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세상이 변했다... 급이 다른 대륙의 황사

[당신에게, 실크로드 06] 양을 타고 황하를 건너다 - 란저우

등록 2015.01.14 16:32수정 2015.01.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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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실크로드 06] 양을 타고 황하를 건너다 - 란저우 ⓒ 정효정


이것이 대륙의 황사

란저우 백탑산에서 황사의 습격을 받았다. 고비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다. 날씨가 좋더니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5분도 되지 않아 주변이 누렇게 변했다. '오오, 과연 이것이 대륙의 황사.' 감탄이 절로 나온다. 콧속에서 흙 냄새가 났다. 산을 오르던 중이라 피할 곳도 없고 난감하다. 황사 속에서 황하를 내려다보니 더욱 누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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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교 이때만 해도 날씨가 맑았는데, 분명히 맑았는데.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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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대륙의 황사 클라스 5분 만에 모든 풍경이 변했다. ⓒ 정효정


중국 서북지방 최대 공업도시 란저우. 도시 주변엔 정유공장과 석유화학공장, 알루미늄 등 중화학공장이 빼곡하다.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서부대개발의 중심 도시다. 문제는 환경오염이다. 베이징을 제치고, 중국내 가장 공기나 나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공기도 나쁜데 주변에 온통 나무가 없는 황토산이라 황사를 막을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이 공기 속에는 주변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한 납, 카드뮴 과 같은 중금속과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미세먼지는 모래먼지보다 더 작기 때문에 우리 폐에 쌓이면 장기 내부에 염증이 생기거나 호흡기 질환으로 이어진다. WHO(세계보건기구)는 한 해에 미세먼지 때문에 죽는 사망자는 7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미세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한국까지 가고 있는 걸 생각하면 억울해진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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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저우 외곽 공장지대 신장에서 채취한 천연자원이 란저우에 있는 석유화학공장으로 흘러온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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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교 옥수수 파는 회족청년 미세먼지 방지에는 마스크만이 살 길. 옥수수는 1개 5위안 ⓒ 정효정


란저우에서는 공해 다음으로 '우육면'이 가장 유명하다. 자기들끼리 하는 농담으로는 란저우 사람들은 소를 좋아해서 매일 여기서 소비되는 소를 줄 세우면 지구 세 바퀴란다. 우육면은 맵고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다. 우육면 한 그릇에 6위안. 한국 돈 천 원 정도다. 면 요리를 즐기는 편이 아닌데 이미 시안에서부터 하루 한 끼는 면을 먹는 '면식 수행'의 세계에 들어섰다. 쌀이 지배하는 동쪽은 이미 떠난 것이다.

옛날 란저우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기점이었다. 서역에서 온 물건과 내륙에서 모인 물건이 집결되던 곳이다.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 전 병령사에서 안전을 빌었다. 석굴군인 병령사는 란저우에서 버스로 2시간, 보트로 다시 1시간 정도 들어가면 나온다. 과거에는 육로로 갔다는데 인공댐인 유가협이 생기고 나서 지금은 배로만 갈 수 있다고 한다.

병령은 '십만불(十萬佛)'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어의 음역이다. 유가협댐에 도착했을 땐 초록색 맑은 물이었지만 어느 순간 황토물로 바뀐다. 그렇게 누런 물을 헤치고 가다보면 기암괴석이 들어찬 협곡에 도착한다. 절벽을 따라 2km 정도 말발굽 모양으로 한 바퀴 돌게 된다. 5호 16국 시대인 서진시대부터 북위, 북주, 수, 당 그리고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총 195개의 석굴과 776구의 불상이 만들어졌다. 손톱으로 긁어도 긁힐 것 같은 사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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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령사 대불 171굴 현암대불, 당대 조성되었으며 높이 27미터다 ⓒ 정효정


부드러운 황토색의 절벽과 넘실대는 황하, 그리고 5월 신록의 조화가 아름답다. 하지만 댐이 생기면서 습기로 인한 유적지 훼손이 상당하다 한다. 가장 유명한 불상이 당대에 조성된 높이 27m의 대불, 그리고 길이 17m의 와불이다.

