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빵을 굽는 동안 다른 빵을 준비해야 한다. 각기 다른 빵들을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딱딱 맞게, 맞물려가면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그게 빵 만드는 기술이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빵 만드는 사람들은 제과제빵 기능사 시험을 본다. 그 다음에는 기능장 시험을 본다. 최고의 자리는 명장, 시험으로 뽑지 않는다. 국가에서 지정해 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제과제빵 명장이 10여 명 있다. 요한은 스물여섯 살 초봄에 서정웅 명장의 제과점으로 일 배우러 갔다. 요한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온 사람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했다.
"'서울에 오길 잘했구나' 그런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하루에 15시간씩 서서 일하니까요. 오전 5시에 나가서 오후 7시, 늦으면 오후 9시에 끝났죠. 숙소에 들어가면 자죠. 바로요. 한 달에 두세 번만 쉬어요. 근데 서울 제과점에서는 다들 버텨요. '명장님 밑에서 일했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큰 제과점, 좋은 사람 밑에서 일했다는 건 그만큼 기술자로서 인정을 받는 거니까요." 서울은 제품의 가짓수부터 다양했다. 먹는 문화도 고급스러웠다. 배우는 데 공력이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요한은 서울의 큰 제과점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눈여겨 봤다. 빵 만드는 각종 기구들까지 세심하게 봤다. 그렇게 1년을 일했다. 창업을 고민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요한은 또 다른 제과점으로 가서 배우고 싶었다.
그때, 늘 요한을 격려하며 더 큰 세계로 나가라고만 했던 아버지가 "내려와서 함께 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쌀과 밀보다 식이섬유가 월등하게 많은 군산의 특산물 흰찰쌀보리(꽁당보리)로 빵 만드는 것을 연구하고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도, 서울의 큰 제과점에서 배우는 것처럼 의미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는 날마다 밀가루 80kg을 반죽했다. 반죽은 그 날의 날씨나 습도에 따라 달랐다. 수많은 변수를 겪고 난 뒤에야 요한의 몸에 반죽이 배어들었다. '아,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구나'를 깨우쳤다. 빵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 이 빵을 굽는 동안 다른 빵을 준비하고 만들어야 한다. 잡념이 끼어들면 안 된다. 각기 다른 빵들을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딱딱 맞게, 맞물려가면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그게 빵 만드는 기술이었다.
"제 손에 일이 익었다 싶었을 때가 8년 차였어요. 기술자 대접을 받으려면 적어도 10년은 해야 되고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 때까지 잘 못 버텨요. 일이 워낙 힘드니까요."파티시에 직업으로 '강추'하고 싶진 않은 이유빵집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이 될 때까지 12시간 이상씩 일한다. 직원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쉰다. 빵집 아들이면서 빵집 기술자인 요한씨는 빵집 직원처럼 쉬지 못한다. "장사는 손님하고 약속이다. 손님들이 모르고 왔다가 빵집 문 닫았다고 돌아가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철학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업을 잇는 요한씨는 말했다.
"군산의 이성당은 전국적으로 너무 유명한 빵집이죠. 줄 서서 먹을 만큼 맛있으니까요. 저도 동네의 맛있다는 빵은 다 먹어봐요.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우리 집 빵이 최고야' 하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야 우리 집 맛을 개선하죠. 군산에 살면서 1시간씩 기다려서 팥빵을 사 먹지는 못하죠. 그래서 저희 집으로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는 아침밥으로 빵 하나를 집어먹는다. 그와 결혼한 지 네 달된 아내는 "야, 빵집 하는 친구 있으면 소개 좀 시켜 줘"라고 말하고 다녔을 만큼 빵을 좋아하는 사람. 그는 그녀에게 특별한 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생일 때는 레몬치즈 케이크를 만들고, 선물로 산 팔찌를 장식한 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입덧 중인 요한씨의 색시는 빵도 잘 먹지 못한단다.
하루 12시간 이상 빵 만드느라 바쁜 요한씨는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많이 미안하다. 그래도 빵 만드는 일을 선택한 지난 10년을 후회한 적은 없다. 빵을 만들며 살고 있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한 적 없다. 다만, 제빵 일을 다른 이들에게 '강추' 하지는 못하겠단다. 그는 말했다.
"이 일이요? 자신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하죠. 버틸 자신이요. 기술 배울 때가 진짜 힘들어요. 한국 문화가 기술을 전수 받을 때 고되거든요. '내가 너에게 이걸(기술)을 가르쳐 주니까 너는 이 정도까지는 해야 돼' 이런 게 있어요. 하대를 많이 견뎌야 해요. 그래야 기술자가 되거든요."제빵을 배우는 청춘들은 많아도 끝까지 직업으로 삼는 이는 드물다. 몸은 고되고, 고생한 만큼 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성을 가진 기능사들은 서울로 간다. 요한씨는 나고 자란 동네에 남았다. 아버지의 일을 대물림했다. 나는 생각해 봤다. 요한씨 같은 젊은이들이 늘어나면,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힘을 잃을 수 있다. 일본처럼 대대로 가업을 이은, 갖가지 음식점들이 성업 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