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박정은, 이레아, 아빠 이상호
김지영
2014년 9월초 입양을 신청하고 일 년이 되었다. 긴 기다림 속에 가정조사를 나온 입양기관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요일이었다.
"월령이 좀 많은 아이도 괜찮겠어요?"
나이가 있는 연장아 입양을 생각했다 포기한 적은 있었지만 월령이 많은 아이는 전혀 뜻밖이었다. 9개월이라고 했다. 여자 신생아는 일 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9개월 동안 입양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럭 겁부터 났다. 우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랬는데 또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아기가 헬멧을 쓰고 있어요.""마음은 수없이 많은 갈래로 쪼개지고"사두증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였다. 요행 질병이 아닌 질환이었다. 머리가 한쪽으로 심하게 눌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모양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뇌출혈 증세를 검사했는데 그 결과가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나온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장애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헬멧은 머리모양을 바로 잡기 위한 교정 장치였다.
처음 입양 상담을 할 때 유일하게 원했던 게 건강한 여아였다. 혈액형도 같았으면 하는 바람을 비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나는 동안 입양되지 못한 알 수 없는 어떤 상황들과 큰 병이랄 수는 없지만 사두증이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수없이 많은 갈래로 쪼개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긴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소개된 아이였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지만 '안 되겠' 다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자가 말했다.
"월요일 검사결과를 보고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
주말이 지나고 전화를 받기까지 가슴속에서는 큰 폭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9개월, 사두증, 장애 등의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복잡하게 얽힌, 할 수 있는 갖은 상상을 해야만 했던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월요일 오후 전화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뇌출혈이나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는데요."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너무 궁금했지만 보내지 말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입양을 결정한다는 게 이상하고 불편했다. 입양을 신청하고 실제 입양아를 결정하는 방식이 어떤 건지 알지 못했다. 봉사를 다니면서 눈에 밟히는 아이를 입양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상상은 했지만. 일단 만나 보기로 했다.
2014년 9월 18일,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가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부부의 얼굴에 함박 놀라운 웃음이 번졌다. 9개월, 사두증이라는 단어 때문에 빚어졌던 온갖 불온한 상상들이 한꺼번에 그리고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부에게는 눈부시게 예쁜 아이였다. 낳아도 낳을 수 없을 만큼 환한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