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직 국화를 확정하지 못하는 이유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19] 花

등록 2015.03.26 13:44수정 2015.03.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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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 꽃 화(花)는 꽃잎, 꽃받침, 줄기를 형상화한 화(華)자의 속자로 쓰이다가 독립된 글자로 굳어진 예이다.

꽃 화(花)는 꽃잎, 꽃받침, 줄기를 형상화한 화(華)자의 속자로 쓰이다가 독립된 글자로 굳어진 예이다. ⓒ 漢典


대학 시절 동아리 면접을 보러 갔는데, 선배가 던진 질문이 "꽃과 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차이점은 쉽게 몇 가지를 얘기했는데 공통점을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고요히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섭게 발사되는 총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옆에 있던 한 여학생은 "red"라고 대답했다. 꽃이 붉고, 총은 또 붉은 피를 불러오니 붉다는 것이 꽃과 총의 공통점이겠구나 싶어졌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을, 그리고 사물 자체만 보지 않고, 그 주변과 배후, 전후의 과정을 함께 생각하면 더 폭넓고 깊은 사고의 영역을 갖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질문은 내 머리 속에 어떤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준거이자 사고의 틀로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꽃 화(花, huā)는 의미 요소인 풀 초(艹)와, 소리 요소인 될 화(化)가 결합된 형태이다. 원래 꽃 화(花)는 꽃잎, 꽃받침, 줄기를 그대로 형상화한 화(華)자의 속자로 쓰이다가 하나의 독립된 글자로 굳어진 예이다.

글자의 구성만 보면 꽃은 풀, 사람(人), 거꾸로 선 사람(匕, 화)가 합해져 있다. 꽃은 풀 같은 사람이고, 거꾸로 물구나무 선 사람 같은 풀이다. 그래선지 꽃은 사람의 인생에 곧잘 비유된다. 꽃 피는 시절은 잘 나가는 인생의 화려한 시절을, 꽃이 질 때는 어김없이 인생의 황혼녘을 의미한다. 중국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꽃처럼 화려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뜻한다.

은근과 끈기로 끊임없이 피어나는 우리나라의 무궁화, 사무라이의 분명한 맺고 끓음을 보여주는 듯한 일본의 벚꽃, 각국의 국화(國花)는 그 나라의 이미지를 잘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중국인에게 국화가 뭐냐고 물으면 흔히 목단(牧丹)이라고 답하지만, 사실 중국은 아직 국화를 확정하지 못했다.

선이 굵고,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 색의 부귀와 풍요를 상징하는 목단(牧丹)이 많은 중국인들이 바라는 국화이긴 하다. 그러나 국화 선정을 위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목단이 재배되지 않는 지역이 많아 3000여 인민대표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해 번번이 국화 선정이 무산되는,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국화가 꼭 하나일 필요가 있느냐며 중국은 땅이 넓으니 매란국죽(梅蘭菊竹)으로 하자는 의견, 추운 겨울을 이기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매화가 이미 청(淸)말에 국화로 지정되어 중화민국 시절까지 인정받았으니 이를 계승하자는 의견까지 분분해 국화 선정은 중국 정부의 해묵은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한가운데 국화 논쟁이 놓여 있는 형국이다. 다른 것은 척척 잘도 결정하는 중국공산당이 국화 선정에 이리도 오래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참 뜻밖이고, 중국공산당도 꽃은 함부로 어찌 못하는 모양이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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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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