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신이 보우하사'... 버스는 더욱 난폭해졌다

[홀로 배낭여행 초보자의 인도 여행기 25] 북인도 리시케시 가는 길

등록 2015.04.02 14:51수정 2015.04.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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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드와르 행 열차에서 만난 힌두성지 순례가족들.
하르드와르 행 열차에서 만난 힌두성지 순례가족들.송성영

힘들게 찾아 헤맨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열차 객실이 평온하게 다가왔다. 여기저기 빈자리도 보인다. 배낭을 등 뒤에 받쳐 놓고 두 다리를 쭉 펴 편안한 자세로 차장 너머로 시선을 고정했다. 나른한 행복감마저 몰려온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고마운 인연들 그리고 더 이상 얼굴 마주 보기 싫은 인연들, 자신의 물욕을 과시해가며 끊임없이 가르치려 들었던 한국 사내나 불만 가득한 얼굴로 끊임없이 인도 험담을 늘어놓았던 한국 아줌마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인연이거나 나쁜 인연이거나 이제 더는 만날 일이 없다. 세상 인연이라는 게 한순간. 차창 사이로 지나치는 풍경들이나 다름없음에도 '나는 이 인연들을 붙들고 앉아 글로 옮길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쓴다는 것만큼 크나큰 집착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열차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편집안 된 생생한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 같다.
열차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편집안 된 생생한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 같다. 송성영

차창 너머로 북인도의 농촌 풍경들이 한가롭게 스쳐 간다. 한국은 지금쯤 보리밭에서 푸른 기운이 오르고 있을 것이고, 농부들은 부지런히 논과 밭을 갈고 있을 것이다. 상추씨를 뿌리고 감자를 심고, 오이, 토마토, 참외, 수박 등등의 모종을 준비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봄 날씨와는 달리 북인도 열차는 보리밭이 황금 물결로 일렁이고 있는 여름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 누렇게 익은 보리를 수확하는 사람들,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네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소들, 논과 밭 사이에 길쭉하게 서 있는 나무들, 특이한 것은 한국과 달리 논밭 중간마다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농부에게 그늘진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농지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작물에 그늘이 지면 수확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는 농부의 쉴 공간마저 돈벌이로 환산시켜 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보리밭 사이로 훠이훠이 날아가는 새들이 눈에 잡히는데, 허수아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 가닥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주변 풍경들


 아이스크림 파는 소년들. 열차가 멈추면 물건 파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이스크림 파는 소년들. 열차가 멈추면 물건 파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송성영

두 가닥의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 주변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화면을 펼쳐놓고 인도의 한 단면을 바라보고 있다. 인도 열찻길 주변 풍경들을 편집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여행의 백미 중에 하나가 바로 열차를 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얼마쯤 달렸을까. 역 주변에 쌓여 있는 석탄을 수레에 부지런히 옮겨 싣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한옆에서는 힘겹게 삽질하고 있고, 한옆에서는 온몸에 검은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노동자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모여 앉아 하얗게 치아를 드러낸 채 웃고 있다.


또 저만치에서 펌프질로 물세례를 받아가며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식히고 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낸 저들의 웃음 때문일까.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 고된 노동일을 하고 있지만, 고통스럽다거나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석탄 가루를 뒤집어 쓴 노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석탄 가루를 뒤집어 쓴 노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송성영

하지만 나는 그 웃는 순간만을 포착했을 뿐이다. 그 힘겨운 노동에서 웃는 일보다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힘겨운 삶을 떠올리며 자신의 고통을 위로받거나 한다. 또한 누군가의 풍족한 삶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 가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 박탈감은 고통과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렇게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생활하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200만 원짜리 집에서 생활했을 때보다 더 많이 힘들어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했기에 더 많은 돈벌이와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만큼 냉장고에 인스턴트식품이 늘어갔지만, 그만큼의 힘겨움으로 화를 내는 횟수가 늘었고 부부간에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상대적으로 가진 것 없이 적게 벌어 먹고사는 소박한 생활을 할 때에는 그만큼 돈 버는 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었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저 하나 잘 먹고 잘살고자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할 때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 주변 사람의 아픔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어느 역 주변에서 펌프질로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노동자들.
어느 역 주변에서 펌프질로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노동자들.송성영