석굴 아랫부분에 있던 와불은 댐 건설로 인해 물이 차오르면서 따로 기념관을 지어 옮겼다. 어떻게 보며 쫓겨난 건데도 그 미소가 참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봉긋한 입술이 아이 입술처럼 귀엽다. 나도 모르게 '성시경 미소'가 지어졌다. 잘자요~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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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요 와불 16굴 와불, 북위시대 작품이다. 길이 17미터. 좋은 꿈을 꾸는 듯 한 표정 ⓒ 정효정


양을 타고 황하를 건너다

"네가 유일한 한국인이니까, 노래 부탁해~"

가이드는 천진하게 웃었다. 강단 있고 귀염성 있게 생긴 여자아이다. 투어버스를 타고 황하석림으로 가는 중이었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방법이 없기에 투어에 참가했는데, 노래를 시킨다. 마이크를 받아 쥐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의 시선에서 K-팝의 나라에서 온 한국인에 대한 기대가 보인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를 불렀다. 정윤희의 '꽃밭에서'

이렇게 좋은날 이렇게 좋은날
내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 표정들이 쎄~하다. 망했다. '텔미'나 '노바디'를 불렀어야 했는데. 민망하게 앉았다. 어차피 난 미끼였다. 가이드는 다른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이 노래를 했는데 중국인도 당연히 해야지"라며 노래를 권했다. 그래도 혹시나 마이크가 돌아오면 '텔미'를 불러야지 하면서, 열심히 노래 가사를 떠올려봤지만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황하석림은 기암절벽들이 빽빽한 숲처럼 솟아있는 34㎢의 넓은 지형이다. 란저우에서 160km 떨어져 있다.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으로도 활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영상물로는 송일국 주연 드라마 <바람의 나라>와 김희선 주연의 영화 <신화>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부식된 높은 바위 사이로 신기하게도 큰 길이 나있다.

그 길을 따라 당나귀 마차를 타고 음마대협곡 기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케이블카나 버기카를 타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는 240만 년 전 지형변화로 형성된 방대한 계곡들이 한눈에 보인다. 하늘높이 솟은 암석들은 하나하나씩 보면 다 다른 모양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규칙적인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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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마차 당나귀 마차 왕복 30 위안. 사실 걷는 게 더 빠르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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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석림 황하석림 정상 ⓒ 정효정


이 곳을 가기 위해서는 황하를 건너야 한다. 오래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양가죽 뗏목 피파(皮筏)를 탈 수 있는 거다. 잘 말려진 양가죽은 빳빳했다. 이 양가죽을 12개 정도 엮어 그 위에 올라탄다. 물어보니 이 양가죽 뗏목 하나에 70만 원이란다. 양가죽 하나가 5만 원 정도에 거래된단다. 뗏목 하나에 뱃사공 한 명, 여행객 4명이 탔다. 황하는 생각 외로 거세고 양가죽 뗏목은 너무나 가볍다. 절벽 가까이에 가자 숫제 물살에 휩쓸려 빙빙 돈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어쩐지 나약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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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뗏목 물살이 의외로 거칠다. 발목이나 신발은 젖게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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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죽 뗏목 양가죽 하나에 5만원, 뗏목 하나에 70만원정도 ⓒ 정효정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황하를 지난다는 건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황하는 6000km를 흘러 중국 대륙을 관통해 황해로 흘러간다. 문명은 황하를 중심으로 생겨났고, 전설 속 요순은 이 강을 다스려 천하를 얻었다. 그때부터 황하는 중국 사람들의 어머니의 강(母親河)가 되었다.

이제 여정은 황하의 서쪽으로 향한다. 중원의 문명에서 벗어나 서역으로 들어서는 거다. 서역으로 향하는 통로는 하서주랑(河西走廊)이다. 황하의 서쪽에 있는 긴 복도라는 뜻이다. 1200 km에 이르는 협곡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길의 양쪽에는 치롄산맥과 고비사막이 버티고 있다.

한나라의 장건이 이 길을 지나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그 이후 이 협곡은 동쪽과 서쪽을 잇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이곳의 패권을 둘러싸고 중국 왕조와 이민족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마르코 폴로가 1년을 살았다는 장예와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는 가욕관이 나온다. 그리고 하서주랑의 마지막엔 사막의 오아시스 둔황에 도착한다. 둔황은 서역의 입구다. 아는 세상의 상식과 질서는 무너지고, 산해경에 나오는 온갖 괴물로 가득 찬 혼돈의 세계로 들어서는 거다.

