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은이와 엄마 김경아씨
김지영
올해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인 희은이네 가족은 모두 다섯이다. 아빠(김종호, 49, 한국기독학생회 대표) 엄마(김경아, 46) 그리고 큰 언니(김희연, 22)연)와 둘째 언니(김희수, 16)가 있다. 위로 두 언니들은 엄마가 배로 낳은 딸이고 희은이는 생후 24일 되던 날 경아씨가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
김경아씨에게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선교단체 소속이었던, 그저 교회 오빠 정도로 생각했던 김종호씨가 어느 날 남자로 보였다.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김경아씨가 대학을 마치자마자 결혼했다. 그리고 큰 언니 희연이가 엄마 나이 스물네 살에 세상에 나왔다.
김경아씨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다. 첫째를 낳은 것부터가 상당한 모험이었다. 류머티즘이 유전되는 병은 아니지만 아이를 임신하고 극심한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산모에게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의사는 둘째를 낳지 말라고 단정적으로 경고했다. 천성이 아이를 좋아하는 김종호씨와 둘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김경아씨가 그런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6년 만에 둘째를 낳게 된 데에는 사소한 '우연'이 함께 했다.
"류마티즘 환자는 약을 계속 먹어야 돼요.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하거든요. 피임도 물론 계속 했는데 약을 잠깐 바꾼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약이 임신안정성이 입증이 안 된 약이었어요. 그러다 어떻게 임신이 된 거예요. 마음이 굉장히 즐겁고 기뻤지만 의사가 기형아일 확률이 높다라면서 기형아 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부부는 '하면 어쩔 건데. 기형아면 그에 맞게 또 키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검사하지 않고 그냥 낳았어요.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제가 낳은 두 아이는 자가면역질환이 없어요. 두 애를 낳은 건 너무 기쁘고 좋은데 (아픈 몸으로)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죠."그렇게 둘째를 낳고 얼마 안 돼 김경아씨는 걸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삶의 활기도 생겼다. 아이 둘을 양육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창 예쁘게 커가고 있는 딸들을 보며 삶의 기쁨과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셋째 얘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류머티즘 환자인 몸인 김경아씨에게 셋째까지 낳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리가 대학생 때 사회에 공헌해야 된다, 이런 얘기 하면서 친구들끼리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저는 듣기만 했고 얘기는 안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데는 공감을 했지만요. 그런데 제가 어지간한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렇게 불쌍히 여기고 그러질 않는데 언젠가 아동보호시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든 그런 마음이 생기긴 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4년을 살았어요. 둘째도 미국에서 낳았지요. 거기서 한인 입양아도 만났고 백인부모가 흑인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보고 하면서, 저나 우리 큰 딸은 입양이 뭔지는 알고 있었죠."한국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셋째를 입양하자고 경아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큰 딸의 은근한 압력도 가해졌다. 김경아씨의 결정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웠고 또 아이가 생기면 집안에 묶여 있어야 된다는 답답함은 마음의 빗장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은근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지도하고 있던 카이스트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자기 친구가 모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고가 있었어요. 제가 가장 가까이서 겪은 첫 죽음이었어요. 죽은 시신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저한테 '사모님, 사모님' 그러면서 밥도 같이 먹고 늦은 시간에 집에까지 찾아와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던 그런 어린 학생이었어요. 스물한 살. 근데 너무 허무하게 간 거예요. 정말 너무 허무하게. 딱 한 번의 사고로. 그 죽음을 보고 나서 살고 죽는 게 별게 아니구나, 어쩌면 사는 동안 아등바등 하거나 혹은 내 살길 찾자고 애쓰고 사는 것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 사는 동안 의미 있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내가 의미 있게 사는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죽은 그 아이를 보고 와서 하루를 꼬박 밤을 새우며 한 생각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입양결정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해요. 걔 죽음과 입양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저에게는 그 아의의 죽음이 다가왔고, 제가 입양결정을 하면서 희은이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됐죠."삶에는 참 많은 우연과 선택이 존재하고 또 그런 것들이 삶을 때론 어둡게 때론 밝게 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재능이 있고 심성도 고왔던 젊은 대학생의 어이없는 죽음이 김경아 씨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 죽음을 죽음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김경아씨는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커서 다섯 명 입양할 거야" 큰 딸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