삶은 기나긴 여정이다. 열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여행길이나 다름없다. 누구는 인도 서민들과 부대껴 가며 혹여 배낭이라도 분실할까 싶어 2등급 객실이 힘들다며 배낭 분실이 없는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1등급 객실을 선택한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2등급 열차에서 좋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귀면 배낭 분실할 염려가 없고 창문을 열어 에어컨보다 더 청정한 자연의 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좌석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열차 주변을 스쳐 가는 풍경조차 한 편의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20시간 가까이 달리는 열차 여행이 지겹고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고통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를 바라야 하는 지긋지긋한 다큐멘터리와 마주쳐야 할 것이다.

20시간 가까이 달리는 열차 여행

통로를 사이에 둔 열차 바로 옆 칸에는 콜카타에 살고 있다는 인도 가족이 앉았다. 바라나시 역에서 열차 객실을 찾아 함께 헤맸던 인도 사내의 가족들이다(인도 사내조차 헤맸을 만큼 열차 객실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결혼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신혼부부라고 한다.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오르는 일이 많다. 이들 신혼부부는 나이 든 부모님과 삼촌 그리고 두 명의 이모와 함께 힌두 성지 순례에 나서고 있었다.

 요가와 명상의 본고장 북인도 리시케시.
요가와 명상의 본고장 북인도 리시케시.송성영

바라나시에서 아침부터 달려온 열차는 어느새 어둠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바라나시역에서 사 온 오렌지와 바나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자, 졸음이 밀려온다. 아래위 침대칸을 나눠 쓰고 있는 '달려라 하니'와 교대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열차 안은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올 때의 혼잡함과는 사뭇 다르다. 빈 좌석이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다. 여기저기 객실에 사람들이 늘어져 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낮에 보았던 노동자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은 탄을 옮기는 노동자들,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러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고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역도 아닌데 기차가 또다시 멈춰 서 있다. 낮이고 밤이고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연착이다. 새벽 두시, 그것도 허허벌판에서의 연착임에도 어떻게 알고 왔을까. 연착 지점이 따로 있는가 싶다. 어김없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온다. 아이스크림이며 물 등의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다. 이제 열두어 살 가량 먹은 아이들도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인 북인도 리시케시에 가려면 먼저 하르드와르(Haridwar) 역에서 내려야 한다. 안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작정 콜카타에서 왔다는 인도 가족들을 따라 내리기로 했다. 이들 역시 리시케시에 간다는 것이었다. 하르드와르에 가까워지자 열차 안이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콜카타에서 온 신혼부부 가족들은 어느새 두툼한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을 기억할 수 없지만, 바라나시에서 오전 8시쯤에 출발해 하르드와르에 새벽 4시쯤에 도착한 듯싶다. 거의 20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열차에 내리자마자 콜카타에서 온 인도 가족과 헤어졌다. 이들은 하르드와르에서 며칠 머물다가 리시케시로 갈 것이라고 한다.

하르드와르는 인도의 고대 도시이며 힌두교 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지 중에 하나로 알려져있다. 바라나시에서처럼 힌두교인들이 강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기 위해 1년 내내 몰려오는 곳이라고 한다. 콜카타에서 왔다는 인도 가족들 또한 힌두교 순례자 중에 한가족이었던 것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새벽 열차 대합실 가득 모포나 숄을 둘러쓴 수많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날이 새려면 최소한 두 시간은 더 보내야 한다. 침낭을 펼쳐 놓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그럴 수 없다. '달려라 하니'에게는 무리였다. 우리는 대합실 밖으로 나와 계단에 걸터앉아 인도 전통 차, 따끈한 짜이 한 잔으로 몸을 녹인다.

