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김승준명절 때 우연히 텔레비전으로 본 마술에 빠져서 마술사가 된 청년
김승준
"해 봐라. 대신, 포기하지 않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포기 안 할게요, 아버지. 믿고 지켜봐 주세요."
그 때 승준은 중학교 2학년. 군산시민회관에서 열린 학교 축제에 아버지 김동현씨를 초대했다. 승준은 아버지 정장을 빌려 입고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많이 떨었다. 이상하게도 무대에 올라서니까 안정이 되고 웃을 수가 있었다. 실수는 몇 번 했지만 학생들의 호응은 굉장했다. 박수가 쏟아지는 순간순간, 승준은 희열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이 "쟤! 쟤, 마술!" "마술사 지나간다"라며 알아봤다. 마술을 독학한 지 4년 만에 얻은 유명세였다. 승준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명절을 기다렸다. 해외 마술사가 나오는 특집 프로그램을. 식구들과 친척들은 거실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데 승준 혼자만 안방에서 텔레비전으로 마술을 봤다.
"마술이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제발, 빨리 명절 와라!' 엄청 기다렸어요." 승준은 마술을 인터넷으로 배웠다. 손가락을 끊었다가 붙인다거나 동전이 사라지는 것부터 했다.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놈의 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마술만 하는 외동아들에게 "그만하고 공부해라"하지 않았다. '저러다가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승준은 해가 갈수록 더 파고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술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야자'를 한다. 마술 연습할 시간은 주말뿐이겠지. 그래서 승준은 군산 기계공고(마이스터고) 자동차학과에 들어갔다. 기계 쪽을 전공으로 선택하면, 마술 도구들을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계산까지 했다. 학교에는 마술 하는 선배가 있어서 같이 동아리를 만들어 연구하고 공유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술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은 두 곳, 목포와 부산에 있다. 2009년, 승준은 동부산대학교 매직엔터테인먼트과(마술학과)에 갔다. 대학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전국에서 온 친구들 중에는 마술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자도 있었다. 군산에서 오래도록 독학만 하고, 조그맣게 동아리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간 승준은 풀이 좀 죽었다.
"저는 마술을 비디오테이프, 책, 인터넷을 통해서만 했잖아요. 인터넷에는 생활 마술이 많았어요. 동전, 고무줄, 풍선, 빨대로 하는 마술이요. 도구 마술을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가서야 보고 배우게 된 거예요. 마술의 역사나 이론도요. 마술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기부터 배웠어요. 마술사들은 그걸로 자기 콘셉트에 맞게 특기를 만들어요. 학교 시험도 공연하듯이 교수님 앞에서 마술을 해요. 스카프에서 꽃이 나오는 거 말고, 심도 있는 마술이요."
승준은 군대(GOP, 38선 철책근무)를 갔다 오고, 학교도 졸업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로 갔다. 승준은 군산으로 와서 마술 전문회사 문 팩토리(대표 마술사 문태현, 29) 소속 마술사가 되었다. 여덟 명의 마술사가 오로지 마술 관련 일만 한다. 마술 공연, 마술 교육을 하며 미래를 일군다. 마술사가 봐도 혹할 만한 도구들을 만든다.
작년에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옆 장미 공연장에서 '모던 매직쇼' 콘서트를 했다. 옛날 스타일의 마술을 근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술이었다. 한 달 반 동안, 주말마다 하루 두 차례씩 공연했다. 그를 '딴따라'라고 했던 할아버지도 공연을 보러 왔다. 별 말씀은 없었다. 김승준 마술사는 그게 손자를 인정한 할아버지 식 표현이라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