개인의 역사, 왕의 자리를 상실 한 뒤의 변화, 자신이 지배하던 왕국이 사라진 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높이 쌓은 탑 안에 숨어 영광스러운 지난날의 빈 껍질을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가즈 싱은 현재도, 인도의 일반 시민으로서 70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조드푸르의 뿌리를 보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조드푸르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메헤랑가르 요새. 요새의 입장료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파랗게 물든 블루 시티 조드푸르를 훤히 내려다보며 오디오 가이드에 담긴 가즈 싱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하라자에서 일반 시민이 된 가즈 싱의 솔직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Dustin Burnett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 변화를 인정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아이였을 때의 변화란 언제나 플러스를 의미했다. 더 많은 지식, 더 높은 학력, 더 많은 친구.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변화는 상실도 가져왔다. 내 세계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어 주지만은 않았다.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든 어느 날 밤, 서러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싫었다. 사라진 것들이 들어 있던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휑하니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불가항력이다.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을 막기에는, 아무리 마하라자라도,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인간은 너무 작고 나약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마하라자의 왕자였기에, 변화와 상실은 더 크고 아픈 것이었으리라. 자이푸르 시티 팰리스 박물관 액자에 담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역대 마하라자의 얼굴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정해진 플롯(plot) 없이 뒤척이는 인생의 굴곡 앞에 어쩔 수 없이 떠내려가는, 하지만 그 흐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약하고 가여운 인간의 모습이다.

자이푸르 이전의 수도였던 암베르. 요새가 내려다보는 호수 너머로 촘촘히 들어선 핑크빛 자이푸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 Dustin Burnett


마하라자를 대신할 암베르 요새의 새로운 권력, 원숭이 무리

자이푸르 이전의 수도였던 암베르로 향했다. 먼지 낀 도시를 떠나 버스를 타고 몇 분을 달리니, 산 중턱 위에 웅장하게 자리한 요새가 나타났다. 요새가 내려다보는 호수 너머로 촘촘히 들어선 핑크빛 자이푸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멋진 곳이다. 마하라자의 자부심을 알 만도 하겠다.

멋진 장소를 좋아하는 건 사람만이 아닌가 보다. 암베르 요새에는 유독 원숭이가 많다. 아기 원숭이의 이를 잡아주는 엄마 원숭이. 손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까서 먹는 원숭이. 이제는 여기에 없는 마하라자를 대신해 왕 노릇이라도 하려는지, 뻔뻔하게 성벽에 자리 잡은 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양쪽 성벽에 평화롭게 자리를 잡고 있던 회색 원숭이와 밤색 원숭이 무리. 하필이면 우리가 암베르 성을 빠져나가려는 때에 싸움이 붙었다.

"캬오! 캬오!"

괴이하고 사나운 소리를 내며 양 팀이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 더스틴이 대수롭지 않게 원숭이들 사이를 지나갔다.

암베르 요새 입구. 멋진 장소를 좋아하는 건 사람만이 아닌가 보다. 암베르 요새에는 유독 원숭이가 많다. 아기 원숭이의 이를 잡아주는 엄마 원숭이. 손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까서 먹는 원숭이. 이제는 여기에 없는 마하라자를 대신해 왕 노릇이라도 하려는지, 뻔뻔하게 성벽에 자리 잡은 2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 Dustin Burnett


"그냥 가면 어떻게! 난 어째!"

더스틴의 뒤에 붙어 원숭이 무리 사이를 건너갈 타이밍을 놓친 내가 뒤에 남아 작게 소리쳤다.

"뭘 어떻게. 그냥 걸어와 괜찮아."

원숭이 무리는 흡사 광견병에 걸린 듯 서로를 향해 으르렁댔다.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 물리면 약도 없다는데. 원숭이한테 물리는 재수 없는 일 같은 건 꼭 나에게 일어나는데. 더스틴 저 자식은 왜 혼자 저렇게 가 버린 건데.

나는 앞으로 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양 팀으로 갈린 원숭이 무리 한 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암베르 성 입구에는 회색 원숭이와 밤색 원숭이 사이의 축구 경기라도 벌어진 듯,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심판인 내가 곧 경기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할 듯, 팽팽한 긴장이 서렸다. 몇 분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이푸르의 암베르 요새 ⓒ Dustin Burnett


"그렇게 겁내고 서 있으면 정말 공격해. 그냥 당당하게 걸어와!"

야 이 자식아! 내가 갈 수 있으면 진작 갔지 왜 이러고 있겠냐! 원숭이들을 자극할까 두려운 나는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야속함에 벌개진 눈으로 더스틴을 째려봤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하염없이 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용기를 쥐어짜 한 발짝을 내밀었다. 경기의 시작이라도 알린 듯, 내가 한 발자국의 움직임으로 팽팽하게 맞선 양 팀 간의 정적을 깬 그 순간. 반대편 원숭이를 노려보던 자그마한 원숭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내게로 달려들더니 내 다리를 붙잡았다.

