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결전은 피할 수 없다

[주장] 중국, 실리적이고 유연한 외교로 미국 상대

등록 2015.05.12 17:32수정 2015.05.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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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 12일(현지시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공식 환영식장에서 시진핑 중 국가주석의 안내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12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꿈'에 대해 연설했다.  2021년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 2049년 현대화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처음 제시한 연설이다. 이때 중국은 이미 세계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 작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848년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은 전쟁에서 입은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동굴'에서 나오겠다고 세상에 천명한 것이다. 이 연설의 기본 목표는 중국 사회 내부에서 심화되는 민심이반의 극복이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중국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 중국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기존의 학문 틀로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세상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여 년간 동굴에서 내상을 치유한 중국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지도 궁금하다.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다행히(?)도 중국의 전략은 과거 천하를 통일하려던 시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근교원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책략이다. 21세기판 중국의 근교원공 책략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과 'AIIB(아시아 기초 시설 투자 은행, 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이다. 초기이기는 하지만 이 책략은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주지하다시피 현재 중국의 최신 대외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운송로다. '일로'는 중국에서 서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운송로를 의미한다. 이는 중국의 '서진 전략'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다. 중국 서쪽으로 거대한 국가·지역간 생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대'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는 해상 실크로드라고도 부른다.

AIIB는 아시아 지역의 도로, 철도, 발전소 등 사회 기초 시설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일대일로는 사업이며, AIIB는 이를 뒷받침할 국제기구인 것이다. 즉, 일대일로는 목적이고, AIIB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 중국의 '일대일로' 'AIIB'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사업과 국제기구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와 AIIB이지만 배경과 의도를 살펴보면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매우 주도면밀한 구상 중 하나다. 일대일로는 중국 서진전략의 구체적인 사업이다. 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수출주도 및 외향형 발전 전략을 채택해왔다. 이는 스스로가 세계의 공장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했고, 목표대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또 급속한 경제성장이 부담스러워 속도 조절을 할 정도로 경제력을 확보했다. 지정학적으로 살펴보자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권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동진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중화제국 시기에 내부 역량이 그리 강하지 않았을 때 전형적으로 펼치던 '원교근공' 책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돌연 서진전략을 펼치겠다고 한다. 기존의 동진전략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서진전략을 거의 최초로 2012년에 제기한 왕지스(王缉思)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의 주장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선수(先手)'로 인식하고 있다. 동진 전략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량이 일정하게 제고되었으므로 서진 전략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대외 전략의 차원에서 동쪽으로는 더 이상 확장의 여지가 없는데, 미국은 아시아로의 전략 중점을 옮겨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대 아시아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받아들였다. '일대일로'는 서진전략의 구체적인 사업이다. 중단기적으로 '일대일로' 방안의 핵심적인 사업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다. 중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미국의 접근을 용인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AIIB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실현할 국제적인 투자협력 기구다. 아시아에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 기구는 이미 존재한다. ADB(아시아개발은행: Asia Development Bank)가 바로 그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1997년 ADB가 주도한 CAREC(중앙아시아 경제협력체, Central Asia Regional Cooperation)가 이 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중국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 대외전략의 대전환

그런데 왜 중국은 독자적인 기구를 설립하려는 것일까? ADB는 현재 중국과 한창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이 주도한 것이다. AIIB는 이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있다. 또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 빈도를 늘여나가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삼겠다는 의도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최초로 제기한 나라인 중국이 가장 많은 자본금 출자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게 아시아 저발전 지역에 대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부수적으로 국제 금융 및 경제 영역에서 중국이 제기하고 주도하는 최초의 협력 기구라는  의미도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저개발 국가 및 지역에 대한 원조 및 개발 사업을 빌미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온 것을 중국이 벤치마킹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게는 일거다득이다. 중국의 의도를 간파한 미국과 일본은 이 기구의 효용성을 폄하하면서 설립을 반대해왔다.    

