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 특별임무를 띤 수경대를 이십년 만에 조직한다니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42회] 비룡표국(1)

등록 2014.05.01 15:25수정 2014.05.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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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장. 비룡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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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비룡표국은 본시 비룡문에서 출발했다. 애초에는 무예를 연마하고 무도를 전수하는 무공문파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날 표국 사업을 병행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오년 전의 일이다. 하나의 문파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적 토대가 튼튼해야 하는 바 이를 위해 표국을 운영한다고 했다. 비룡문주 담곤은 표국 개원식 날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나온다는 추공 맹선생(孟子)의 말을 내외 귀빈 앞에서 인용했다.   


태허진인의 사대제자 중 넷째 준목규운 담곤은 성정이 활달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어서 강호의 인물로 회자되기엔 그가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평에 부합이라도 하듯 진인의 사후 그가 세운 비룡문은 날개 돋친 듯 성장을 해나갔다. 한때 강호의 유협들을 몸 달게 했던 비천문의 무공을 계승한다는 명분과 더불어 장문인 담곤의 호방한 기질과 두루두루 막힘이 없는 처세는 신생문파인 비룡문을 강호의 명문으로 떠오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정주라는 곳이 사통발달 요지에다가 황하의 물길을 안고 있는 곳이다 보니, 천자가 거하는 도성과도 통하고 무학의 터전이라는 섬서와도 이웃하여 자연히 무인들의 드나듦이 왕성한 곳이었다.

일취월장하던 비룡문이 무명을 더욱 드높일 시점에 돌연 표국을 개설한다고 하니, 강호인들은 그 의중을 몰라 한동안 망연했다. 대저 무도의 길과 상인의 길은 추구하는 바가 다른 바, 무도는 수련을 통해 선인(仙人)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비해 상업은 그저 재물을 탐하는 소인배의 행위쯤으로 여기는 것이 강호인들이다. 이는 무당파, 화산파, 전진파 등과 같은 도가(道家) 계열의 문파가 강호의 주류로 형성된 영향이라 하겠다.

아무튼 무도와 상업을 상극으로 여기는 무도인들의 상식에 반하여 이 둘을 함께 끌고 가겠다는 담곤의 결정은 콩이니 팥이니 말을 많은 강호인들의 입술에 참기름을 바른 격이 되었다. 강호인들이 누구던가, 심중을 헤아리기는 심계(心計)에 이골이 난 황궁의 내관들 못지않고, 의중을 파악하기는 기방의 요녀들보다 더 예민한 촉각을 가지지 않았던가. 강호인들은 이내 담곤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담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도 머잖아 실감하게 되었다.

무공문파와 표국은 바늘과 실처럼 잘 어울렸다. 표국은 무력이 바탕 되어야 하니 무공을 갖춘 표사가 필요했고, 문파는 나름대로 그들 제자의 진로를 열어 줄 수 있어 좋았다. 즉 비룡문은 우수한 표사를 양성하는 학교가 되었고, 비룡표국으로선 우수한 표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게 되었다. 한마디로 일거양득이자 양수겸장이었다. 

이런 비룡문의 발 빠른 처세에 소위 명문정파라는 전통의 파당들은 속으로 배가 아프되, 겉으론 무도의 길을 가는 자가 어찌 상도에 눈을 돌린단 말인가 하며 고답적인 말만 되뇌었다. 그러다 종내에는 에험, 하고 헛기침만 하며 모르쇠 하였다.


수헌당(修軒堂)은 비룡표국 열두 채의 전각 중에서 크기는 제융전(提隆殿)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건물의 기풍은 가장 운치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중정(中庭)의 가운데 자리 잡고 좌로 수밀재(修樒齊) 우로 임질재(任叱齊)를 거느리고 있으니 누가 보아도 가장 중요한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수헌당은 비룡문의 장문인이자 비룡표국의 표주 담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다. 표국의 손님을 맞이하고 사무를 보는 일은 입구에 있는 제융전(提隆殿)에서 처리하고 수헌당은 장문인의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형 상단의 호위나 표물의 은밀한 수송을 원하는 큰손들의 상담 역시 수헌당에서 이루어졌다.  

담곤은 비룡표국의 국주임에도 불구하고 표국 내에서도 장문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이는 비록 그가 상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수헌당에는 강호의 호걸 몇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침향목으로 만든 여섯 자 원탁에 네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상석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입술이 도톰하며 그 아래로 수염이 탐스럽게 모아진 노인이 앉아 있다. 노인은 은회색 비단에 국화가 수놓아진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푸른 괘건를 두르고 있는데 얼굴에선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다. 노인의 왼쪽으로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앉아 있다. 빛바랜 도복차림의 그는 비쩍 마른얼굴에 광대뼈가 불거져 있다. 그 옆에는 사십대인지 오십대인지 구별하기 힘든 중장년이 앉아 있는데 긴 수염을 가지런히 늘어뜨려 마치 관공(關公)이 현신한 것 같아 보였다. 마지막 역시 늙수그레한 중년이 앉아 있는데 그의 얼굴은 포대화상처럼 투실하고 피부는 기름기가 번지르르했다. 

