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육적인 자사고, 이제는 정상으로 되돌려야

[자사고 진단 칼럼 1] 자사고 운영 5년 만에 교육생태계 망가져

등록 2014.08.06 11:05수정 2014.08.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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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형 사립고등학교(아래 자사고)는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학교였다. '규제'에도 착한 규제가 있고 악한 규제가 있는 것처럼, '다양화'에도 좋은 다양화가 있고 나쁜 다양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정책'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수평적 다양화가 아닌 수직적 다양화 다시 말해 고교 서열화를 심화, 촉진했다. 그것도 정치논리에 밀려 무분별하게 확대했다. 지방에서 자사고에 대한 호응이 적자 서울지역에 집중적으로 27개나 지정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미달 사태와 학사 파행을 예고했다.

교육은 엄연히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북유럽의 교육선진국들처럼 공공성을 강화해도 부족한 마당에 경제논리에 밀려 교육을 사립에 떠넘겼다. 그것은 마치 공공재 성격인 지하철을 민자 사업하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우선 당장은 돈이 적게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해 '9호선 지하철 조사특위' 통해 뼈아프게 체득했다.

교육 당국이 가급적 간섭하지 않을 테니, 사학이 알아서 등록금 3배를 받아 학교를 한 번 운영해 보라는 것은 교육을 장삿속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경찰대나 사관학교도 현대나 삼성에 맡길 일이다. 경찰대나 사관학교를 민간회사에 맡겨, 학비를 3배까지 비싸게 받으면서 교육하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 국민들 중 몇 명이나 동의할까?

자사고, 명문대 진학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

자사고 정책은 우리 교육계를 더욱 일그러진 괴물로 만들었다. '재정적 독립', '건학이념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을 표방하는 등 설립취지나 목적은 장밋빛 청사진처럼 그럴듯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사고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 5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자사고는 철저하게 국·영·수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과정으로 획일화되었고, 서민층이 다니기 어려운 귀족학교, 특권학교로 변질되었다.


처음 자사고에 입학하는 학생이나, 보내는 학부모들의 기대는 자못 컸다. 등록금 3배를 냈으니 당연히 교육의 질이 3배 정도 좋아질 것이라 여겼는데, 학교 시설도 거의 예전 그대로, 선생님도 거의 그대로, 수업의 질도 거의 그대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좋아진 게 없어 보였다. 겨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이 비교적 중상위권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것이었다.

자사고에 대한 기대치와 만족도가 떨어지자 미달하는 학교들이 속출했다. 결국, 2012학년도와 2013학년도 신입생부터 용문고와 동양고는 일반고로 전환하였다. 그러자 자사고들은 살아남기 위해 명문대 진학에만 관심을 쏟았다. 명문대에 몇 명 보냈느냐에 따라 학교의 명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소위 일류대에 많이 보낸 학교는 신입생들이 몰렸고 진학률이 저조한 학교는 여전히 미달이었다.

자사고 안에서도 선호학교와 비선호학교가 갈렸다. 그러자 더욱 학사파행, 회계부정, 전편입학 부정, 교육과정 부당운영까지 감행하면서 오로지 진학률에만 매달리는 사이, 자사고는 입시학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사이 일반고는 이류, 삼류 학교 취급당하며 점점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사고 운영 5년 만에 교육생태계는 끔찍하게 망가졌다. 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일반고로 고등학교 유형별 서열화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다양한 교육은 고사하고, 일찌감치 배움을 체념하고 무기력해져 가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사고 등 특목고가 성적 우수학생을 독점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가며 입시교육에 열을 올릴 때, 성적이 부진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집 가까운 자사고에서 밀려나 먼 곳으로 통학하거나, 학급당 학생 수 40명에 육박하는 찜통교실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이러한 교육차별은 고스란히 교육양극화, 사회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의 일반고 진학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입학생들 중 강남3구 출신 집중 현상은 이제 더는 뉴스거리도 못 된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일반고가 위기라고 말한다. 일반고가 이렇게 슬럼화된 원인이 일반고에 경쟁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열화 되고, 그 서열에 따라 분리되는 비교적인 교육을 받아 왔다. 따라서 학생들 스스로를 실패자, 열패자로 인식하고 있다. 일반고는 이런 실패감, 열패감이 상대적으로 큰 학생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성적에서든 생활면에서든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교육이 없는 교과부 시절"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단팥 없는 찐빵처럼, 이명박 정부의 5년과 문용린 교육감의 1년 반은 교육적인 논리와 교육적인 안목 대신, 정치논리, 경제논리, 진영논리, 경쟁논리만 무성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면, 학교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황폐화 시킨 것이다.

