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호 추도식 발언 공감... 참모로서 부끄러웠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39 ]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 기획비서관

등록 2015.06.11 20:24수정 2015.06.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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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철 청와대 대변인을 두 번이나 지낸 윤태영 전 청와대 연설 기획 비서관이 지난해 <기록>이란 책을 출간한 데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앞두고 또 하나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를 출간했다.

<바보, 산을 옮기다>는 1987년 6월 항쟁 때 시민 운동하던 노무현 변호사의 모습부터 2008년 대통령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기까지를 담고 있다. 책의 출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4일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윤 비서관을 만났다. 다음은 윤 비서관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지난 4일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4일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곽우신

-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즈음 <바보, 산을 옮기다>란 책을 출간하셨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네. 대체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님을 아끼고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몇몇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되어 온라인서점 정치사회 분야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당장의 반응도 좋지만 저는 잠깐 반짝하기보다는 천천히 긴 호흡으로 꾸준히 읽히는 책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 책을 출간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대통령님 재임시절 동안 지근거리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사실 대통령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커다란 숙제처럼 남아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제 사정 때문에 출간이 많이 늦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해 2014년에야 첫 책인 <기록>을 냈고, 올해 <바보, 산을 옮기다>를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이 대통령님의 인간적 측면이나 리더십 스타일을 주로 서술한 것이라면, 이번 책 <바보, 산을 옮기다>는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의 정치역정을 '국민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님이 지금 계셨다면 저를 통해 기록해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집필하시고 제가 옆에서 보좌하는 게 맞는 일이었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남겨놓은 기록들을 가지고 제가 혼자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준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노 대통령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저는 1988년 13대 국회 당시 다른 의원실의 비서로 들어갔어요. 그때가 대통령님이 초선 국회의원 시절이었는데 그 방에 제가 아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청문회 스타가 되신 후로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어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후 1990년에 3당합당이 된 후 저도 작은 민주당에 잔류하게 되면서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지요."

- 이후엔 어땠나요?
"노무현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한 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꾸리고 계실 때 <여보, 나좀 도와줘>란 자서전을 내게 되었어요. 제가 그 일을 담당한 출판사에 있었거든요. 그 전에 지금 충남지사인 안희정 지사가 출판사에 있다가 지방자치실무 연구소로 갔어요. 안 지사를 통해 책을 내게 되었는데 그때 구술에 참여해서 책 작업을 같이하게 됐어요. 책의 절반 정도 원고 작업을 같이 하면서 그때 아주 가깝게 정치인 노무현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습니다."


-15년 정도 깊은 인연인데 윤 비서관이 기억하는 노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요?
"제가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 '낮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대통령님 스스로도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얘기하곤 하셨는데, 권력을 가지고 높은 곳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들 속에 있으려고 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국민통합, 노무현 대통령 정치 관통하는 화두"


 <바보, 산을 옮기다> 표지
<바보, 산을 옮기다> 표지문학동네
- 제목이 <바보, 산을 옮기다>인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 제목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우리말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대통령님 임기 말에 신영복 교수님이 이걸 친필로 써주셨는데, 그때부터 이 말을 자주 쓰곤 하셨어요.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해온 대통령님의 자세와 치열한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는 말입니다. 퇴임 후 한때는 '우공이산'을 약간 바꾸어 '노공이산'이라는 필명으로 '민주주의 2.0' 등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도 하셨지요."

- 책에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노 전 대통령의 모습부터 2008년 하반기까지를 담았잖아요.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인생 전체에 대한 서술은 이미 <운명이다>가 있다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으로서의 삶부터 서술을 시작했습니다. 대통령님의 정치역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국민통합'입니다. 그래서 87년 6월항쟁과 그 뒤를 이은 대선패배로부터 서술을 시작한 것입니다. 야권통합운동을 시작했던 시점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나서 90년 3당합당 이후 국민통합을 목표로 정치에 매진하게 되는 과정. 이후 낙선을 거듭한 부산 선거 도전. 그리고 대통령 재임시절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하는 과정, 그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퇴임 후 진영으로 귀향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그 꿈마저 접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입니다."

- 노 대통령이 국민통합에 나서게 된 계기는 3당합당이 아닌가 생각해요.
"맞습니다. 대통령님도 1988~1990년 시기엔 재야 출신 국회의원으로 노동자를 대변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재야 투사 이미지가 많이 남아있었는데 3당합당을 겪고 나서는 '지역으로 가르는 정치는 이제 없어져야 하며 그 이전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때부터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젠 정치인의 길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거죠. 3당합당이 자신의 진로를 크게 바꾸었다고 하셨어요."