실크로드의 아버지, 장건

국제도시 장안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다. 당 현종의 생일잔치에는 백 마리의 말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고 한다. 음악이 고조되면 우두머리 말이 바닥에 놓여있는 술이 가득찬 술잔을 입으로 물어 현종에게 바쳤다고 한다. 말이 추는 축수무다.

그러나 안사의 난 이후 현종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이들 춤추는 말은 안록산의 장군들에게 넘겨졌다. 승리의 잔치가 벌어지자 신나는 음악소리에 말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인들은 말들이 미쳤다고 생각해 모두 죽이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도금은병에 남겨져 지금 산시성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재롱을 부리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는 말의 이야기는 묘하게 인상에 남았다. 한 때 이 말들을 얻기 위해 전쟁이 나기도 했다. 사실 실크로드는 '말의 길'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실크로드의 아버지, 장건이 있다.

기원전 2세기, 거듭된 흉노의 공격에 한무제는 장건을 서역에 파견했다. 횽노에게 패해 쫓겨간 대월씨를 설득해 함께 흉노를 침공하기 위함이다. 기원전 138년, 장건은 1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서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곧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10년이 넘도록 흉노족 여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았다. 결국 탈출해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북부에 살고 있던 대월씨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서 과거를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대월씨는 연합하자는 한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 장건은 다시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또 탈출한다. 이렇게 두 번의 포로생활을 거치며 13년 만에 장안에 돌아온 장건, 비록 임무는 완수하지 못했지만 서역과 흉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1급 스파이가 되어 인생 2막에 성공했다.

그때 장건이 한무제에게 전한 흉노의 비밀병기가 바로 한혈마였다.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명마. 그동안 흉노는 전장에서 보병대보다 기병대가 유리하다는 것을 잔혹한 방법으로 보여줬다. 당시의 말이라면 지금의 탱크나 장갑차정도의 중장비부대의 역할이었을 거다. 한무제는 대완국(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계곡)에 이 한혈마가 있다는 장건의 정보를 듣고 군대를 파견해 결국 한혈마를 구할 수 있었다.

당시 한혈마의 위상은 란저우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한 대 무덤에서 출토된 마답비연상이다. 날렵하게 생긴 말이 달리는 모습인데 말의 발굽을 자세히 보면 제비가 한 마리 밟혀있다. 제비는 하늘을 난다. 그렇다면 이 말이 하늘을 날아 제비머리를 밟았다는 이야기다. 옛사람들의 창의력 넘치는 표현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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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답비연 말의 발을 자세히 보면 제비가 한마리 밟혀있다. ⓒ 정효정


란저우를 떠나는 날, 기차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택시가 안 잡힌다. 노동절이 낀 주말이었다. 황하 근처의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일단 스마트폰 지도로 기차역을 체크해 보니 3km 정도다. 베낭을 메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택시 한 대를 겨우 잡았다. 회족 청년은 사람 좋은 미소로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안심 시켰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기차역에 도착했다. 란저우 기차역 앞에도 이 마답비연상이 서 있다. '아, 말도 하늘을 나는데.' 어쩐지 억울한 기분으로 기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둔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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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할아버지 중국에도 뻥튀기가 있다니... 우리 고유의 먹거리인줄 알았는데. ⓒ 정효정


여행정보
병령사 가는 법
란저우 서부 버스터미널에서 유가협행 버스에 탑승 2시간 20분 걸린다. (19.80RMB) 버스터미널에서 유가협댐까지는 택시로 5위안. 댐에는 모터보트 '삐끼'들이 있는데 흥정이 필요하다. 티켓창구에는 120위안으로 적혀 있으나 대부분의 중국인의 100위안을 내고 탄다. 병령사에 도착하면 1시간 20분정도 시간이 주어진다.

황하석림 가는 법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은 없다. 투어에 참가해야 하는데 투어 예약은 숙소나 기차역앞에 있는 여행사 등에서 할 수 있다. 1일 투어 요금 및 구성은 투어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략 360~ 400RMB 사이) 대부분 버스, 농가에서 먹는 점심 식사, 전동차, 양가죽뗏목, 모터보트 등이 포함되어 있고 당나귀 마차나 케이블카, 버기카는 옵션이다. (당나귀 마차 왕복 30 RMB, 버기카  왕복 30 RMB ) 

덧붙이는 글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실크로드 #란저우 #황하 #황하석림 #병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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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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