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힉 교도소 형벌 농장 풍경. 벌판에서 벼 수확 중인 수감자들.
강은경
얼마쯤 걸었나.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걷기엔 멀다며 타라고, 필리핀 청년이 말했다. 그렇잖아도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나는 냉큼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M16 총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앞을 지났다. 바로 그 앞 들판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푸른 계통의 티셔츠를 입은 수십 명의 수감자들. 이곳이 형벌 농장이라는 게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갑자기 목이 탔다.
오토바이 청년이 나를 내려준 곳은 교도소 센터 사무실 앞이었다. 사무실 앞쪽 광장에는 국기 게양대가 피뢰침처럼 뾰족하게 서 있었다. 광장 건너편에는 '호세리살 동상'이 서 있었고, 광장을 휘두르고 뜨문뜨문 서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안내서나 약도 같은 것이 있는지 문의했다. 어디로 가서 뭘 봐야 되냐, 사진 촬영은 해도 되냐, 등등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자 특별히 안내인을 붙여주겠다며 직원이 누군가를 호출했다. 안내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와힉 교도소를 소개한 얇은 책자를 받아 훑어봤다.
'필리핀의 팔라완 섬에 있는 이와힉 교도소와 형벌 농장은 형벌 격리지구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열린 교도소다. 북쪽엔 발사한(Balsahan) 강이 흐르고, 남쪽으론 비누안 천(Binuan Creek), 동쪽으로는 프에르토 프린세사 만, 서쪽으로는 이름 없는 산들이 이어진다. 1904년 미국 정부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정치범들을 추방하기 위한 교도소였다. 팔라완 섬은 미국 점령기 당시 유배지였다.' <론니 플래닛>도 뽑은 세계적 여행지 팔라완그러고 보니 팔라완은 '필리핀 최후의 개척지'라는 말을 듣는 곳이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약 586km 떨어진 외딴 섬 팔라완.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팔라완은 필리핀에서 오지 중에 오지였단다. 토박이들만 살고 있을 뿐, 외지인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곳.
살아 있는 생태계의 자연 환경과 비경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한 지도 고작 5, 6년쯤 됐다고. 2014년 <론니 플래닛>에서 뽑은 '꼭 가봐야 할 세계 여행지 10곳'에 팔라완이 포함되기도 했다.
팔라완이 오랫동안 오지로 남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말라리아' 때문이었다. 팔라완은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다. 그러니 말라리아 예방 백신이 발견되기 전에는, 목숨을 걸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팔라완엔 4개의 교도소가 있고, 식민지 시절 정치범들의 유배지였다.
안내문을 몇 줄 더 읽어 내려가는데, 쥬엔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를 안내할 사람이라면서. 우리는 서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그가 이 교도소의 수감자이며 살인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