다양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서열화하고 분리하는 수직적인 다양화는 분명 교육적이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아이 따로 떼어 과학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 특목고 만들고, 장애 아이 따로 떼서 특수학교 만드는 것은 교육논리가 아니다.

분리교육이 아닌 통합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리교육이 아닌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 단일 수종이 아닌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다채롭게 어울려 호흡하는 숲이 건강한 숲인 것처럼, 한 교실 안에는 경제적으로 잘사는 아이도 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도 있고, 성적 우수자도 있고 다소 성적이 부진한 아이도 있고, 장애아이도 있고 비장애아이도 있는 통합교육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교육이다.

어학, 과학, 문예체 영재를 위해 특별한 학교를 따로 두기보다 일반학교 안에서 교과 활동, 또는 비교과 활동을 통해 어학, 과학 영재를 키워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특수목적학교를 자꾸 만들어 기형화하기보다는 공교육 안에서 어학, 과학, 문예체 등 소질과 재능을 키워줄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보편적인 공교육 안에서 맑고 밝고 씩씩하게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국제중, 자사고 폐지 법안을 낸 것은 수직적 다양화를 수평적 다양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하나 부모 잘 만난 덕에, 사립초-국제중-특목고(자사고)-명문대 나와 우리 사회지도층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학창시절 내내 반쪽 세상만 경험한 외눈박이 같은 아이들, 걱정되고 문제 있어 보이지 않는가?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한국교육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거쳤다고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인데, 불행하게도 과거시험과 사농공상을 따지던 전근대적인 의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출세)하기 위해서는 학력, 더 엄격히 말하면 좋은 학벌과 인맥이 필요하다. 그렇다보니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고속도로, 지름길이 생겼다. '사립초→특목고(자사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출세 특급열차'가 그것이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자기 자녀를 이 열차에 태우기 위해 모두들 안간힘을 쓴다. 아니 난리법석을 떨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특급열차의 우등석에 올라타기만 하면 성공(출세)이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학맥과 인맥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모외고 출신들이 벌써 법조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공공연한 비밀부터 시작해서 특정 인맥과 학맥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 신조선시대(양반과 서민)를 넘어 신골품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학력, 학벌 차별 금지법 제정이 절실하다) 이런 폐단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도 특수목적학교들은 일반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참고로 지난해 필자에게 사립초, 국제중, 자사고, 특목고 편입학 부정 관련 민원과 제보가 쏟아졌다. 주로 부유층이 특권을 이용한 반칙으로 편입학을 한다는 민원과 제보였다. (사립초에 편입학하려면 학교버스 한 대를 사줘야 한다는 제보부터 시작하여 유명인사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 민원까지) 사립초와 국제중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들 부유층 자녀들은 학교측에서 특별관리를 해준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민원과 제보였다.

'사립초 - 국제중 - 특목고(자사고)'들이 대부분 사립이다. 사립재단의 장삿속 운영과, 일부 부유층의 일그러진 교육열 그리고 무능한 교육당국, 이 3박자가 빚어낸 우리 시대의 참으로 부끄러운 현주소이다.
덧붙이는 글 김형태 시민기자는 전 서울시 교육의원입니다. 국민TV 등의 매체에도 유사한 글을 보냅니다.
#자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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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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