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때 시(時)는 의미부인 해 일(日)과 소리부 절 사(寺)가 합쳐진 글자다. 해가 나아가는 운행을 시간의 개념으로 설정한 글자라고 할 수 있다.
漢典
담양 소쇄원에는 비 내린 후 맑은 하늘에 뜬 달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는 선비의 기상을 나타내는 '제월각(霽月閣)'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보름달이 뜨면 이곳에서 술자리가 벌어지는데 달이 맞은편 동쪽 언덕에 떠오르면 연회가 시작된다. 시계가 없으니 끝나는 시간은 그 달이 머리 위를 지나 남서쪽 대나무 숲에 올 때까지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달의 공간적 이동 거리로 시간의 흐름을 표시했던 것이다. 막대기 그림자의 공간적 이동으로 시간을 측량하는 해시계의 원리 또한 시간을 공간으로 인식해서 나온 산물일 것이다.
황진이의 시조에도 보면, 동짓날 밤 허리를 베어 이불 속에 두었다가 임 오시는 날에 펴겠다고 한다. 시간을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공간적 길이로 여기고 그것을 베어내어 임을 만나는 곳에 꿰어 매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재단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시간을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유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때 시(時, shí)는 의미부인 해 일(日)과 소리부 절 사(寺)가 합쳐진 글자다. 사(寺)는 출발지점을 나타내는 一과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발의 상형인 지(止), 팔꿈치 주(寸)가 결합된 것으로, 발로 걸어서 어떤 곳을 향해 '나가다, 모시다'의 뜻으로 쓰이다가 손님을 모시는 '관청, 절'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였다. 시(時)는 곧 해가 나아가는 운행을 시간의 개념으로 설정한 글자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12지로 시간을 나타냈는데, 하루가 24시간이니까 2시간 단위로 시간을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세밀한 시간 표현을 위해 시간을 1시간 단위로 나타내게 되었는데 이를 중국어로 작은 시간, 즉 '소시(小時)'라고 표현한다.
중국영화 <초한지-천하대전>에서 항우가 유방을 공격하기 전에 회왕(懷王)을 먼저 죽이자고 하자 범증은 명분이 없다며 반대한다. 그러자 항우는 홍문연(鴻門宴)에서 유방을 살해하려고 할 때는 회왕을 죽이라고 하더니 왜 지금은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범증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此一時, 彼一時)"는 말로 상황이 달라졌음을 일깨워주지만, 장량의 반간계(反間計)에 빠진 항우는 범증이 과거에는 자신을 돕겠다고 하고 지금은 돕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범증을 내친다. 그때부터 항우의 운명도 급격한 종국을 향해 치닫고 만다.
때가 되어야 꽃이 피는 법(時到花就開)인데 항우는 그 때를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항우 스스로 <해하가(垓下歌)>에서 "때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는구나(時不利兮騶不逝)"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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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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