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죽였다 살렸다...산다는 게 버겁다

[임재춘의 농성일기⑦ 2014년 2월 18일] 그 날 이후

등록 2014.02.28 10:06수정 2014.02.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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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달 1월 10일 오전(10시) 콜텍 고법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허탈했다. 그렇게 중요한 사건 공판을 판사가 늦게 와서, 고개도 못 들고 아무 감정 없이 판결을 읽어버리다니…. 콜텍 해고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사건이기에 재판장을 가득 채워준 연대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실망을 시키는 게 너무 허무했다.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한 달 동안 1인시위를 하면서 또 다른 1인시위자들의 외치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사법부가 똑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정의가 사라져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안타까웠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판사가 지정한 회계법인에게 콜텍의 회계감정을 맡겨 놓았는데, (회계감정의) 결과는 정리해고할 만큼의 경영 상태 악화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판사는 반대로 해석하였을까.

'왜 노동자, 서민만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 후 솔직한 내 마음은 도망가고 싶었다. 죽고 싶은 마음도 가졌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외롭게, 힘들게 하나. 기타 만드는 일을 한 것을 엄청 후회 하고 있다.

(대전)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잤다. 전화기도 꺼놓고 누구에게도 연락도 안 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3일간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다 슈퍼에서 소주 한 병을 사다 마시고 거울을 보니 이렇게 생활을 하면 죽을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하늘의 명인데, 갑자기 오기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후회도 되고, 나에게 실망스러웠다. 갑자기 연대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우리도 우리지만, 콜텍 해고 노동자를 지지하고 연대해주는 분들은 더욱 실망했을 텐데….


고법 판결은 내게 너무 실망, 절망, 멘붕 상태를 안겨주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언제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하나? 벌써 8년째 투쟁하고 있는데,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고법을 이기고도 파기환송당하여 2년 6개월이 걸려 받은 판결이 어찌 그런가. 항소한다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도 안 든다. 대법에 상고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뿐이다. 이 시대는 노동조합만 없애려고 하는 정치를 하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

왜 노동조합만 없애려 하는가. 왜 악덕 기업주는 그냥 내버려둘까. 노동부가 악덕 기업주 관리를 잘하면 노동조합과 싸울 일도 없지 않을까? 특히 박영호 악덕 기업주는 대한민국을 떠나야 한다. 돈 때문이겠지. 한국의 구조 자체가 문제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든다.


2014년 2월 18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8년째 외치고 있는 구호 "해고자를 공장으로". 2012년 2월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직후에 열린 긴급기자회견 모습.
8년째 외치고 있는 구호 "해고자를 공장으로". 2012년 2월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직후에 열린 긴급기자회견 모습.유성호

8년째 버텨온 '일상의 힘'조차 빼앗아간 법원의 판결

중앙노동위원회, 지방법원, 고등법원 등 콜텍의 정리해고에 대한 법의 판결은 여러 차례 뒤집어졌다.  2012년 대법원은 '심리가 미진하다'며, 2심의 '긴박한 경영상 위기라고 볼 수 없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고법으로 파기환송 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측인 콜텍 해고자들의 패소를 알렸다.

"콜텍 해고 무효 확인에 대해 원고 측 패소, 재판비용 원고 측 부담…"이라는 감정 없는 판사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재판장을 울렸다. 1월 10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판시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8년차의 농성, 파기환송 후 긴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의 애달픔에 대해, 법은 상관치 않았다. 그 냉정함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 대해 임재춘 조합원은 이 글에서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죽고 싶다고.

2013년 10월, 법원이 지정한 회계감사의 결과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음"으로 나온 상태였고,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확인하는 증거가 확인된 마당이니 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리라. 그래서 서울고법의 원고 패소 판결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그날은 누구 하나 제대로 울 수 없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현실감이 사라지고 몽롱해진 기운이랄까. 감히 7년을 싸워온 해고자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차마 먼저 울 수도 없었다.

무너지는 것 또한 마땅한 것이었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그 시간들이 지나 다음 날인 11일 토요일, 콜텍 농성자 중 몇몇은 가족이 있는 대전 집으로 향했다. 임재춘 조합원 역시 대전의 두 딸이 있는 집으로 갔다. 이틀 지나 월요일이면 콜텍의 농성자들은 인천의 천막 농성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임재춘 조합원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수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임재춘 조합원은 돌아왔다. 인천의 천막 농성장으로부터 꽤나 먼 마음의 길을 돌아…. 평소 대전과 인천을 오갈 때 메고 다니던 가방도 들지 않은 채로 왔다. 주말은 가족과 보내고, 월요일이면 속옷가지랑 농성일기 공책을 가방에 담아 매고, 어영차~ 농성장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힘조차, 법이 빼앗아갔다. 

그는 그 다음주 휴일을 보낸 후에야 다시 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그 날 이후 농성장은 예전 같지 않다. 농성자들이 즐겨 하던 스마트폰 자동차 경주 게임의 요란한 효과음도 멈춰 있었다. 농성장은 많이 고요하다. 그러다 툭, 엉뚱한 공간에서 농성자 한 명의 눈물을 본다.

콜텍 해고자들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다시 긴 시간을 두고 해고 무효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평일 아침 콜텍 본사 앞 1인시위, 목요일 콜텍 본사 앞 집회, 여기저기 집회를 다니고, 콜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한다. 임재춘 조합원은 여전히 농성자들이 함께 먹을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다. 봄은 오는데 봄나물의 향기가 예년 같지 않다고, "세상이 참 흉흉하네~"라며 자신이 끓인 냉이찌개를 내놓으며 한숨을 쉰다. 농성장의 일상은 계속 돌아가는데 농성자들의 마음은 부석부석 메마른 황토처럼 갈라져 있다.

같이 산다는 게 왜 이리 버거운 걸까.
#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콜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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