"으악!!!!"

나는 암베르 성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렀다. 겁이 많은 나에게 잘못 걸린, 내 다리를 움켜쥔 원숭이는 지진이라도 난 듯 깜짝 놀라 경기를 하며 나가 떨어졌다. 주위에 서 있던 관광객들도 모두 놀라 뒤를 돌아봤다. 더스틴은 뭐가 재밌다고 반대편에서 배가 꺾이게 웃고 있다. 나쁜 놈. 그래, 내 몸은 내가 지킨다. 우렁찬 비명을 질러서라도 지킨다. 소란 덕에 무사히 암베르 성을 빠져나왔다.

암베르 요새 ⓒ Dustin Burnett


다시 자이푸르로 돌아오는 버스 안. 버스 차장은 우리에게 10루피씩을 거둬갔다.

"디스, 노 10루피. 2루피."

새까만 차도르로 온몸을 감싼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차비는 10루피가 아니라 2루피란다. 나는 차장을 바라봤다.

"2루피라는데요?"

차장은 앞에 앉은 나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에이~."

'에이'라…. 너한텐 2루피나 10루피나 차이가 없으면서 뭘 그러냐는 뜻. 관광객한테 좀 더 받을 수 있지 뭘 또 그러냐는 뜻. 다 알면서 왜 그러냐는 뜻. 그래. 에이다 에이. 맘대로 해라.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예쁜 눈만 내놓은 여자. 자기 옆에 앉은 딸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딸을 내게로 보냈다. 8살쯤 되어 보이는, 엄마를 닮은 영롱한 눈을 가진 아이가 망설이며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멘토스를 꺼냈다. '나도 엄마한테 어렵게 얻어낸 거라 아깝지만 줄게' 하는 표정으로, 나와 더스틴에게 멘토스를 하나씩 쥐여주었다.

"아, 고마워요."

새콤달콤한 멘토스 한 알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상큼한 인조 과즙이 새어 나왔다. 몇 주 전에만 해도 이 사탕에 독이라도 들었는지, 이 어린아이와 엄마가 관광객을 후려먹으려는 2인조 악당은 아닌지 의심했겠지. 입을 오물오물 하는 사이 단맛이 입안 전체에 퍼졌다.

더스틴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탕을 꺼냈다. 내가 아이에게 사탕을 건넸다. 아이는 호기심 많은 커다란 눈으로 내 손에 올려진 사탕을 보더니, 고민이 된다는 듯 입에 검지를 올렸다. 아이가 엄마를 힐끔 쳐다봤다.

"노 노."

엄마는 아이에게 손사래를 치더니 힌디어로 아이를 타일렀다. 받기 위해 준 게 아니잖아. 좋은 마음으로 주기만 한 거니까 주기만 하는 거야. 알았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받지 않겠다고 했다. 맞아. 꼭 되돌려 받기 위해서만 줄 필요는 없어. 가끔은 주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

암베르 요새. 위쪽으로 자이가라 포트(Jaigarh Fort)가 보인다. ⓒ Dustin Burnett


버스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어린 인도 남자 무리의 뜨거운 시선이 내 옆통수를 마구 때렸다. 그 시선이 너무 뜨거워 쳐다보면 남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낄낄. 내가 남자들의 이런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옆자리 아주머니의 눈이 그 아무리 예뻐도, 차도르를 쓰지 않은 나의 맨 머리를 이길 순 없다! 시선을 즐겨라! 남편은 없는 것처럼!

"신기하게 생겨서 그런 거야. 너무 좋아하진 마."

히죽히죽 대는 내 얼굴을 보고는 더스틴이 한 마디 거든다. 흥. 그래도 오늘의 영광인 걸. 원숭이에게 물리지 않고 지켜낸, 지금의 작은 기쁨인 걸. 마하라자의 권력처럼, 언젠가 너무 쉽게 사라질 것들이다. 사라질 오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을 만끽하는 것 밖에는 없다. 나는 수줍게 얼굴이 벌개진 어린 남자들의 옆통수에 대고, 입이 찢어져라 큰 미소를 보냈다. 남자들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자이가라 포트(Jaigarh Fort). 자이 싱 2세가 지은 성으로, 암베르 요새 바로 위쪽에 있다. 곧 결혼식이 있는지 화려한 테이블이 놓여있다. ⓒ Dustin Burnett


#자이푸르 #자이푸르 시티팰리스 #암베르 성 #핑크 시티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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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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