- 노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통령님의 정치를 관통하는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난 계기가 3당합당이었듯이, 그후 거듭된 낙선으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것도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거꾸로 그런 노력이 인정받아 대통령에 오르는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중에 보였던 여러 가지 행보도 결국 국민통합을 지향하셨던 것이고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로 내려가 새로운 기반을 만들어 보고자 하셨던 것도 결국 국민통합입니다. 말하자면 노무현 정치의 시작이고 끝이죠."

- 책을 집필하실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어디인가요?
"정치인 시절과 대통령 재임 시절의 이야기는 다양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정치적 행보, 바꿔 말하면 국민통합을 위한 꿈과 고뇌, 도전과 좌절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재임 중에도 '국민통합'을 지향해온 자신의 정치역정을 글로 정리해달라는 주문을 많이 했습니다. 늦었지만 그 숙제를 한다는 생각으로 '국민통합'을 향한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를 서술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서술 과정에서는 가급적 대통령님의 생각이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대통령님은 항상 저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네가 본 대로 들은 대로 쓰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살을 붙이기보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특히 2부 재임시절 대목에서는 저에게 훗날을 위해 기록해두라며 남긴 말씀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님이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 비망록인 셈이지요. 그렇게 되도록 중점을 두었습니다."

- 책을 보면 윤 비서관을 1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3인칭으로 처리하셨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네, 그것은 조금 전에 소개한 대통령님의 지침과 상통하는데요.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저를 '본 대로 들은 대로 쓰는 관찰자'의 입장에 두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물론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참모이기도 했고 한때는 대변인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래 남을 기록을 쓰는 입장에서는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게 3년도 훨씬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저를 3인칭으로 표현했습니다."

- 1인칭 관찰자 시점도 객관성은 있지 않나요?
"그런 측면이 있어서 고민을 하긴 했는데 어쨌든 저에게 불은 별칭 같은 게 '사관' 또는 '기록자'라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주관적 생각들이 개입되는 느낌을 줄까봐 저를 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 책을 집필하시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분의 기록을 정리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동안만큼은 그분의 말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때로는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일단 커다란 숙제를 끝냈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시에 작업을 하면서 저 스스로도 대통령님을 서서히 놓아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기록이 이처럼 책으로 활자화되는 과정을 통해 저의 기록은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 또한 그리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기록물이 공개되는 상황 무력하게 지켜만 봐"

- 노 대통령과의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세요.
"저는 2001년 말에 후보 경선을 준비하는 캠프에 들어갔는데, 그때 대통령님이 '반갑다'며 악수를 했는데 부산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이 있었어요. 얼마 후 한번은 술자리에 모시고 갔다가 술을 드신 후 집으로 가는데 많이 취하셨는지 내려서는 제 어깨를 두드리며 '태영씨, 잘 들어왔어 우리 한번 해보는 거야!'라고 하시더군요. '이 분이 평소에는 표현을 하고 싶어도 잘 못하시는 분이구나, 그런데 술을 드시니 표현하시는구나'란 생각에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존중한다고 할까요? 제가 옆에서 기록을 하고 있다가 높은 사람이 들어와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면 '그러지 말게, 이런 자리에 와서 더 들어야지!'라며 아랫사람을 일부러 챙기시는 모습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 하나하나의 배려가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의 발언이 논란이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대통령님의 유족으로서 그동안 인내해왔던 여러 가지 소회와 감정들, 말하자면 서운함, 답답함 등이 어우러져 표현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노건호씨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유족의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까지, 저는 대통령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셔온 참모로서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하는 부끄러움입니다. 특히 기록을 담당했던 참모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 관련 중요 기록물이 그렇게 공개되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자책감도 컸습니다."

- 노 대통령께서 서거 하신 지 6년이 흘렸지만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노 대통령을 불러내어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사실 책을 출간할 때마다 망설임도 있고, 불안감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재임하던 중 대변인을 하던 시절과 똑같은 느낌입니다. 무언가의 이야기를 하면 공연한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그런 걱정들입니다.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게 있습니다. 임기를 마친 지 7년도 넘었고, 돌아가신 지도 6년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기록을 정리하여 책으로 낼 때마다 주저하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통령님이 정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통령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행적이 정략적 차원에서의 공방의 소재가 되는 한,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공과도 제대로 가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실 정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일만 생기면 참여정부를 끌고 들어와 물타기를 하거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탓을 하는 잘못된 풍토가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제까지는 제 역할이 제가 가진 기록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들을 정리해 대중용 서적들을 출간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날 것 그대로의 기초자료들을 가지고 참여정부를 연구하시는 분들을 위해 사료화하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철학,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위한 사료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긴 호흡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이 올바르게 평가받도록 지켜봐 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태영 #노무현 #바보, 산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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