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김은정(가명)씨는 김신혜를 면회한 뒤 바로 경찰에게 참고인 진술을 한다. 이때 고모는 면 "김신혜가 자기 혼자 죽였다고 말했다"고 거짓으로 진술한다.
박상규
[이상한 말] 자백 이전에 범행 알았다?"김신혜가 모든 걸 자백했다"는 게 고모, 고모부의 주장이다. 이들의 말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이 사건에서 시간을 정확히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물적 증거 없이 수사 기관이 작성한 조서상 자백과 증언이 주된 증거가 되어 김신혜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시간 퍼즐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사건 실체가 달라진다.
김신혜의 아버지가 사망한 날은 2000년 3월 7일 새벽. 고모부 김정한씨가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신혜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주장한 시각은 다음날인 3월 8일 오후 11시 20분께다. 자백 여부를 떠나, 김신혜도 그 시각에 김정한과 이야기 나눈 사실을 인정한다.
이후 김씨는 김신혜를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갔다. 김신혜의 여동생 김수현(가명, 당시 18세), 큰아버지 김용철(가명), 친척 이용구(가명)가 동행했다. 집에는 고모 김은정이 있었다. 김은정은 오후 11시 40분께, 수면제 30알을 갈아서 아버지에게 먹여 죽였다는 김신혜의 자백을 처음 들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이 시각 이전엔, 김신혜의 범행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김신혜씨의 큰아버지 김용철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 3월 8월 오후 완도에서 큰아버지 김씨를 직접 만났다.
"밤 11시 20분에 신혜가 자백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례식장에서 사람들 화투 치는 걸 보고 있는데, 여동생이 저를 불렀어요. 3월 8일 오후 9시도 안 됐을 때였어요. 그 시각은 확실해요. 장례식장 앞에 있는 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여동생 부부가 저에게 말했어요. 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 같다고요."그의 말이 맞다면, 고모와 고모부는 오후 9시도 안 된 시각에, 김신혜가 자백하기도 전에 그녀의 범행을 알고 있었다. 혹시 70대의 고령인 큰아버지의 착각 아니냐고?
큰아버지는 이미 14년 전인 2001년, 반부패국민연대 국장으로 일하던 고상만씨에게 관련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내용은 고상만씨가 쓴 책 <니가 뭔데>에 상세히 담겨 있다. 고상만씨는 당시 큰아버지 육성 녹음 파일을 여전히 갖고 있다.
고모 김은정의 말을 반박하는 건 큰아버지만이 아니다. 김신혜 여동생 수현씨도 마찬가지다. 수현씨는 지난 3월 11일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2000년 3월 8일 밤 11시 40분 고모네 집에 갔을 때, 언니는 울기만 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수면제를 먹였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지어낸 이야기] 김신혜가 살해 계획 밝혔다?김신혜는 키 155cm에 몸무게 약 38kg으로 왜소하다. 이런 그녀가 혼자 장애인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집에서 약 6km 떨어진 외진 곳에 버렸다? 경찰은 물론 검찰도 사건 초기엔 이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끝없이 공범을 추궁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를 의아하게 여긴다. 김신혜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의문을 단박에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단다. 바로 고모부 김정한이다. 역시 책 <니가 뭔데>에 상세히 담겼다.
"큰아버지는 '아침(2000년 3월 7일)에 동생(김신혜 아버지)을 부검하기 위해 옮기는데, 남자 두 명도 힘들어서 결국 밖에 있는 운전 기사까지 불러서도 간신히 옮겼는데 어떻게 신혜 혼자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정한이 새로운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 '실은 한 달 전에도 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서울에서 남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가 실패해서 그냥 올라갔다는 말도 하더라.'"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남자 두 명을 데리고 왔었다? 수사 기관에게 이것만큼 중요한 증언은 없다. 하지만 정작 고모, 고모부는 경찰-검찰-법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국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 1월 26일, 고모는 나와 박준영 변호사에게 또 거짓말을 반복했다.
"사건 한 달 전에 신혜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고모, 나 아버지 미워서 죽이려고 남자 두 명 (완도에) 데려왔어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러지 말아라'라고 말렸죠."아버지 살해하려 사람 데려왔다는 걸 전화로 미리 설명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모는 정작 수사 기관에는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왜 외부 사람들에게 말할까.
[법정에서도 앞뒤 다른 발언] "둘 관계 안 나빠"고모 말대로라면 김신혜는 사건 1개월 전에도 살해를 시도할 만큼 아버지에게 감정이 안 좋고, 둘의 관계는 나빠야 마땅하다. 하지만 고모는 2000년 6월 27일 증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당시 변호인이 김은정에게 "피고인(김신혜)과 사망한 아버지는 사이가 나빴나요?"라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렇다.
"아버지는 피고인밖에 몰랐고, 둘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어요."하지만 김은정씨는 앞서 진행된 검사 신문에서는 판이한 이야기를 했다. 검사가 "김신혜가 왜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이야기한 사실이 있나요?"라고 묻자 김씨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 것은 증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김신혜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도 말하지 않았으며, 평소 피해자의 행동으로 보아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검사가 "김신혜와 아버지의 관계는 최근 어떠했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애착이 많았지만 주벽이 심해 김신혜를 많이 때렸고, 그래서 신혜는 학교 다닐 때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사실이 있습니다."자살 기도 여부는 차치하자. 김은정씨는 법정에서도 왜 모순된 이야기를 했을까? 판사는 왜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이 밖에도 고모 김은정씨는 사건 당시 김신혜 변호인 선임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책 <니가 뭔데>의 한 대목을 보자.
"김신혜 애인은, 신혜가 다닌 여행사 사장에게 변호사 선임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안 김은정은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하여 '신혜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반드시 나와 먼저 만나 상의한 후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여행사 사장은 김은정의 요구에 따라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목포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기를 두 번. 이상하게도 김은정은 이 두 번의 만남 약속을 아무런 연락 없이 모두 어겼다고 한다."김신혜의 남동생 김종현도 당시를 떠올리며 "고모가 자꾸 약속을 어겨서 변호사 선임이 많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15년 동안 여러 언론이 김신혜 사건을 다뤘다. 그때마다 김은정씨는 주요 취재 대상이었다. "왜 자꾸 성가시게 하느냐"는 김씨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김씨는 그동안 많이 시달렸을까? 헤어질 무렵 나와 박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혜 (감옥에서) 나오면 내가 총으로 쏴 죽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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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으로 쏴 죽이고 싶어" 고모의 치명적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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