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명회>의 한 장면.
KBS
하급 궁지기에서 계유정난(수양대군의 쿠데타) 주역으로 뛰어오른 한명회. 그는 단계적이면서도 신속하게 관직 품계를 높여 갔다. 쿠데타가 벌어진 1453년에 한명회는 39세 나이로 정8품을 받았다가 4품으로 승진했고, 이듬해에 승정원(비서실)에 들어가면서 정3품으로 올라갔다.
1457년(43세)에는 장관급인 이조판서(정2품)가 됐고, 1462년(48세)에는 부총리급인 우의정(정1품)이 됐고, 1466년(54세)에는 총리급인 영의정(정1품)이 됐다.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 때인 1453년(39세)부터 관직에서 물러날 때인 1474년(62세)까지 그는 25년간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다. 1487년에 그는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눈은 다시 떠지게 된다. 뒷부분에서 그 이야기가 나온다.
대단한 것은 수양대군(세조)에서 예종으로, 예종에서 성종으로, 왕이 바뀔 때마다 한명회의 권세가 한층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그의 부귀영화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그는 예종(수양대군의 차남)과 성종(수양대군의 장남의 차남)의 장인이었다. 연속으로 두 왕의 장인이 된 사례는 조선왕조에서 한명회뿐이다. 그만큼 그에 대한 정치적 견제가 취약했던 것이다.
한명회의 정치 인생에 고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자존심 상하는 악몽은 자기보다 26세 어린 남이 장군한테 정치적 주도권을 내준 일이다. 한명회의 주군인 수양대군은 왕이 된 뒤의 어느 순간부터 한명회를 멀리했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막판에 이준(조카)과 남이 같은 20대 청년들에게 영의정·병조판서 직책을 주고 이들을 신주류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한명회는 권력 중심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죽은 뒤 남이를 역모죄로 몰아 처형하는 등 신주류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한명회는 권력을 회복하고 제2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뒤이은 성종 때는 제3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성종 집권기 때 폐비 윤씨(연산군의 생모)를 죽이는 데 찬동했다는 이유로 한명회는 사망 30년 뒤인 1504년에 부관참시를 당했다. 위에서, 한명회가 죽은 뒤에 그의 눈이 다시 떠졌다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뒤의 일이다. 계유정난 이후의 한명회는 대체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는 굵고 길게 살았다. 조선시대 참모들 중에서 이렇게 안정적인 정치인생을 산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15세기 중반은 '명회의 전성시대'였다.
한명회가 권력을 오래 가질 수 있었던 이유한명회가 권력 정상에서 오래 버틴 비결 중 하나는 탁월하고 감각적인 두뇌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선시대 통역관인 조신이 지은 <소문쇄록>이란 실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양대군이 왕이 된 뒤 수양대군·한명회·신숙주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한명회와 신숙주는 친구 사이였다. 이 자리에는 수양대군의 세자도 동석했다. 술에 취한 수양대군이 신숙주의 팔목을 잡으면서 "경도 내 팔을 잡으시오"라고 말하자, 만취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소매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고 팔목을 꽉 잡았다. 수양대군이 "아! 아파!" 하고 외칠 정도였다. 지켜보던 세자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수양대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자리를 이어갔지만, 한명회의 머릿속에는 핏빛이 떠올랐다. 팔목을 잡힌 직후에 수양대군이 세자에게 "나는 이렇게 해도 되지만, 너는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기분 좋게 끝났지만,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신숙주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밤중에 귀가한 그는 집사한테 "신숙주의 집에 가서 오늘은 불을 끄고 일찍 잠자라고 알려줘"라고 지시했다.
공부벌레인 신숙주는 평소 술을 마신 뒤에도 잠깐 수면을 취했다가 다시 일어나 등불을 켜고 독서하는 습관이 있었다. 집사가 달려가 보니, 신숙주는 이미 술을 깨고 독서하는 중이었다. 신숙주는 한명회의 연락을 받고 즉시 불을 껐다. 그 직후였다. 궁에서 나온 내시 하나가 신숙주의 집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신숙주가 팔목을 힘껏 잡자 수양대군은 신숙주의 충심을 의심했다. 그래서 내시를 보내 신숙주를 염탐했던 것이다. 신숙주가 평소처럼 독서하고 있다면 자기 팔목을 고의로 꽉 잡은 것이고, 평소와 달리 잠들어 있다면 취중에 벌어진 실수가 되는 것이다. 한명회는 이런 기운을 감지하고 신숙주에게 미리 귀띔을 했던 것이다.
"화려한 걸 좋아했고, 재물을 탐하고 여자를 좋아했다"한명회의 두뇌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1456년에 사육신의 수양대군 암살 계획을 거사 직전에 차단한 일이다. 사육신 세력은 창덕궁 광연전(경훈각 1층)에서 열린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에서 수양대군을 죽이기로 계획했다. 왕의 호위 무사인 별운검에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런 계획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