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와 육식... 이 점 하나는 다르지 않습니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 ③] 잔인한 게 어디 육식뿐인가?

등록 2014.02.17 15:18수정 2014.02.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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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방금 전 고기를 먹었다. 식탁에서 도살장이 아무리 용의주도하고 우아하게 숨겨져 있다 해도 당신도 공모자라는 사실은 감출 수 없다." -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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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포장된 고기로부터 비명을 지르고 피 흘리는 동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조세형


설탕에 중독성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기분이 우울할 때 찾아오는 단 것에 대한 욕망은 적은 양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더 많은 양을 요구한다. 설탕 중독이 마약보다 무섭다는 말도 있다. 마약은 유해물질로 분류되어 있는데 반해 설탕은 초콜릿, 빵, 과자 등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많은 양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독을 야기하는 음식은 설탕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닐 버나드 박사는 설탕은 물론 초콜릿, 치즈 그리고 고기까지 중독을 유발한다고 지목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책임 있는 의료를 위한 의사회(PCRM)' 웹사이트와 저서 <음식 유혹 뿌리치기(Breaking the Food Seduction)>(St. Martin's Griffin)에서 이러한 음식에 중독되는 원인과 해결책을 다루었다. 

SBS 스페셜 <고기 1부 - 얼마까지 먹을 수 있나>(267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언급되었다. 고기로 인한 심리·건강상태 변화를 알아보는 아래 문항 중 6개 이상에 해당할 경우 고기에 상당히 의존적인 상태, 8개 이상에 해당하면 중독 성향을 보이는 상태라고 한다. 

고기 선호도 평가
1. 고기를 과식하는 습관 때문에 나에게 건강 문제가 있다고 본다.
2. 고기를 덜 먹거나 먹지 않을 때, 불안, 초조, 또는 그 외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3.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고기를 먹게 되면 기분이 안정이 된다.
4.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먹게 된다.
5. 배가 불러도 입에서 당겨 고기를 제한하지 못한다.
6. 고기(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를 일주일에 3회 이상 찾는다.
7. 고기는 한번에 2~3인분(약 500g)을 먹는다.
8. 생선보다는 고기를 즐긴다.
9. 고기를 배부르도록 먹고 난 후, 피곤함을 느낀 적이 있다.
10. 고기만 많이 먹고, 다른 음식은 잘 안 먹는 것이 걱정된다.
출처: 서울대학교 조비룡 교수 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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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고기 1부 - 얼마까지 먹을 수 있나> 화면 캡처 ⓒ SBS


내 경험을 돌이켜 봐도 배추, 당근 등의 채소에 집착한 적은 없다. 그러나 고기는 일부러 찾아서라도 먹었다. 과거의 나는 위 문항 중 적어도 5개 이상에 해당했다.

반려 고양이를 통해 동물 처우에 관심이 생기고 동물보호단체 웹사이트를 드나들면서 육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러나 고기를 좋아해서 늘 먹었던 내게 채식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나는 채식주의를 '하루 세 번 동물의 고통을 막는 실천'이라기보다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으로 생각했다.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속세를 떠난 수도승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결과 채식에 대한 생각도 다분히 관념적으로 흘렀다. 동물이 불쌍해서 먹지 않는다면, 만에 하나라도 존재할 수 있는 식물의 고통도 염두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 먹는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동물의 실제적인 고통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뭉뚱그려졌다.  

모피반대 캠페인에 대해 가장 흔히 등장하는 반론 중 "그렇게 따지면 당신이 먹는 동물은 불쌍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모피는 고작(?) 멋을 위해 동물에게 잔인한 학대를 가한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모피를 소비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한국의 기후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옷깃에 달린 모피 장식물까지 피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좀 더 신경을 써서 구매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모피코트를 구매하지 않는 건 더더욱 어렵지 않다.


삶에 불필요한 모피를 "당신이 먹는 고기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옹호하는 이유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비난을 돌려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에게 동물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동물을 소비재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과오를 방어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모피를 입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 육식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불우이웃을 돕는 사람에게 아프리카 기아 문제에는 관심이 없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비난을 하지 않는다. 불우이웃이 생겨난 이유가 딱히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사람을 돕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재로 전락한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문제는 다르다. 개인은 소비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기존의 소비습관을 바꿔야 한다. 따라서 동물을 위한 운동은 더 많은 반발과 합리화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모피나 고기나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반박이 언뜻 보면 일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피의 잔혹성을 알고 난 후 내게 모피를 소비하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피의 촉감이 반려 고양이를 쓰다듬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농장동물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은 동물을 먹는 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기를 먹을 때 나는 동물을 먹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피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을 비난했지만, 나 역시 내가 먹는 동물의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그만큼 농장동물은 나와 정서적으로 멀리 있었다. 그들의 고통은 내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게 몇 달 동안이나마 고기를 먹지 않는 계기가 찾아왔다.

*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고기중독 #동물 #고통 #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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