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명상의 본고장 북인도 리시케시.
송성영
바라나시에서 아침부터 달려온 열차는 어느새 어둠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바라나시역에서 사 온 오렌지와 바나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자, 졸음이 밀려온다. 아래위 침대칸을 나눠 쓰고 있는 '달려라 하니'와 교대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열차 안은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올 때의 혼잡함과는 사뭇 다르다. 빈 좌석이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다. 여기저기 객실에 사람들이 늘어져 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낮에 보았던 노동자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은 탄을 옮기는 노동자들,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고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역도 아닌데 기차가 또다시 멈춰 서 있다. 낮이고 밤이고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연착이다. 새벽 두시, 그것도 허허벌판에서의 연착임에도 어떻게 알고 왔을까. 연착 지점이 따로 있는가 싶다. 어김없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온다. 아이스크림이며 물 등의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다. 이제 열두어 살 가량 먹은 아이들도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인 북인도 리시케시에 가려면 먼저 하르드와르(Haridwar) 역에서 내려야 한다. 안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작정 콜카타에서 왔다는 인도 가족들을 따라 내리기로 했다. 이들 역시 리시케시에 간다는 것이었다. 하르드와르에 가까워지자 열차 안이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콜카타에서 온 신혼부부 가족들은 어느새 두툼한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을 기억할 수 없지만, 바라나시에서 오전 8시쯤에 출발해 하르드와르에 새벽 4시쯤에 도착한 듯싶다. 거의 20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열차에 내리자마자 콜카타에서 온 인도 가족과 헤어졌다. 이들은 하르드와르에서 며칠 머물다가 리시케시로 갈 것이라고 한다.
하르드와르는 인도의 고대 도시이며 힌두교 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지 중에 하나로 알려져있다. 바라나시에서처럼 힌두교인들이 강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기 위해 1년 내내 몰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콜카타에서 왔다는 인도 가족들 또한 힌두교 순례자 중에 한가족이었던 것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새벽 열차 대합실 가득 모포나 숄을 둘러쓴 수많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날이 새려면 최소한 두 시간은 더 보내야 한다. 침낭을 펼쳐 놓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그럴 수 없다. '달려라 하니'에게는 무리였다. 우리는 대합실 밖으로 나와 계단에 걸터앉아 인도 전통 차, 따끈한 짜이 한 잔으로 몸을 녹인다.
바라나시에서 인도 화폐인 루피를 거의 다 써 버렸기에 자동현금출납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 카드사와 다른 현금출납기였기에 현금을 뽑을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때마침 친절한 인도 청년을 만나 그의 손을 빌렸다. 내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애써 고개를 돌려주었던 그는 인턴 과정의 의대생이라고 한다.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던 그를 통해 리시케시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하르드와르 역사 코앞에 있다는 것과 리시케시행 버스가 수시로 왕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