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기 하나도 못 걸면서 통일 대박?

'인공기 논란'에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부근 참가국기 모두 내려

등록 2014.09.11 17:53수정 2018.03.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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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대박'을 띄운 박근혜 정부가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고 통일헌장 제정까지 준비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인천아시안게임(9월 19일~10월 4일)이 열리는 경기장 주변에 45개 참가국들의 국기가 걸렸다가 내려지는 유례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조직위)는 지난 5일부터 인천과 수도권 9개의 인천 아시안 게임 협력도시 경기장 근처 도로변에 45개 아시안게임 참가국의 국기를 게양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고양시 대화동 종합운동장 주변 도로에 게양된 인공기에 대해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이 항의하자 인공기뿐 아니라 45개 참가국 전체 국기를 내리는 '꼼수'를 낸 것이다.

조직위는 "경기장 인근 거리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기와 대회 엠블럼 기만 걸고, 참가국들 국기는 경기장에만 게양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결국, 대회장 주변에서는 참가국 국기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양시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퍼지자, 고양시측은 "인공기는 고양시에서 설치한 것이 아니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설치한 것"이라는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OCA규정 위반 논란... 정부 "남북관계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조치"

 2013년 9월 12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한국 역도 선수단이 사상 최초로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2013년 9월 12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한국 역도 선수단이 사상 최초로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대한역도연맹 제공

OCA규정 58조는 "모든 경기장 및 그 부근, 본부 호텔, 선수촌과 메인프레스 센터, 공항 등에는 OCA기와 참가 올림픽위원회(NOC) 회원들의 기가 게양되어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있어 이번 조직위 결정은 OCA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도 거리에 인공기가 걸린 바 있다

이번 결정은 OCA규정과 국제 관례, 과거 사례 등을 모두 거스른 행동이라는 점에서 조직위 차원을 넘어 정부가 한 결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번 상황과 관련해 "조직위와 정부가 긴밀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며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불식하고 대회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취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도 인공기가 훼손되는 것을 원하는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인공기 훼손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회의 원만한 진행 뿐 아니라 남북관계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조치"라고 말했다.


다른 참가국들이 항의한다면? 스포츠와 정치 분리 올림픽 정신에도 위배

 지난 2005년 8월 14일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북측대표단 30명이 오후 3시경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분단 이후 최초로 참배했다.
지난 2005년 8월 14일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북측대표단 30명이 오후 3시경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분단 이후 최초로 참배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규종
하지만 이는 정부가 '보수 단체의 반발'이라는 핑계 아래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만약에 있을 수 있는 인공기 훼손 등을 적극 방지하고, 그래도 상황이 발생하면 법적 절차에 따라 처분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OCA나 다른 참가국들이 국기 철거에 대해 항의하고 나오다면 '국제적인 망신'으로 번질 수도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남북관계 차원에서 바람직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17일 남북 실무접촉에서 ''국제 관례'에도 저촉되지 않고 이전에도 문제가 된 적이 없는 북한 응원단이 사용할 인공기 크기를 거론해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번 보수단체들의 '인공기 논란'은 정부가 그 단초를 만들어 놓은 측면도 있다.

이미 남북한은 자신의 지역에서 상대방의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인정한 상태다. 이미 수차례 남한의 경기장과 그 인근에서 인공기가 올라가고 북한 국가가 연주된 바 있고 북한 평양에서도 지난 9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한국 역도 선수단이 사상 최초로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으며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연주됐다.

2005년 8월 14일에는 '8·15 민족대축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남한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 등 북측 대표단 30명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해 스포츠가 아닌 군사 영역에서도 오랜 금기를 깬 바 있다. '6·25 때 맞서 싸운 적군들의 묘지'를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진전됐던 남북관계가 국제 경기대회에서 인공기 하나 걸 수 없는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북한의 엘리트 체육인과 응원단이 와서 교류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던 인천 아시안게임이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가 될 가능성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인공기 #인천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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