이렇게 봤을 때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굴에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내상 치유가 끝나나고, 내공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내부 정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외 확장에 나설 때와 비슷한 형국이다. 이럴 때 전형적으로 사용한 책략은 바로 '근교원공'이다. 주변부를 튼튼히 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을 하나씩 격파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선수에 이은 후수다. 하지만 미국과의 경쟁과 갈등을 불사하면서까지 주변부를 챙기겠다는 것은 이전 시기의 중국 외교 전략과는 상당히 다른 대목이다. 이 때문에 중국 외교의 공세화에 대한 주장이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 대해 중국이 반격을 가한 셈이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 측면도 있다. 따라서 현재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기 좋게 출발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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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한-중 정상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4년 11월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까지의 경과는 초반치고는 비교적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일대일로 중 '일대' 즉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육상 실크로드 구상에서는 각국과의 개별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기존 사업의 성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유라시아 철도를 들 수 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를 경유하는 유럽과의 연결 철도 노선이자 제1 유라시아 랜드 브릿지는 TSR(시베리아 횡단 철도, Trans Siberia Railway)이다. 그런데 중국을 통과하는 제 2 유라시아 랜드 브릿지인 TCR(중국 횡단 철도,Trans China Railway)의 3개 노선이 현재 건설 중이다. 현재 이 중 중국에서 카자흐스탄을 경유하는 북 노선은 운행 중이고 나머지 두 개 노선은 진행 중이다. 이밖에 중국은 기존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기반으로 그 수준을 경제 공동체로까지 확대해나갈 전망이다.

반면, '일로' 즉 동남아시아를 경유하는 해양 실크로드의 경우 남중국해 분쟁 등으로 상대적으로 더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ASEAN을 통한 당근과 채찍 전술로 대응하는 한편, 개별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를 통해 그 거점을 하나씩 마련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 파키스탄에 한화 약 50조 원에 달하는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그리고 전략적 요충지인 과다르항의 운영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AIIB의 경우, 미국과 일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 참여의사를 보여 성공적인 첫 출발을 할 전망이다. 이 기구는 올해 말 공식 출범 예정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서 아시아 34개국, 유럽 20개국, 아프리카 2개국, 아메리카 1개국 등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G7에서도 미국, 일본,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 직접 대상국이 아닌 유럽에서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 참여 의사를 보여 중국은 매우 고무된 상태다. 중국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로 인식하고 있다. 

점점 뚜렷해지는 미중의 경쟁과 대립 구도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강호의 패권자는 미국이다. 중국은 내상을 치유하고 동굴에서 곧 나올 예정이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굴 주위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동굴 주위의 세력들을 규합하고 포섭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그 소식을 접한 뒤, 동굴 주위의 세력들에게 '내가 곧 나갈 테니까 기다려라! 잘해줄 테니, 줄 제대로 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메시지는 다른 강대국과의 관계 개선에 중점을 둔 '원교근공'과는 다르다. 바로 '근교원공'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세력들과의 관계 개선과 강화에 오히려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가 일대일로와 AIIB이다. AIIB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의 위세는 예전 같지 못했다.

조만간 벌어질 강호에서의 미-중간의 일대 결전을 예상한 여러 세력들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현재의 패권국과 잠재적 패권국 둘 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역 공동 개발이라는 명분과 경제적 지원이라는 실리를 앞세운 중국의 제안에 동참하는 세력이 많아졌다. 미국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체면 구기면서까지 직간접적으로 동참하지 말라고 했건만, 우방조차도 이탈자가 많이 생겼다. 동굴 주위의 세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 출범과 함께 강대국들에게는 애매모호한(?) 신형대국관계 수립을 제안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이미 대세는 결정되었으니 불필요한 경쟁과 마찰을 자제하자는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다분히 도전적이고, 선언적인 이 제안은 구체적인 정책과 조치가 뒤따르기 어렵다. 그리고 대외 전략의 중점을 주변국 외교로 잡았다. 본격적으로 주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이다.

일대일로와 AIIB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중국 대외 전략의 중점 과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성패 여부는 시진핑 체제의 성패로 직결된다. 그만큼 전력을 다할 것이다. 미국은 중동 지역의 여전히 진화되지 않는 갈등 요인 때문에 내실 있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 틈을 타고 중국은 경제 대국과 후발 주자의 프리미엄을 잘 이용하고 있다. 미국이 이에 자극 받아서 보다 실질적인 대 아시아 외교의 행보를 보인다면 이 두 강대국의 아시아 지역의 주도권 쟁탈전은 백열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선택은 남북관계 개선

한국은 장고 끝에 AIIB 참여를 결정했다. 향후 이런 종류의 선택이 더욱 자주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은 안보적으로는 미국에,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예전부터 강조했듯이,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양 강대국에게 의존 정도를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다. 이러했을 때 한국은 선택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양 강대국의 경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실익을 챙길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앙아시아 각국들의 외교적 선택에 대한 연구와 관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실리외교를 펼쳐온 이들 국가들은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미국 사이에서 생존해오고 있다. 이들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움직임에 대한 분석은 보다 복잡다단해질 향후 국제정치경제 환경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 및 전술 수립에 살아있는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주장환 교수는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이면서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미중관계 #일대일로 #AIIB #아시아회귀정책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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