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이후 CCTV에 찍힌다며 멀리한 동료들도 있었다.
김지현
신분 공개 뒤, 정진극씨의 회사 생활은 완전히 망가졌다.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고, 다른 직원들은 업무 협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 정씨는 점점 고립돼 갔다.
'이렇게 왕따가 되는 걸까. 회사에서 더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다. 어디로 이직을 해야 하나, 아니 이직할 수는 있을까.' 정씨가 '배신자'라는 소문은 지역사업소까지 퍼졌다. 어느 날 그는 업무 협조를 하며 알고 지내던 한 지역사업소장을 회사 1층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다. 삼촌같이 여기던 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사업소장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비수를 꽂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걸지 마. 너랑 같이 있는 거 CCTV에 찍혀. 저리 가."보상금도 문제가 됐다. "보상금 노리고 동료를 신고했다", "징계 끝났는데도 보상금 10억을 요구하고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더는 회사를 믿을 수 없었다. 포스코 본사에 지속해서 보호 조치 미흡, 경징계 부당 등을 신고했다. 기댈 곳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밖에 없어 보였다.
정씨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고발과 관련해 누군가를 만나거나 통화하면 녹음을 했고, 메신저 대화 내용도 저장했다. 기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 장치였다.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기록밖에 없다'는 심정이었다.
[또 다른 신고] 1년 만에 공정위 시정 조치
포스메이트는? |
(주)포스메이트는 포스코 그룹의 한 계열사로 포스코 그룹 내의 부동산 임대 및 관리, 시설물 관리, 실내건축·기계·전기공사업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1990년 12월 퇴직 임직원들의 모임인 '포스코동우회'가 설립, (주)포우진흥으로 출발했다가 2006년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포스메이트로 상호가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포스코가 회사의 최대주주로 지분 57.2%, 포스코동우회가 31.7%, (주)포스코건설이 11.0%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 대치동에 있으며 임직원은 680여 명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사가 내부거래,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는 점을 포착했다. 포스코그룹의 내부거래에 힘입어 회사의 매출액이 2009년 822억 원에서 2013년 1184억 원으로 44%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포스메이트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여하는 등의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회사와 정씨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자 공아무개(63) 포스메이트 사장은 정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사를 통해서 원만한 합의를 하자는 이유였다. 정씨는 지인의 소개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의 안상운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안 변호사는 정씨가 중요한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을 일깨웠다.
그것은 포스코가 동반성장 실적을 조작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씨는 그동안 자기 업무를 하면서 그 건에 대해 잘못됐다,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개인비리가 아닌 포스코 전체의 일이어서 신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변호사에게 용기를 얻은 정씨는 2012년 8월, 정준양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포스코 전 계열사가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 동반성장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기 위해 서류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정준양 회장은 정씨의 동반성장 허위실적 제출 관련 공익신고의 신고처에 해당한다.
조작은 이런 식이었다. 동반성장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포스메이트가 협력업체에게 지원한 내역을 정리해서 공정위에 제출해야 했다. 지원은 예를 들어 포스메이트 노무사가 협력업체의 표준근로계약이나 사규 등을 컨설팅해주는 식이었다. 포스코 동반성장사무국은 이 같은 실적이 부족하다며 계열사 동반성장 담당자들에게 실적을 부풀리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정씨가 정 회장에게 보낸 신고는 묵살됐다. 대신 지난 2012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에 공정위는 1년 뒤인 지난 2013년 9월 포스코의 실적 조작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당시 보도자료를 내고 포스코가 2012년도에 제출한 2011년 공정거래 협약 이행 실적 자료가 허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우수 협약 기업으로서 포스코에게 부여된 인센티브인 하도급 거래 서면 실태조사 및 직권 조사 2년 면제 지위를 박탈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 기자말)
[해고] 신고 5일 만에 징계위 회부... 해고 절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