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전체가 사회로부터 왕따 당하는 것 같다"

[이영광의 거침없는 인터뷰 159]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씨

등록 2014.09.24 12:03수정 2014.09.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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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난 수정이 아빠니까."

2012년 여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추적자>의 대사다.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이 지난 현재, 진상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만 속절없이 보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추적자>의 '아버지' 백홍석처럼 평범한 시민이다. 이들이 바라는 건 보상도, 특혜도 아니다. 단지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때문에 추석 명절에도 이들은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으러 다녀야 했다. 명절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했던 유가족의 심정은 가늠할 길이 없다. 지난 19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양의 어머니 박은희씨를 만났다. 다음은 박은희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눈물만 가득했던 추석 연휴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씨
유예은양 어머니 박은희씨이영광

-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남편(유경근 대변인)이 장남이라 명절이면 대부분 저희 집에서 모였어요. 그런데 이번 추석엔 남편이 청운동에 있느라 집에 올 수가 없었죠. 추석 전날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도 청운동 가서 잤어요. 아침에 남편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는데 남편이 자꾸 화장실에 가는 거예요. 원래 배가 잘 아팠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울고 왔더라고요.

결국 고개도 못 들고 울었지요. 예은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분향소로 갔어요. 합동 기림제는 저나 가족들 모두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특히 쌍둥이 언니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추모공원 가서 예은이를 보고, 광화문에 가서 저녁 집회를 참석하는 것으로 일정이 끝났어요. 앞으로 당분간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족과 아무렇지 않게 명절 음식을 먹고 TV를 보는 게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예상은 했지만 가족들이 다 모이니까 예은이 빈자리가 더 느껴져서 너무 힘들었어요."


- 참사가 일어난 지 157일이 지났어요.
"저희에겐 아직도 4월 16일이죠. 유가족은 157일째 4월 16일이라고 해요. 여전히 부모들은 힘이 없고, 여전히 정부는 무책임하고, 여전히 언론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죠. TV를 켜면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어서 곧 끄게 되요."

- 언론에 대해 하실 말씀도 많으실 텐데.
"많죠. 저희들이 '우리가 원하는 건 특혜가 아니고 진실규명이다'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언론엔 그렇게 안 나가요. 심지어 저희 보고 종북 좌파, 정치꾼, 나라 경제를 망치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면서 진실 규명을 외치는 입을 틀어막고 있어요. 자꾸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저희를 호도하고 고립 시키고 있어요."


- 수요일(지난 17일) 새벽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어찌됐건 저희가 뽑은 대표 중 일부가 저지른 실수이기 때문에 저희를 믿고 격려해준 국민들께 죄송할 뿐이에요. 전날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발언으로 유가족들이 많이 흥분하고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도 국회의원이 위로해 주겠다고 부를 때 나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많이 아쉬워요. 가족들 전체가 이 일로 큰 상처를 입었어요.

기껏 힘들게 일하고 밥그릇 엎은 꼴이 됐죠. 저도 지난 주에 대전에 이어 이번 주에는 경주에 다녀왔거든요. 다른 지역으로 다녀온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 맥이 많이 빠졌죠."

- 유가족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 일로 특별법 제정이 더 힘들어질까봐 걱정해요. 어찌됐든 같은 유가족이니 함께 품고 가고자 해요. 그래도 힘들 때 앞서서 일 해준 분들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일로 연루된 분들의 자녀도 걱정되고요. 저희가 화살을 맞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잖아요. 몇 번을 벼랑 끝에 서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 고립되는 느낌이 무섭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던데.
"언론이 인터뷰를 해가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 무섭죠. 외부에서 사실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공격하니까요. 밖으로 발언을 나가면 잘못 알고 계셨다가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심지어 제 친정 오빠도 오해하고 있더라고요.

사건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잖아요. 제대로 구조도 안 됐는데 바다에 떠 있는 군함 사진과 헬기 사진, 어선들이 구조하는 사진을 엮어서 반복해 보여줬잖아요. 마치 계속 구조하는 것처럼... 분명히 기자들이 와 있었고 구조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을 다 봤단 말이에요. 그렇게 취재해 갔는데도 그 어떤 방송국에서도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았을 때 절망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저희는 계속 '특례 입학도 의사자 지정도 필요없다, 진실 규명만 하자'고 해도 언론엔 제대로 나오지 않죠."