"현 무림맹주께서 수경대(蒐炅隊) 소집을 각 문파에 명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지요?"
괘건을 쓴 노인이 광대뼈가 불거진 중년을 향해 말했다.

"하하, 비룡표국의 눈과 귀는 강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더니, 소문만이 아닌 모양이옵니다. 이 모든 게 담 장문인의 탁월한 능력 때문 아니겠습니까?" 
중년인이 사뭇 호탕하게 웃으며 답한다.

"허허, 늙어서까지 욕심 사납게 강호에 발을 뻗는다고 손가락질 당할까 두렵습니다. 표국을 운영하다 보면 강호의 뜬소문은 공기처럼 마시며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괘건을 쓴 비룡문주 담곤은 앉은 자리에서 포권을 하며 칭찬의 예에 답했다.  

"어허, 강호의 일이 궁금하거든 주루에 가지 말고 표사에게 접근하라는 말이 헛말은 아니었구료."
긴 수염의 장년이 맞장구를 쳤다.

담곤은 원하는 답을 못 들었다는 듯 광대뼈 중년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래, 수경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된 답니까?"

"저도 정확하게 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와서 무얼 숨기겠습니까만 맹주께서 저희 화산파에 수경대 참여를 요청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수준에서 누굴 파견하느냐 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건 저희 장문인께서 결정하실 사항이니까요."

"만약 화산파에서 수경대에 누군가를 파견한다면 적인수사(寂寅秀士) 시윤(施胤) 도장을 보내지 않고 누굴 보낸단 말이오."
긴 수염의 장년이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맞소, 화산파 제일검 시대협이 수경대에 참여하는 건 무림맹으로서도 원하는 바이고 화산으로서도 문파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잖습니까."
포대화상이 능글능글하게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저 시윤은 그저 연륜 하나만으로 일검이라는 허명을 얻었을 뿐, 화산에서 저의 무공을 능가하는 제자는 추수가 끝난 벌판의 이삭처럼 널렸습니다. 그리고 장문인의 하명이 없으니 아직 무어라 말씀 드릴 수가 없군요."  
시윤이 계면쩍은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좌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 소문에 불과하단 말이오?"
담곤이 말투에 힘이 들어가며 지그시 물었다.

"저 역시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수경대의 소집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두 달 전 장강편운 습평이 웬 괴한에게 피습 당하고 그의 퉁소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이후 맹주께서 각 문파의 장문인에게 회합을 요청했습니다. 아마 수경대 결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긴 수염의 장년이 말했다.

"맹주가 속한 무당의 원 장로의 말씀이니만큼 틀림없겠지요."
담곤이 말했다.

"원 장로는 현재 맹주의 곁에서 보필하는 입장이기도 하니 틀림없는 정보겠구료."
적인수사 시윤도 맞장구를 쳤다.

"나, 회룡진관(回龍辰貫) 원개(遠凱)가 강호에 약간의 자취를 남겼다하나, 실은 저희 무당의 명성을 등에 업고 유세한 것에 불과합니다. 수경대가 소집된다면 이번 기회에 그 은혜를 갚을까 하는 생각이옵니다."
원개가 시원스레 인정했다.

"규모는 어느 정도 될는지요?"
담곤이 괘건의 끈을 느슨하게 풀며 물었다.

"아마 각 문파의 최상승 고수급으로 한명씩을 추천 받아 전체 인원이 열을 넘지 않는 소수 정예로 조직하지 싶습니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수경대라면 무림 전체의 안위에 관계된 중요하고 급박한 일을 해결하기 조직하는 것인즉 규모가 클수록 위력 또한 배가되는 거 아닌가요?"
포대화상이 반문을 했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해결해야 할 일의 성격에 따라, 공개적이고 규모가 클 때도 있고 혹은 은밀하면서도 소수로 구성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일은 아마 후자이지 싶습니다."

"그래도 근 이십년 만에 수경대를 조직하는데 강호의 이목을 피해 은밀히 추진한다는 건 마치 공개구혼을 표명한 처자가 몰래 식을 올리는 것처럼 개운치가 않군요."
포대화상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이번 일이 무림 내부의 일에 국한되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군요." 담곤이 원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주님들께 더 이상 깊이 발설할 수 없음을 용서해주시구료. 추후에 확정이 되면 자세한 사항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원개가 양손을 들어 포권을 한 다음 좌중을 둘러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덧붙이는 글 월 목 연재합니다.
#무위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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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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