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수조 밑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무협소설 무위도(無爲刀)][50회] 현문지공(1)

등록 2014.06.02 11:35수정 2014.06.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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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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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도 無爲刀 ⓒ 황인규


방(坊)은 당나라 시절 구획한 동네 단위이다. 방과 방 사이 마차가 대여섯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대로라 하고 한두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소로라 한다. 그 외 마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방 내의 골목길을 호동(胡同)이라 한다. 정주 창라방(昌羅坊)은 성시(城市)의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동네다.


창라(昌羅)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호동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외지 사람들이 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그 와중에서도 백림호동은 비교적 한적한 호동이라 할 수 있다. 편백나무가 모여 있어 길을 내기가 쉽지 않아 집들이 비교적 드문드문 있기 때문이다. 편백나무 사이로 커다란 나무통을 얹은 마차가 덜그럭거리며 나타났다. 마차는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멈췄다. 마부석에서 뛰어내린 마부가 사방을 휘 둘러보더니 수조와 마부석 사이에 있는 칸막이를 향해 말했다

"사매, 이제 내려도 되겠어."
칸막이 속에서 여인이 기지개를 펴며 나왔다.

두 남녀는 수레바닥을 빙 둘러 채워놓은 짚들을 치웠다. 그리고 수조통의 밑바닥을 살피더니 이윽고 두 뼘 높이의 널을 빼냈다. 널이 있던 안쪽에 공간이 보이더니 안에서 누운 채로 등을 밀며 한 사람이 나왔다.

"휴, 이제 살 것 같구나."
왜소한 노인이다.

"죄송합니다. 사숙어른, 저희가 들어갔어야 하는데……. 불편하셨죠?"


관조운이 담곤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아냐, 아냐, 많은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찌 마부로 변장하겠나."


담곤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관조운이 몸을 숙이고는 널 사이로 팔을 넣어 옷가지를 꺼냈다. 마부와 하녀로 변장하기 전 원래 입었던 옷이다. 담곤도 화려한 비단옷 대신 수수한 장포로 갈아입고 왔다. 그는 장포의 허리춤에 비단주머니로 싼 두 자 길이의 가늘고 길쭉한 물건을 허리춤에 차고 왔다. 검이라기엔 짧고 단도(短刀)라기엔 너무 컸다. 무엇보다 형체가 둥글어 무기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수조 밑에 왜 이런 공간이 있나요?"
"잉어는 보기보다 예민한 어류라서 물이 바뀌거나 충격이 있으면 금방 죽는다네. 그래서 수조를 이중으로 만들지. 충격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물이 새나가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서야."

담곤이 설명하자 관조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길로 조금만 가면 대로에 연한 상점들이 보일 거야. 거기서 야영에 필요한 걸 사오면 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혁련지가 대답하고는 재빠르게 숲을 빠져 나갔다.

"저어, 잉어는 어떡하나요? 황궁의 공납물인데……."
관조운이 담곤을 향해 말했다.

"황궁 공납물을 아무런 호위도 없이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운송할 것 같나? 염려 말게, 정주에서 부호로 소문난 나가장(羅家莊)의 장주 회갑 잔치에 쓰일 생선인데, 나중에 내가 몇 배로 변상해주지."

담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러더니 수조의 뒤쪽 문의 빗장을 벗겨내자 이중벽이 나타났다. 담곤이 아래쪽에 나있는 쪽문의 여닫이를 젖히자 물이 쏴아 하고 빠져나왔다. 몇 마리의 잉어가 따라 나와 땅바닥에 떨어져 펄떡거렸다. 

"물을 빼내야 마차가 가벼워지지. 다행이 말을 표국의 호위마로 바꿔 왔으니 달리는 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일각이 지나자 혁련지가 제법 큰 보따리를 안고 왔다.
"야영에 필요한 물건들에요."

혁련지가 비어버린 수조통에 짐을 던졌다. 담곤이 혁련지가 앉아던 상자에 들어가 앉자 혁련지는 관조운과 같이 마부석에 앉았다.

혁련지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몰게요."

관조운이 채찍을 건네자, 혁련지가 고삐를 살짝 당겼다가 "이랴!" 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말들은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났다는 듯 히이잉 하고 앞발을 쳐들었다가 땅을 딛자마자 박차고 나갔다. 마차는 우르릉 소리를 내며 관도를 향해 편백나무 숲을 가로질렀다.   

