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에서 고가 아파트와 명품 백화점, 유흥가가 모여 있는 올림픽 요트 경기장 부근.
김소연
소리는 복도 저쪽 끝에서 났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여자가 부츠 신은 발로 복도 끝집 문을 마구 차고 있었다.
"문 열어, 문 열란 말이야!"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따가웠다. 그 집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자는 주먹과 발로 문이 부서져라 두들겨댔다. 문고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여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갑자기 여자가 몸을 획 돌려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20대 초반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놀란 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거칠고 빠른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인지 발인지 복도 벽을 꽝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외박한 딸을 벌주고 있나 보군', '그나저나 저 집 부모도 참 대단하다', '이러다가 일요일 새벽에 이웃 사람들 잠 다 깨겠네'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거실 창문 밖으로 텅 빈 거리가 보였다. 그 겨울은 유달리 추울 거라고 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길거리는 꽁꽁 얼어버린 듯했다. 저 칭다오 바닷물도 얼었으려나. 그 때였다. 복도에서 '흑흑'도 아니고 '악악' 대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놀람과 호기심에 나는 다시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여자는 그 집 문 앞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롱코트, 부츠, 스웨터, 가죽 스커트, 검정색 스타킹, 속옷이 흩어져 있었다. 맨몸의 여자는 얼음장같은 복도 바닥에 손바닥을 내리치며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하고 발악을 했다. 오스스 소름이 돋았을 여자의 몸이 발작적으로 떨렸다.
갑자기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풍성한 파머머리가 여자의 허리께에서 출렁거렸다. 여자는 문에 머리를 마구 찧어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 열어, 문 열어" 여자의 목소리가 짱짱한 꽹과리에서 퍼석거리는 두부로 느껴질 때쯤, 여자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제야 그 집의 문이 열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중년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말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젊은 여자의 몸에 걸쳐 주었다. 진이 다 빠진 젊은 여자는 중년 여자에게 고분고분했다. 중년 여자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집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중년 남자의 벌겋게 달아오른 목소리와 젊은 여자의 기진한 흐느낌이 뒤엉켰다.
아파트 경비원이 와서 그 집 문을 두드렸다. 중년 남자가 옷을 다시 입은 젊은 여자를 문 밖으로 끌어냈다. 여자는 문을 붙잡고 버둥거렸다. 두 명의 경비원이 양쪽에서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엘리베이터홀로 질질 끌려가는 여자의 뒤통수에 중년 남자는 가래를 뱉듯 욕설을 내지르고 쾅!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복도는 순식간에 적막에 싸였다. 칭다오에 좀처럼 내리지 않는 눈이 복도 창밖에 흩날리고 있었다. 신년 초 일요일 아침을 찢어 놓는 소음에도 같은 층에 사는 어느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이방인 한 명만 문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렸다.
봉건사회의 전유물인 축첩... 현대 중국에 부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