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버지는 오늘도 웁니다

[임재춘의 농성일기⑩] 집안과 형제들

등록 2014.04.18 21:04수정 2014.04.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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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어릴 때부터 조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삼강오륜을 배우고 효도의 예와 산소관리 하는 것을 배웠다. 우리 집안은 대가족이어서 가족의 의리가 다른 집안보다는 중요했고 행복하게 살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안과 형제들을 먼저 생각하였다.


가족이 무척 많아 애경사도 무척 많다. 그런데 내가 회사 생활 할 때와 정리해고 당하고 농성 생활을 하면서 집안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회사 생활 할 때는 애경사에 무조건 참석했지만 정리해고 당하고는 참석을 못한다. 정리해고(된 뒤) 1~3년은 형제들의 위로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투쟁이 길어지면서 형제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생활을 한다. 형제들은 언제 끝나서 옛날같이 행복하게 살 거냐며 (농성을) 그만하라고 한다. 현재 형제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를 찾지도 못하고 산다.

어른들은 명절이나 생일날에 못 찾아뵈면 무척 서운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집안의 어른들을 모시기가 정리해고 생활하면서도 무척 힘이 든다. 정리해고자인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을 뵐 때 부담을 느낀다. 선물도 못하고, 용돈도 드릴 수 없어 면목이 없다.

산소를 내가 관리하다 보니 한식과 명절 때 벌초하러 가려면 대단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식과 명절에 산소는 가족 모임의 장소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해야 하고 음식을 준비하여 가야 하지만 정리해고 당하고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요즘에는 명절과 한식 등 집안 애경사가 부담이 커서 차라리 (명절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형제들과의 정도 없어지고 사이가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정리해고 당하기 전에 형제들은 나를 무척 잘 따르고 말도 잘 듣고 하였으나 지금은 형제들도 나를 싫어한다. 농성하는 내가 형제들 눈에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돈도 없는 사람이 까불고 있다고 말한다. 농성을 하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성실하게 일만 하던 사람이 정리 해고 후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고, 불법적인 행동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말주변도 없고, 나와는 다른 처지이니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형제들을 만나고 오면 서럽고 슬프다. 빨리 정리해고 싸움 끝내고 형제들과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른들을 효를 다해 모시고, 형제들과도 우애 있게 지내고 싶다.


2014년 4월 11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송전탑에 올라간 아들의 얼굴을... "네가 거기 왜 있냐"


8년이다. 송전탑에 오르고, 단식을 하고, 폐허가 된 공장을 문화예술의 집으로 만들고, 법이 외면해도 꿋꿋하게 일어서고, 밴드를 하고, 연극을 하며 바쁘게 성실하게 살아냈다. 내 눈에 그들은 큰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앞에 서면 한없이 작은 사람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만 해도 임재춘 조합원은… 울었다. 큰딸이 회사에 월차를 냈단다. 그리고 하루 일당 10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간다고 했단다. 농성을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큰딸이 가장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임재춘 조합원은 부끄럽고 미안하고 서러워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을 흘렸다.

농성자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묻는 것은 나로서는 금지된 행동 같았다. 아픈 곳을 건드릴까봐, 기운이나 뺄까봐 조심스러워 애써 묻지 않는다. 그래도 가족과 하는 전화통화를 간간이 옆에서 들으며, 가끔은 술기운에 새어나오는 푸념 속에서 그 관계들이 그려지곤 한다.

며칠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 이인근 지회장(금속노조 콜텍지회)의 얼굴은 어둡고, 그 목소리는 건조했다. 어머니 당신의 입장에선 서운하기 그지없겠구나 싶었다.

"그런 얘긴 뭐 하러 허요. 아이고, 노인네도 참…, 글쎄 제 걱정 마시라니깐."

 2008년 10월 15일 금속노조 콜텍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노동자 2명이 서울 망원동 한강시민공원 송전탑에 올라가 위장폐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08년 10월 15일 금속노조 콜텍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노동자 2명이 서울 망원동 한강시민공원 송전탑에 올라가 위장폐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10월 15일부터 11월 13일까지 이인근 지회장은 한강 양화대교 남단 망원지구 송전탑에 올라가 단식농성을 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낮은 뜨겁고 밤은 차던 그때 그곳으로, 노부모와 형의 가족, 그리고 아이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높은 곳에선 형체만이 어렴풋한, 저만치 거리. 가족들 누구에게도 송전탑 일만큼은 알리지 않았는데, 뉴스에서 지회장의 얼굴을 알아보고 가족들이 달려온 것이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며 수화기로 애절한 대화들이 오고갔다. 지회장의 어머니는 네가 거기 왜 있냐며, 어서 내려오라고 애원하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긴 호소는 소득이 없었고, 그런 어머니를 말없이 보던 아버지는 "지가 선택한 일인데 어쩌겄어. 그만 갑시다…"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송전탑 위 아들을 향해 손짓을 하는 어머니를 설득해 대전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저는 관둘 수가 없어요. 억울해서 그럴 수는 없어요."

이런 말들을 이곳 농성장의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가족들 앞에서 반복했을까. 때론 냉정하게, 때론 울먹이며, 때론 침묵으로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죽일 놈, 나는 불효막심한 놈,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그렇게 자신들을 원망했을 테지. 친인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혼자 섬처럼 앉아 있다 공연히 바쁜 척하며 자리를 먼저 뜨고, 조카에게 용돈조차 건넬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 한심해 애써 형제들 앞에선 센 척을 할 뿐.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는 시간들이 지속되고 있겠지.
#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농성일기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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