조복은 수조마차를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황궁이 있는 경부(京府)까지 보내는 마차치고 너무 어설펐다. 개봉부 황하 유역에서 조운선을 만난다지만 황궁의 공납물을 그렇게 허술하게 보낼 순 없다. 관부의 허가증과 적어도 정주 관아의 이속(吏屬)배들이 따라가야 정상이다. 거기다 명색이 표국이 호위한다면서 표사 하나 따라붙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하다.

거기다 마부와 계집종의 차림은 또 어떠한가. 그들의 위장은 너무 어설펐다. 마부는 큰 키에 안 맞는 옷을 입어 그런지 소매가 짧아 손목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손이 너무 희었다. 도저히 마부의 손이 아니었다. 계집종도 입고 있는 옷이 깡총했다. 얼핏 드러난 목덜미가 그렇게 흴 수가 없다. 결코 허드렛일이나 하는 종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른척하고 보냈다. 달리 생각이 있어서였다. 

점심 무렵 임질재 뒤편에서 까마귀가 울어 댔다. 까악, 까악. 조복은 까마귀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 둘, 셋, 넷까지 울고 조용해졌다. 잠시 멈췄다가 까마귀가 다시 울었다. 조복은 이번에는 숫자를 속으로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멈췄다. 조복은 관끈을 풀고 관모를 벗었다. 상투를 다시 매만졌다가 관모를 다시 썼다. 까마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잠시 후 조복은 임질재 뒤로 이어진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키 큰 적송(赤松)이 장정 팔 벌린 간격만큼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잡목들이 이어져 있다.  조복이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자 잡목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됐나?"

예의 무뚝뚝한 말투다. 

"관가 놈이 빠져 나갔소."
"어디로 갔나?"
"나도 모르오. 지금까지 파악한 건 관가 놈이 귀신 같이 잠입했다가 한 시진 전에 빠져 나갔다는 사실이오."
"어떤 모습으로 빠져나갔지?"
"수조마차로 위장했소. 개봉부로 간다고 했지만 틀림없이 거짓일 것이오. 하지만 일단 개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니 동문으로 통과할 것이오. 그 뒤로는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소."

"빨리 가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뻐꾹, 뻐꾹, 숲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잠깐, 이걸 가지고 가면 유용할 것이오."

조복이 갑자기 생각난 듯 급하게 말하며 품에서 목패를 하나 꺼냈다.

"금의위 비첩이오. 성문 관졸들에게 수조마차의 행방을 물어보면 유용할 것이오."
"낮에는 순검을 하지 않는데 관졸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마차에 금의위 깃발을 꽂게 했으니 관가 놈 일행이 성문을 통과할 때까진 뽑지 않을 것이오. 금의위 기가 꽂혀 있으면 관졸들이 순검은 안 할지라도 무심히 보아 넘기진 않을 거요. 그러니 어느 성문으로 나갔는지 관졸들에게 물어보기 쉬운 거 아니겠소."

"좋아, 비첩을 넘기시오."

조복이 잡목더미 안쪽을 향해 던지자 재빨리 손이 나타나 비첩을 낚아챘다.

"관조운이 표국을 빠져나간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까진 나밖에 모르고 있소. 그러나 머잖아 은화사도 알게 될 것이오. 아마 오늘 내로."
"담곤도 같이 나갔나?"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겠소만 일단 담곤이 개입 된 건 확실하다고 보오. 적어도 그의 묵인이 있어야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십중팔구 담곤도 같이 있겠지. 관조운이 담소나 나누려고 이곳까지 오진 않았을 거니까."

"은화사가 일을 주도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소. 그 점 이해해 주기 바라오."
"알고 있소. 언제든 나와 연락만 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시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리고 사례는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한꺼번에 하겠소."

"……알겠소."

조복은 잠시 서 있다가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아니 그전에 그 자가 자리를 떴음을 알았다. 풍천의에게는 무어라 보고할 것인가, 조복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걷느라 어느새 임질재 앞까지 온 것도 몰랐다. 표국의 하역장은 여전히 붐볐다.
덧붙이는 글 월 목 연재합니다
#무위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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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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