언론이 뿌린 오해들... "답답하고 무섭다"

- 답답하시겠어요.
"답답하죠. 그리고 무서워요. 유가족 집단 전체가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아요. 문제의 시작은 왜 이런 배가 돌아다니게 나뒀고, 애들과 어른들이 500명 가까이 탔는데 구조하러 온 게 해경정 한 척에 헬기 두 대 밖에 안 됐다는 데 있죠.  더불어 제대로 된 구조 인력도 없었어요. 해상 구조원이 '0명'이었단 말이에요.

123경비정은 말 그대로 경비 업무를 전담하는 배고 511헬기와 513헬기는 급하게 오느라 수중 구조를 위한 특공대는 데려오지도 못했어요. 퇴선 조치를 위한 방송 장비도 없었어요. 해상 구조사가 아닌 항공 구조사만 헬기 당 2명씩만 태우고 온 거죠. 500명 가까운 사람을 구하는데 말이죠."

- 구조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네요.
"의지가 없었거나 구조 체계가 엉망인 거죠. 구조 체계가 제대로 안 돼 있다면 구조 업무와 관련된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야겠죠. 구조 의지가 없었다면 엄연한 살인이고요. 어마어마한 문제죠. 이번 참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왜 일어났고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가십거리만 계속 언급하고 있어요. 왜 우리가 이 싸움을 시작했는지는 보도를 안해요."

- 사고 전에도 정치·사회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별 관심 없었어요. 저는 평범하게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고 착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했죠. 예은이에게도 '착하게 살아라, 너만 바르게 살면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 겪어 보니 혼자만 바르게 살아선 안 되고 모든 사람이 바르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제야 알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된 건, 물론 정부나 정치권 책임도 있지만 정치·사회에 무관심했던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무관심은 곧 무책임이에요. 이걸 알리려는 거예요. 서명 받는 이유도 저희처럼 바보로 살지 말고 여러분들은 깨어서 참여하라는 걸 말하려고 나온 거예요."

- 예은이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밝은 아이였다고 들었어요.
"예은이는 쌍둥이 중 막내예요. 태어날 때 패혈증 증세도 보이고 목도 심하게 꺾여서 검사를 엄청 많이 했어요. 때문에 큰 애와 저만 퇴원하고 예은이만 혼자 일 주일을 더 있었어요. 퇴원하고 집에 와서도 먹기만 하면 토해서 어떻게 될까 무서웠는데 다행히 자라면서 건강하고 밝게 컸어요.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꽂히면 군살이 박힐 정도로 했어요. 쥐불놀이도 물집 잡힐 정도로 하고... 아무튼 몸 써서 하는 걸 다 좋아했어요, 수영도 잘했고."

- 예은이 꿈이 가수였다고.
"예고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어 했는데 합격을 못해 단원고로 갔죠.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는 뮤지컬 학원도 다녔어요. 수학여행 가기 전날에도 뮤지컬 하러 갔다 밤 늦게 왔어요. 그때 가방을 싸는데 작년 체육대회 때 입었던 옷을 싸더라구요. 몸뻬 바지라 '수학여행 가는데 예쁜 옷 가져가지 왜 그걸 가져가냐'고 물었어요. 자기한테 의미가 큰 옷이라서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예은이 반이 그 옷 입고 단체 에어로빅 1등을 했거든요. '앞에서 춤추는 게 좋냐'고 물었더니 예은이는 '그것도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더 좋았다, 서로 맞춰가는 게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고가 나고) 나중에 캐리어가 왔는데 그 속에 그 옷이 있었죠."