바라나시에서 인도 화폐인 루피를 거의 다 써 버렸기에 자동현금출납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 카드사와 다른 현금출납기였기에 현금을 뽑을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때마침 친절한 인도 청년을 만나 그의 손을 빌렸다. 내가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애써 고개를 돌려주었던 그는 인턴 과정의 의대생이라고 한다.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던 그를 통해 리시케시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하르드와르 역사 코앞에 있다는 것과 리시케시행 버스가 수시로 왕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갠지스 강 사이로 구름 다리가 놓여져 있다.
갠지스 강 사이로 구름 다리가 놓여져 있다. 송성영

날이 밝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무작정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리시케시로 떠나는 버스가 곧바로 출발한다고 한다. 첫 차인 듯싶다. 우리와 더불어 몇몇 순례자들을 태운 버스가 새벽 도로를 정신없이 내달린다. 얼마쯤 달려가자 도로 한복판을 가로 지르는 갠지스 강 줄기가 보인다. 강 주변에는 바라나시에서처럼 수많은 힌두교 인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하르드와르를 가로 지르는 강물은 바라나시보다 한결 맑아 보인다. 남쪽으로는 갠지스 평야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기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하르드와르. 하르드와르는 히말라야에서 시작된 갠지스 강이 평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바라나시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갠지스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온 셈이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리시케시는 하르드와르에서 갠지스 강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르드와르에도 요가수업을 받을 수 있는 아쉬람이 많지만, 요가나 명상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이 즐겨 찾는 곳은 단연 리시케시라 할 수 있다.

버스 기사, 잠시 멈춰 서서 꽃목걸이 산다

 리시케시를 향해 험악하게 내달리던 버스기사가 중간에 시바 신에게 바치는 꽃다발을 구입했다.
리시케시를 향해 험악하게 내달리던 버스기사가 중간에 시바 신에게 바치는 꽃다발을 구입했다. 송성영

시소를 타듯 엉덩이가 들썩들썩 튀어 오를 정도로 난폭하게 버스를 몰아대던 기사는 어느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서서 꽃목걸이를 산다. 버스 기사는 그 꽃을 신줏단지 모시듯 공손하게 백미러에 걸어 놓고 환하게 웃는다.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꽃다발을 걸어 놓는 이유를 물었더니 짧게 대답한다.

"시바! 시바!"

시바 신에게 꽃다발까지 바친 버스 기사는 시바 신이 보호해주고 있으니 걱정 없다는 듯 더욱 더 험악하게 버스를 몰아간다. 생사의 중간지점을 갈라나가듯 무지막지하게 내달리던 버스는 '신의 가호'로 리시케시에 무사히 도착했다.

리시케시 버스 종점에 도착하자 틈틈이 창문을 열어 담배를 피우던 버스 차장이 거스름돈 10루피를 잊지 않고 내준다. 우리는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무작정 아쉬람 주변의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했다.

오토 릭샤 기사가 값비싼 게스트하우스에 내려주는 바람에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강 근처로 걸음을 옮겨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방 한 칸에 250루피 정도, 처음 기사가 내려준 곳 보다 2배의 가격 차이가 났다.

'달려라 하니'는 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잡고 나는 그 아래층 방을 쓰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 짐을 풀어놓고 아쉬람이 몰려 있다는 강 건너편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리시케시는 락쉬만 줄라와 람줄라,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고 한다. 우리는 락쉬만 줄라인지 람 줄라 인지 알 수 없는, 소들이 어슬렁거리거나 누워 있는 폭 좁은 구름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 과일 가게와 기념품이나 숄이나 옷가지를 판매하고 있는 작은 상점들, 그리고 카페와 식당들이 도로 양편으로 줄지어 있었다.

1960년대에 비틀즈 멤버가 그들의 영적 스승인 마하라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러 오고부터 서구세계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진 리쉬케시. 리시케시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요기들, 긴 수염에 긴 머리, 허름한 옷 한 벌에 맨발로 강가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인도 수행자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강가 주변을 몇 시간째 둘러보았는데 요기들이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오래 전에 접했던 책, <히말라야의 성자들>에 나오는 눈 맑은 요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르드와르행 열차 #석탄 노동자들 #힌두 순례자들 #리쉬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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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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