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외치고 있는 구호 "해고자를 공장으로". 2012년 2월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직후에 열린 긴급기자회견 모습.
유성호
8년째 버텨온 '일상의 힘'조차 빼앗아간 법원의 판결중앙노동위원회, 지방법원, 고등법원 등 콜텍의 정리해고에 대한 법의 판결은 여러 차례 뒤집어졌다. 2012년 대법원은 '심리가 미진하다'며, 2심의 '긴박한 경영상 위기라고 볼 수 없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측인 콜텍 해고자들의 패소를 알렸다.
"콜텍 해고 무효 확인에 대해 원고 측 패소, 재판비용 원고 측 부담…"이라는 감정 없는 판사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재판장을 울렸다. 1월 10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판시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8년차의 농성, 파기환송 후 긴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의 애달픔에 대해, 법은 상관치 않았다. 그 냉정함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 대해 임재춘 조합원은 이 글에서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죽고 싶다고.
2013년 10월, 법원이 지정한 회계감사의 결과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음"으로 나온 상태였고,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확인하는 증거가 확인된 마당이니 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리라. 그래서 서울고법의 원고 패소 판결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그날은 누구 하나 제대로 울 수 없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현실감이 사라지고 몽롱해진 기운이랄까. 감히 7년을 싸워온 해고자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차마 먼저 울 수도 없었다.
무너지는 것 또한 마땅한 것이었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그 시간들이 지나 다음 날인 11일 토요일, 콜텍 농성자 중 몇몇은 가족이 있는 대전 집으로 향했다. 임재춘 조합원 역시 대전의 두 딸이 있는 집으로 갔다. 이틀 지나 월요일이면 콜텍의 농성자들은 인천의 천막 농성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임재춘 조합원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임재춘 조합원은 돌아왔다. 인천의 천막 농성장으로부터 꽤나 먼 마음의 길을 돌아…. 평소 대전과 인천을 오갈 때 메고 다니던 가방도 들지 않은 채로 왔다. 주말은 가족과 보내고, 월요일이면 속옷가지랑 농성일기 공책을 가방에 담아 매고, 어영차~ 농성장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힘조차, 법이 빼앗아갔다.
그는 그 다음주 휴일을 보낸 후에야 다시 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그 날 이후 농성장은 예전 같지 않다. 농성자들이 즐겨 하던 스마트폰 자동차 경주 게임의 요란한 효과음도 멈춰 있었다. 농성장은 많이 고요하다. 그러다 툭, 엉뚱한 공간에서 농성자 한 명의 눈물을 본다.
콜텍 해고자들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다시 긴 시간을 두고 해고 무효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평일 아침 콜텍 본사 앞 1인시위, 목요일 콜텍 본사 앞 집회, 여기저기 집회를 다니고, 콜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한다. 임재춘 조합원은 여전히 농성자들이 함께 먹을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봄은 오는데 봄나물의 향기가 예년 같지 않다고, "세상이 참 흉흉하네~"라며 자신이 끓인 냉이찌개를 내놓으며 한숨을 쉰다. 농성장의 일상은 계속 돌아가는데 농성자들의 마음은 부석부석 메마른 황토처럼 갈라져 있다.
같이 산다는 게 왜 이리 버거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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