- 사고 소식은 어떻게 접하셨나요.
"친정 오빠가 전화로 TV 틀어보라고 해서 켰지요. 자막에 '단원고 수학여행'이라고 나온 걸 보고 꿈을 꾸는 것처럼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요. 아이 나올 때까지 일 주일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있었어요. 밤은 너무 길고, 낮은 너무 짧은 이상한 하루가 지났어요. 현실같지 않은 날이 반복됐고 장례를 치러도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 예은이를 다시 만나셨을 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처음엔 남편이 못 보게 했어요. 염할 때 아이를 봤는데 평소 자는 모습하고 똑같았어요. 예은이는 늘 바쁘게 살았어요. 학교 끝나면 보충수업 하고 학원 갔다 집에 오고 중간에 과외하는 날도 있고... 잘 때 가보면 한번도 안 깨고 곤하게 잤죠.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표정이 '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깨끗하게 나왔는데... 엄청 힘든 일을 끝내고 자는 것처럼...

애가 나오는 날 새벽에 꿈을 꿨어요. 예은이가 여행가방을 들고 길 모퉁이에 서있더라고요. 그 전날까지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그날은 밥도 먹고... 그렇게 예은이 맞을 준비를 했는데 정말 나왔다는 전화가 왔어요."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7월 국회 본관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7월 국회 본관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남소연

예은이 빈 자리 점점 커져..."밝은 목소리 그립다"

- 예은이 생각, 어떨 때 자주 드세요?
"예은이가 가수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가요 TV프로그램 볼 때, 예은이가 좋아하는 과일이 집에서 상해갈 때 생각나요. 예은이는 제가 부르면 늘 바로 달려왔어요. 제가 불러도 반응들이 없을 때 예은이의 밝은 목소리가 그립죠. 또 예은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밤 10시 30분 쯤인데 종종 아이를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왔거든요. 밤에 뭔가 버릴 게 있어서 나갈 때 예은이가 불쑥 나타나지않을까 기웃거리게 돼요."

- 생계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저희 집은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에요.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체도 아버님이 대신 맡아주시고 있고... 그런데 아이 4명에서 한 명 빠지는 게 확 표가 나요. 예은이가 있었으면 뭘 사거나 보러갔는데 이젠 못하잖아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집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예은이 있을 땐 외식도 했는데 이젠 못 나가요. 사고 후 애들 아빠랑 가족 외식 딱 한 번 했는데 6명이면 셋 셋 앉잖아요, 근데 한 자리가 비어서... 울다 왔어요. 남은 한자리가 예은이 자리라는 걸 느끼니까 힘들어서... 중간에 몇 번을 나와서 울었어요. 외식은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돈 쓸 일이 줄어드니 버티는 거죠."

- 엊그제 진도 다녀오셨다고.
"바다를 보니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날씨가 당시와 비슷해요. 여기보다 훨씬 춥더라고요. 저희도 저희지만 남겨진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고...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란 이유로 미안해야 하는 상황, 오히려 우리 처지를 감사해야 할 입장이니까 기가 막히죠. 실종자 가족 분들이 극도로 몸과 마음이 상해 계셔서 마음이 아프죠."

-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았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유가족들에겐 송구하죠. 개신교 전도사로서 개신교가 가진 허점을 보여준 것 같고... 그래도 좋은 분들도 많아요. 이번 주에 경주 갔을 때도 교회 분들이 많이 격려해 주셨어요."

- 남편(유경근씨)께서 세월호 대책위 대변인이기 때문에 언론에 노출이 많아서 겪는 어려움도 있겠습니다.
"감수해야지 어쩌겠어요. 남편이 정의당 당원인 것 가지고 문제 삼을 때,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대변인을 안 하려고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들의 신뢰도 얻고 외부에서도 문제 삼지 않더라고요.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좀 더 조심하길 바라죠. 남편이 목회를 하다가 그만 뒀는데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목회의 현장에 보내시지 않았나 생각해요."

- 세월호 특별법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이제 정부나 정치권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줘야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많은 분과 같이 토론해서 찾아가고 싶어요. 지금은 답답해요. 지난번엔 광화문 앞에서 토론회를 했어요. 전 참석 못했는데 참석한 저희 언니가 '결론은 답이 없더라, 어떡하냐?'했어요. 법으로 할 수 있지만 법에 맡겨서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그게 영글어서 결과물이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핵심 쟁점인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가운데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의 모니터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고 있다. 실종자인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의 아내 유백형씨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핵심 쟁점인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가운데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의 모니터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고 있다. 실종자인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의 아내 유백형씨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소중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은희 #세월호 #유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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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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