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문태현
문태현
소년의 아버지는 울었다. 왼쪽 팔에 문신을 새기고 온 소년을 붙잡고 울었다. 가출했다가 집에 온 소년은 문태현, 중학교 2학년이었다. 태현은 욕실에 들어가 철수세미로 문신을 밀면서 울었다. 살은 벗겨져도 문신은 지워지지 않았다. 소년은 생선회를 뜨듯이 살갗을 파냈다. 피가 나고, 진물이 흐르는 팔에 늘 붕대를 감고 다녔다.
"나, 공부할 거야."아버지의 눈물을 본 태현은 중1 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한테 말했다. 태현은 마술과 춤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이였다.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낸 소년은 어느새 심각하게 '까진'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집에 가서는 평범한 아들, 집밖에서만 다른 얼굴로 살았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싸우고. 결국에는 부모님도 알게 되었다.
태현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교과목이 어려웠다. 특히, 수학은 이해불가의 '외계어'였다. 태현은 죽을 듯이 공부했다. 턱걸이로 군산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밤늦게까지 남아서 하는 자율학습뿐. 사고를 한 번도 안 치고 보낸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말, 태현은 부모님한테 말했다.
"저, 학교 그만 두면 안 될까요? 마술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나요.""미쳤구나? 미쳤어!"1주일 뒤, 태현은 학교로 찾아온 부모님을 만났다. 태현이 바라던 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반 친구들이 "야, 너 왜 그래?"라고 물었다. 얼떨떨한 그는 "몰라. 나, 자퇴한대"하면서 책가방을 쌌다. 검정고시 학원으로 갔다. 태현은 자신을 자퇴시켜 준 부모님이 고마웠다.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말도 안 된다고 무시하지 않고 믿어준 것에 감격했다.
태현은 열 살 때 친구가 하는 마술을 보았다. 친구는 손 안에다가 조그맣게 뭉친 화장지를 넣고는 사라지게 했다. 태현은 궁금했다. 친구한테 그 비밀을 알려달라고 1주일 동안 맛있는 것을 바치며 졸라야 했다. 알고 보니 간단했다. 다른 데로 한 눈 팔게 하는 거였다. '마술사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린 태현은 그 세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마술에 미쳐 고교 자퇴
친구들이 몰려다니며 노는 방과후 시간, 태현은 군산 한길문고나 명지서림에 갔다. 마술 책만 파고들었다.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따라해 봤다. 친구들한테도 보여줬다. 관객의 눈을 멀게 하는, 자기가 계속 보고 있다고 뇌가 믿게 하는 '미스디렉션' 종류의 마술을 터득해 나갔다. 열두 살이 된 태현은 부모님을 졸라 광주에 있는 마술학원에 등록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마술을 강의하더라고요. 혼자서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계속 책을 사서 읽고, 또 읽고. 그리고는 해 봤어요. 근데 텔레비전에서 본 마술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요. 제프 맥브라이드라는 마술사였어요. 카드가 공중에서 막 나타나는 마술을 했는데 '저걸 알고 싶다. 저렇게 멋있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고등학교 자퇴한 태현은 8개월 뒤에 검정고시 시험을 봤다. 합격! 어린 태현이 순식간에 매혹 당했던, 공중에서 카드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카드매니플레이션도 할 수 있었다. "서울로 가서 진짜 마술사들을 만나보자." 그러나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서울은 넓고, 마술을 잘 하는 사람도 엄청 많을 거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마술을 보여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